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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뭣들 하는 거야

  • 심가희는 놀라서 얼굴이 다 파랗게 질렸다.
  • 여승현은 패기 있고 집착이 강한 남자여서 하고 싶은 일은 전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 그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비록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이 계획의 일환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자신을 드러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일단 그녀의 몸에 있는 화상이 여승현의 눈에 띄기만 하면 모든 계획이 더는 진행되기 어렵다. 이 5년간 겪어 왔던 뼈를 깎는 아픔도 물거품이 될 것이고.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가희의 온몸에 힘이 불끈 솟구쳤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바로 여승현의 코를 들이받았다. 여승현은 순간적으로 시큰한 느낌이 들었다.
  • 심가희를 후딱 놓아버린 여승현의 코에서 새빨간 피가 흘렀다. 그의 예쁜 봉안이 독 가시처럼 겁대가리 없는 여인을 노려보았다.
  • “밀고 당기는 건 뜻대로 되겠지만 심가희, 넌 내 앞에서 아직 어려. 말해봐. 무슨 목적이야? 그리고 정체는?”
  • 여승현이 비록 고통스러워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나고 코에서 피도 흘렀지만,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는 기백과 사람의 마음을 압박하는 기세는 여전했다.
  • 심가희는 심장이 곧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그녀는 머리가 몹시 아팠다!
  • ‘설마 이 남자의 코가 쇠로 만들어졌을까?’
  • 그렇게 취약한 곳을 맞고도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그녀를 위협하다니. 과연 소갈머리 없는 여승현이었다!
  • 심가희는 자신의 잠옷을 재빠르게 바로잡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여승현을 경계하며 쌀쌀하게 말했다.
  • “대표님은 말도 참 잘하시네요. 우리 집에 와서 저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서 지금 또 질문까지 하다니. 묻건대 대표님은 무슨 권리로 저를 이렇게 대하는 거예요? 아무리 협력사라도 당신의 여자친구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난감하게 했고 당신은 또 저를 찾아와 능욕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 한정그룹에 사람이 없는 줄로 알고 그렇게 업신여기는 거예요? 만약 대표님이 또 이렇게 몰아붙인다면 제가 당신네 항우그룹을 봐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직접 경찰서에 가서 얘기해요.”
  • 울분을 토하는 심가희를 바라보며 화염처럼 타오르는 예쁜 봉안에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욱 돋보였고 그의 기억 속의 한 사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 여승현의 표정은 다소 무거웠지만 더는 심가희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 그가 알고 싶어 하는 일은 여태까지 모르는 바가 없었으니 이 여자의 정체도 조만간에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 “심가희, 당신 정체가 지금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인 게 제일 좋을 거야. 그렇지 않고 나 여승현을 몰래 음해하려 한다면 절대 좋은 결과가 없어.”
  • “대표님은 지금 저를 협박하는 거예요? 아이고, 무서워라! 만약 대표님이 합작할 성의가 없다면 우리 그룹 대표님에게 전화하세요. 또는 저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품고 있다면 우리 대표님한테 디자이너를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약한 여자를 괴롭힐 필요는 없어요. 그러면 저만 못마땅하게 느껴질 거예요.”
  • 심가희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 여승현은 심가희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 허점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너무도 위장을 잘했다. 분노한 눈을 부릅뜨고 마치 그가 무슨 도저히 용서 못할 죄를 지은 것처럼 노려보고 있다.
  • 몇 초간 마주친 두 쌍의 눈이 마치 강자의 대결 같았다.
  • 심가희는 등이 흠뻑 젖는 느낌이 들었다.
  • 비록 외국에서 5년을 연마했다지만, 결국 기세에서 그녀는 여전히 눈앞의 이 남자를 이길 수 없었다.
  • 심가희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귓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뭣들 하는 거예요?”
  • 한소희는 이곳에서 여승현을 만날 줄을 전혀 몰랐고, 여승현과 심가희가 눈길을 마주치고 있는 것이 불편해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 심가희는 이 순간만큼은 한소희가 와 준 것이 더없이 고마웠다.
  • 그녀가 먼저 눈을 돌려 한소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 “한소희 씨, 대표님을 데리러 온 거예요? 아니면 당신 부부가 쌍으로 달려들어 저를 여기서 괴롭히고 죽여서 끝낼 거예요? 궁금합니다만, 제가 두 분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렇게 찾아와 귀찮게 하는 거예요?”
  • 심가희의 목소리는 자못 쌀쌀했다.
  • 여승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코를 훔치며 한옆으로 비켜섰는데 어쩌다가 그만 심가희의 옆에 서고 말았다.
  • “여긴 뭐 하러 왔어?”
  • 여승현의 목소리는 쌀쌀했다.
  • 한소희는 이들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의외로 강렬한 위기감이 들었다. 그것은 5년 전에 심가희와 여승현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봤을 때의 그런 느낌이었다.
  • 그녀는 마음속으로 질투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지만 여승현의 쌀쌀한 눈빛을 견딜 수 없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억누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사람을 찾아 캐슬린 디자이너의 주소를 알아보고 일부러 사과하러 찾아온 거예요. 제가 무모한 거 알아요. 미안해요, 캐슬린 씨. 제 결례를 용서해 주세요. 제발 항우그룹으로 돌아가서 근무하세요.”
  • 한소희는 되도록 자신이 아주 비굴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여승현이 자기의 성의를 본다면 심가희가 돌아가든 말든 자기를 탓하지 않을 테니까.
  • 이런 생각으로 한소희는 바로 심가희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이때 한 줄기 반사광선 때문에 심가희는 눈을 가늘게 뜰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