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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진짜 우연일가?

  • 심가희!
  • ‘캐슬린의 본명이 심가희라고?’
  • 여승현의 동공이 흔들렸다.
  • “캐슬린의 사진은? 없어?”
  • “죄송합니다. 한정그룹에서 캐슬린 씨의 사생활 보호가 너무 엄격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만 한 장의 사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듣기에 의하면 매우 아름다운 여성분이라고 합니다.”
  • 송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여자라니! 그것도 매우 아리따운 여자라니!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논리에 부합되지 않았다.
  • ‘어느 여자가 자동차에 관심을 보인단 말인가?’
  • 송율의 의혹에 여승현은 개의치 않고 자료에 쓰여 있는 심가희 이 세 글자를 뚫어지듯 보았다. 그 신비한 눈동자 사이로 누구도 그의 속마음을 보아낼 수 없었다. 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 리듬과 함께 방 안의 분위기가 딱딱해지게 하였다.
  • “대표님…”
  • “내가 직접 공항에 데리러 갈 테니 준비해.”
  • 여승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색다른 빛이 돌고 있었다.
  • ‘심가희!’
  • ‘한 글자도 차이 나지 않는 건 과연 우연일가?’
  • 5년 전의 화재 현장에서 그 누구도 심가희의 시체를 찾지 못하였다. 경찰은 불기운이 너무 커서 시체가 이미 재로 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여승현은 결코 심가희가 죽었다고 믿지 않았다.
  • ‘믿을 수 없는 것은 현재 이 캐슬린의 이름도 심가희라니!’
  • 그는 빨리 이 유명한 디자이너를 만나고 싶었다.
  • 송율은 잠시 멍해 있었다. 5년 간 여승현이 직접 공항에 사람을 데리러 가는 일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몇 초 동안 멍해 있었을 뿐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항에 나갈 준비를 하였다.
  • 여승현을 태운 차가 공항에 도착할 무렵 심가희가 탄 비행기도 금방 착륙하였다.
  • 심가희는 트렁크를 가지고 검색대에서 나왔다. 갈색 긴 웨이브에 뽀얀 피부, 주먹만 한 얼굴에 박힌 크고 또랑또랑한 두 눈, 오뚝한 코에 완벽한 몸매까지 갖춘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한눈에 받았다. 그녀 옆의 흰색 운동복을 입은 남자아이는 매우 탱글탱글한 피부를 가졌는데 그가 매번 긴 속눈썹이 달린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당장 가서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캡 모자를 반대로 쓰고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는 유유히 심가희를 따라갔다. 보기엔 꾸러기 같은 산만함이 있지만, 그의 어여쁜 눈이 포함한 매서운 카리스마가 사람들을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였다.
  • “심재민, 여기 해성시야. 미국이 아니라고. 네 그 오만한 표정 좀 거두고 빨리 따라와.”
  • 심가희는 아들의 이런 표정이 너무나 어이가 없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 심재민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점점 여승현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끔 심가희는 유전자의 막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래도 심재민이 자신을 좀 더 닮기를 바랐다.
  • “엄마, 왜 그러세요?”
  • 심재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개구쟁이처럼 굴었다.
  • 심가희는 웃으며 머리를 흔들더니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볼을 콕 짚으면서 말했다.
  • “네 그런 얼굴로 나한테 애교 부리지 마. 넌 내 아들이야. 네가 어떤지 내가 모를까 봐 그래? 미리 말해 두는데 이번에 해성시에 돌아와서 너 또 사고 치면 안 돼, 알겠어?”
  • “알겠어요, 엄마는 일하러 돌아온 거고 나는 그저 엄마가 어릴 때 계셨던 곳을 구경하러 왔는걸요. 사고 치지 않을게요. 엄마, 난 엄마 아들인데 왜 나한테 적을 방어하듯이 대하는 거예요.”
  • 심재민은 입을 삐죽 내밀면서 불만을 표했다.
  • 심가희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 “네 그 몸뚱이 속에 있는 개구쟁이한테 미리 말해주는 거야. 가자, 먼저 공항을 나가서 나수영 이모한테 연락하고 이모 집에서 당분간 며칠 지내자.”
  • “네.”
  • 심재민은 천사처럼 미소를 지으며 심가희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 그때 심재민은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 그 사람은 자기 자신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으며 그의 몸에서 나오는 차가운 기운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강렬하게 느껴졌다.
  • ‘아마도 저분이 여승현이겠지? 엄마가 계속 말하던 아빠인가?’
  • 심재민은 슬그머니 머리를 들어 심가희를 보았다. 그녀가 한창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 걸 보고는 갑자기 배를 끌어안고 말했다.
  • “엄마, 나 배 아파요. 먼저 화장실 가야 될 거 같아요!”
  • 얼굴이 빨개지면서 배를 끌어안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들을 본 심가희가 말했다.
  • “엄마랑 같이 가자.”
  • 심가희가 심재민을 안으려고 두 팔을 벌렸는데 심재민이 재빨리 일어나더니 먼저 도망쳐 버렸다.
  • “아니에요, 엄마. 더는 못 참겠어요. 금방 올 테니 밖에서 절 기다려 주세요.”
  • 심재민은 말하고 나서 빛의 속도로 뛰어갔다.
  • 심가희는 총애하는 눈빛으로 그의 모습을 보더니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고는 전화를 걸었다.
  • “수영아, 나 가희야. 나 돌아왔어.”
  • 심가희가 전화 건 이 여인의 이름은 나수영, 둘은 오랜 단짝이었다. 5년 간 그녀들은 계속 연락해 왔으며 현재 나수영은 유치원 교사를 맡고 있었다. 자신의 단짝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수영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 “언제 돌아온 거야? 내가 휴가를 신청하고 너 데리러 갈게. 지금 공항이야?”
  • 나수영이 말했다. 그녀의 기분은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하였다.
  •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 나 재민이 데리고 왔어. 좀 있다가 택시 타고 너희 집으로 갈게.”
  • 심가희는 앞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하면서 걷다가 앞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 “죄송합니다.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 심가희는 머리를 숙이고 연거푸 사과를 하고는 머리를 들고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 ‘그다! 여승현!’
  •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