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박시혁의 번호

• 그녀는 박시혁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그는 엄마의 모든 치료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고의 의료진을 찾아주겠다고 했다.
• 지금은 이게 그녀에겐 유일한 선택이었다.
• 허청아는 미친 듯이 중학교 동창들의 연락처를 찾아보다가 겨우 한 명을 찾아 다시 단톡방에 초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녀가 단톡방을 나온 뒤로 박시혁도 그 단톡방에서 나갔다.
• [지금 박시혁과 연락이 닿는 사람 있어?]
•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어떻게 떠들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
• 이내 동창인 안철수가 답장을 보냈다.
• [어라? 전에 단톡방에 있었는데? 며칠 전까지도 분명 봤는데 언제 단톡방에서 나간 거지?]
• [나간 것도 이상한 건 아니잖아? 지금은 대산그룹의 대표라 급이 달라졌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랑 무슨 할 말이 있겠어?]
• [풉, 지금 질투하냐?]
• 단톡방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이야기 주제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허청아의 말은 금방 위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고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단톡방에서 누군가 그녀를 태그했다.
• [허청아? 나한테 박시혁 번호는 있지만 오랫동안 연락한 적이 없어서 번호를 바꿨는지 모르겠네. 이것도 지난번에 먼저 연락해 와서 자기를 단톡방에 초대해 달라고 했거든. 그때 저장해 뒀어.]
• 답장을 보낸 건 중학교 때 반장이었다. 반장은 바로 개인톡으로 그녀에게 번호를 보냈다.
• 허청아는 보물이라도 얻은 듯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들려오는 건 차가운 기계음이었다.
• “전원이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찬물을 그녀에게 끼얹는 것 같았고, 순식간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예 단톡방에서 나와버렸다.
•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박시혁 말을 진짜 믿는 거야? 사랑하는 여자도 있으면서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던 건 그냥 애인과 다투고 홧김에 얘기한 거겠지!’
• 어떻게 두 사람 사이의 신분 차이를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쉽게 만날 수도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도 도와주길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 휴대폰을 내려 놓은 허청아는 중환자실로 돌아갔다.
• 정선영은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혼수상태에 빠진 것인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 뒤에서 정선영의 여러 가지 상태 수치를 체크하던 주치의가 낮은 목소리로 허청아에게 물었다.
• “생각은 좀 해보셨습니까? 수술받으시겠어요?”
• “선생님, 수술 비용을… 할부로 갚을 수 있을까요?”
• 허청아가 목멘 소리로 겨우 물었다. 하루 종일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한 탓에 입술마저 갈라져 매우 안타까워 보일 정도였다.
• “그건 안 됩니다.”
• 주치의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저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허청아 씨도 지금 어머님의 상태를 잘 알고 계시잖아요. 게다가 두 분께 고정 자산도 없으니 병원에서도 먼저 수술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이 점에 대해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 “……”
• 사실 허청아도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 확실히 지금 그녀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니.
• “일단 식사부터 하시고 오시죠. 여긴 제가 대신 지켜보고 있을게요. 오늘 청아 씨 어머님은 중환자실에 계셔야 하는데 혼자 지키려면 힘드실 겁니다.”
• 허청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 하지만 이런 상황에 어찌 밥이 넘어가겠는가? 그녀는 물을 한 병 사고 휴대폰으로 결제하려 할 때 방금 전 그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 박시혁이었다.
• 허청아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박시…”
•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누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