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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 여승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웅크려 앉았다.
  • 이 아이는 용모가 수려하고 마음에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여승현은 이런 일에 절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해 봐도 지금의 그는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 “너 몇 살이야? 몇 살인데 벌써 엄마가 이런 바지를 입혀 줘?”
  • 그는 심재민의 바지 지퍼가 낀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 심재민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저 네 살이에요! 다 큰 남자아이라고요!”
  • “다 큰 녀석이 바지 지퍼가 낀 것도 해결하지 못 해?”
  • 여승현은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어찌 된 영문인지 그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눈앞의 이 아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참지 못하고 몇 마디 더 하게 되었다.
  • 심재민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너무 짧은 변화라서 누구도 캐치할 수가 없었다.
  • “됐어.”
  • 여승현이 그의 바지 지퍼를 여는 순간 심재민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 “아, 아저씨, 저 못 참겠어요!”
  • “뭐?”
  • 여승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며 그의 얼굴을 습격했다.
  • “미안해요. 일부러 한 건 아니에요!”
  • 심재민은 얼른 사과하고 나서 미꾸라지처럼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 그제야 여승현은 자신의 얼굴에 뿌려진 액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 ‘이런! 개구쟁이 어린아이가 감히 여씨 그룹의 대표님 얼굴에 오줌을 쌌다고?’
  • 여승현은 화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 “이놈 자식, 당장 여기로 나와!”
  • 오랫동안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없었다.
  • 심재민은 화장실 안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어려 있었지만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 “아저씨, 미안해요. 저 진짜 참지 못하고 실수한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엄마한테 얘기해서 아저씨께 돈으로 배상할게요. 아니면 아저씨도 저한테 오줌을 싸겠어요?”
  • 이 말은 들은 여승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 ‘여씨 그룹의 대표가 한낱 아이한테 오줌을 싸라고? 이게 말이 돼?’
  • 여승현은 아직도 화가 식지 않았다. 하나 얼굴의 느낌은 그를 더욱 열받게 하였다.
  • 그는 재빨리 물로 얼굴을 씻었지, 여전히 참을 수 없었다. 손 세정제로 서너 번 얼굴을 씻었지만 그 냄새는 씻기질 않았다.
  • 심재민은 바깥의 인기척을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엄마를 괴롭힌 대가야! 우릴 버린 대가야! 오늘은 내가 당신에게 작은 교훈을 주어서 이 몇 년 동안의 이자로 칠 거야. 우리의 계산은 천천히 하도록 하지!’
  • 심재민의 눈동자에는 목적을 달성한 흥분의 감정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흐느끼는 말투로 말하였다.
  • “아저씨, 절 때리지 말아요. 자기 아들한테 오줌 맞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저도 진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아저씨도 저의 엄마한테 말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엄마가 저를 때려죽일 거예요! 흑흑!”
  • 마지막에 심재민은 진짜로 우는 소리까지 냈다.
  • 여승현이 갑자기 움찔했다.
  • ‘내 아들? 그때 심가희가 죽지 않았더라면 우리 사이에 태어난 아이도 이만큼 컸을까?’
  • 여승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여태껏 이렇게 난처해 본 적이 없었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다크써클이 내려온 눈은 그렇게도 화난 모습이었다.
  • ‘눈이?’
  • 여승현은 아까 그 아이도 자신과 똑같은 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 ‘어쩐지 그 자식이 낯익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봉안이었구나.’
  • 해성시를 통틀어서 그 같은 봉안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는 이 아이한테 조금 더 인내심이 생겼을 것이다.
  • 여승현은 한숨을 쉬며 차갑게 말했다.
  •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너의 엄마도 안돼. 알아들었어? 나중에 다시 만나도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마.”
  • “아, 알겠어요! 절대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을게요!”
  • 심재민은 얼른 대답했다. 그런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 차마 나무랄 수가 없었다.
  • 오늘 여승현은 손해를 봤으나 혼자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 그는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화장실을 바라보다가 노발대발하며 화장실을 나갔다.
  •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 밖에서 비서의 고함이 들려왔다. 그러나 여승현은 성큼성큼 빠르게 지나갔다.
  • 심재민은 밖에서 소리가 나지 않자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여승현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작은 손이 세면대 아래에서 핀홀 카메라를 찾아냈다. 그는 핀홀 카메라를 호주머니에 넣은 뒤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 심가희가 화장실에서 나온지 한참 되었는데도 심재민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녀가 찾으러 가 보려 할 때 노기등등한 여승현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젖어 있는 머리는 바로 앞에 감은 것 같았다.
  • 여승현은 항상 이미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심가희는 이 남자의 이런 면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여승현은 너무 망가진 모습이었다. 심가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멍해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비켜섰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낮춰야만 했다.
  • 그녀는 이미 돌아왔다.
  • 5년 전 그들이 그녀에게 진 빚은 천천히 돌려받을 것이니 급하지는 않았다.
  • 여승현이 노기등등하게 자리를 뜨고 난 뒤에 심재민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 “재민아.”
  • 심가희는 그의 팔을 잡고 앞뒤로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가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 심재민은 심가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모른 척하면서 물었다.
  • “엄마, 왜 그래요? 나는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인데 뭘 그렇게 놀라요? 맞다, 방금 지나간 아저씨 진짜 멋있어요. 엄마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