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한정그룹에서 캐슬린 씨의 사생활 보호가 너무 엄격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만 한 장의 사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듣기에 의하면 매우 아름다운 여성분이라고 합니다.”
송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여자라니! 그것도 매우 아리따운 여자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논리에 부합되지 않았다.
‘어느 여자가 자동차에 관심을 보인단 말인가?’
송율의 의혹에 여승현은 개의치 않고 자료에 쓰여 있는 심가희 이 세 글자를 뚫어지듯 보았다. 그 신비한 눈동자 사이로 누구도 그의 속마음을 보아낼 수 없었다. 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 리듬과 함께 방 안의 분위기가 딱딱해지게 하였다.
“대표님…”
“내가 직접 공항에 데리러 갈 테니 준비해.”
여승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색다른 빛이 돌고 있었다.
‘심가희!’
‘한 글자도 차이 나지 않는 건 과연 우연일가?’
5년 전의 화재 현장에서 그 누구도 심가희의 시체를 찾지 못하였다. 경찰은 불기운이 너무 커서 시체가 이미 재로 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여승현은 결코 심가희가 죽었다고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것은 현재 이 캐슬린의 이름도 심가희라니!’
그는 빨리 이 유명한 디자이너를 만나고 싶었다.
송율은 잠시 멍해 있었다. 5년 간 여승현이 직접 공항에 사람을 데리러 가는 일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몇 초 동안 멍해 있었을 뿐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항에 나갈 준비를 하였다.
여승현을 태운 차가 공항에 도착할 무렵 심가희가 탄 비행기도 금방 착륙하였다.
심가희는 트렁크를 가지고 검색대에서 나왔다. 갈색 긴 웨이브에 뽀얀 피부, 주먹만 한 얼굴에 박힌 크고 또랑또랑한 두 눈, 오뚝한 코에 완벽한 몸매까지 갖춘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한눈에 받았다. 그녀 옆의 흰색 운동복을 입은 남자아이는 매우 탱글탱글한 피부를 가졌는데 그가 매번 긴 속눈썹이 달린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당장 가서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캡 모자를 반대로 쓰고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는 유유히 심가희를 따라갔다. 보기엔 꾸러기 같은 산만함이 있지만, 그의 어여쁜 눈이 포함한 매서운 카리스마가 사람들을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였다.
“심재민, 여기 해성시야. 미국이 아니라고. 네 그 오만한 표정 좀 거두고 빨리 따라와.”
심가희는 아들의 이런 표정이 너무나 어이가 없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심재민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점점 여승현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끔 심가희는 유전자의 막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래도 심재민이 자신을 좀 더 닮기를 바랐다.
“엄마, 왜 그러세요?”
심재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개구쟁이처럼 굴었다.
심가희는 웃으며 머리를 흔들더니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볼을 콕 짚으면서 말했다.
“네 그런 얼굴로 나한테 애교 부리지 마. 넌 내 아들이야. 네가 어떤지 내가 모를까 봐 그래? 미리 말해 두는데 이번에 해성시에 돌아와서 너 또 사고 치면 안 돼, 알겠어?”
“알겠어요, 엄마는 일하러 돌아온 거고 나는 그저 엄마가 어릴 때 계셨던 곳을 구경하러 왔는걸요. 사고 치지 않을게요. 엄마, 난 엄마 아들인데 왜 나한테 적을 방어하듯이 대하는 거예요.”
심재민은 입을 삐죽 내밀면서 불만을 표했다.
심가희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네 그 몸뚱이 속에 있는 개구쟁이한테 미리 말해주는 거야. 가자, 먼저 공항을 나가서 나수영 이모한테 연락하고 이모 집에서 당분간 며칠 지내자.”
“네.”
심재민은 천사처럼 미소를 지으며 심가희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심재민은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 사람은 자기 자신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으며 그의 몸에서 나오는 차가운 기운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강렬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저분이 여승현이겠지? 엄마가 계속 말하던 아빠인가?’
심재민은 슬그머니 머리를 들어 심가희를 보았다. 그녀가 한창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 걸 보고는 갑자기 배를 끌어안고 말했다.
“엄마, 나 배 아파요. 먼저 화장실 가야 될 거 같아요!”
얼굴이 빨개지면서 배를 끌어안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들을 본 심가희가 말했다.
“엄마랑 같이 가자.”
심가희가 심재민을 안으려고 두 팔을 벌렸는데 심재민이 재빨리 일어나더니 먼저 도망쳐 버렸다.
“아니에요, 엄마. 더는 못 참겠어요. 금방 올 테니 밖에서 절 기다려 주세요.”
심재민은 말하고 나서 빛의 속도로 뛰어갔다.
심가희는 총애하는 눈빛으로 그의 모습을 보더니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고는 전화를 걸었다.
“수영아, 나 가희야. 나 돌아왔어.”
심가희가 전화 건 이 여인의 이름은 나수영, 둘은 오랜 단짝이었다. 5년 간 그녀들은 계속 연락해 왔으며 현재 나수영은 유치원 교사를 맡고 있었다. 자신의 단짝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수영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언제 돌아온 거야? 내가 휴가를 신청하고 너 데리러 갈게. 지금 공항이야?”
나수영이 말했다. 그녀의 기분은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하였다.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 나 재민이 데리고 왔어. 좀 있다가 택시 타고 너희 집으로 갈게.”
심가희는 앞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하면서 걷다가 앞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심가희는 머리를 숙이고 연거푸 사과를 하고는 머리를 들고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