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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허청아 씨는 비서 아닙니까?

  • 박가희는 원래도 목청이 크기로 유명했는데,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거기엔 박시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 다행히 그는 그저 힐끔 쳐다보더니 별다른 말 없이 성큼성큼 걸어 호텔을 떠났다.
  • 사람들이 떠나자 박가희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 “박 대표님이 그건 왜 물으시는 거지?”
  • 그녀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무슨 빅뉴스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약간 김이 새는 모양이다.
  • 허청아는 마치 사형 선고를 받았던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돌리면서 바짝 마른 입술로 변명을 해댔다.
  • “그냥 내가 묵었던 방의 경치가 좋아서 바꾸고 싶은 거겠지.”
  • “그게 다야?”
  • “우리 박 대표님이?”
  • 박가희는 입을 삐죽였지만, 두 사람의 신분 차이를 봤을 때 확실히 별다른 관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 “그나저나 박 대표님 같은 얼음 왕자가 침대에서는 아주 열정적이고 뜨겁지 않을까? 저 키를 봤을 때 거기 사이즈도 분명 클 것 같아!”
  • “……”
  • 열정적이고 뜨겁다는 표현은 약간 과장된 것 같지만, 사이즈라면… 확실히 꽤 큰 것 같았다. 비록 비교 대상은 없지만 어젯밤 거의 한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인 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 ‘그만, 그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역시 친구를 사귐에 있어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박가희와 가까이 지낼수록 점점 이상한 생각만 하게 되는 것 같다.
  • 곧 진 부장도 번듯하게 차려입고 로비에 도착했다. 비즈니스에 맞게 차려입은 정장과 가죽 구두에 머리는 거의 벗겨져 있었다. 그는 허청아 손에 있던 서류를 받아 펼치면서 불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 “최근 2년간 IOP가 긴장한 탓에 어렵게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만약 추가 투자금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의 보너스도 없을 줄 알아요!”
  • 허청아는 말을 하지 않았고, 박가희는 몰래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 ‘이게 다 진 부장이 일을 망친 탓이잖아. 프로젝트를 따내려고 추가 투자금에 동의하다니!’
  • 갑자기 그의 시선이 허청아를 위아래로 훑기 시작하더니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는지 말투마저 한결 부드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 “청아 씨도… 고향이 J 시티였죠?”
  • “네, J 시티에 있었어요.”
  • “우리 회사 박 대표님도 고향이 J 시티라고 들었는데, 저녁에 어떻게든 술자리를 마련할 테니까 같은 고향이라는 걸 이용해서 박 대표님 생각을 좀 떠보는 게 어때요?”
  • 그의 말투는 그녀의 의견을 묻는 것처럼 들렸지만, 전혀 거절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 하지만 박시혁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허청아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진 부장님, 지금 제 신분으로 박 대표님과 상의할 자격은 없는 것 같은데요.”
  • “술을 마시다 보면 가까이 가서 몇 마디 나누는 것도 이상할 것 없잖아요.”
  • “하지만…”
  • “그럼 이렇게 결정합시다. 괜히 나 망신 주지 말고 저녁에 제대로 좀 꾸미고 나와요.”
  • 그 말을 끝으로 진 부장은 호텔 밖으로 향했고, 박가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흘기더니 허청아를 끌고 뒤따라 갔다.
  • 저녁무렵 한양그룹 책임자와 첫 번째 협상이 끝난 뒤 진 부장은 허청아에게 얼른 호텔로 돌아가 준비하라고 재촉했다.
  • 무슨 방법을 썼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박시혁은 정말 호텔 레스토랑 룸에 나타났다.
  • 허청아가 룸에 들어서자마자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는 그가 눈에 들어왔다.
  • 박시혁은 정장을 벗어 소파 팔걸이에 걸쳐놓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흰색 셔츠의 윗단추를 몇 개 풀어 놓았다.
  • 쿨톤의 하얀 피부에 금속 테 안경을 착용한 모습은 충분히 금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 이 레스토랑 룸에는 허청아와 진 부장, 그리고 박시혁과 그의 비서까지 모두 네 명이었다.
  • 허청아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자 진 부장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박시혁과 가장 가까운 쪽에 있는 의자를 빼주며 입을 열었다.
  • “자, 청아 씨,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 “……”
  • 그녀는 주춤거리더니 할 수 없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 하지만 자리에 앉기 전에 박시혁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 “허청아 씨는 비서 아닙니까? 언제부터 홍보팀 일까지 도맡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