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현은 패기 있고 집착이 강한 남자여서 하고 싶은 일은 전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 그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비록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이 계획의 일환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자신을 드러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일단 그녀의 몸에 있는 화상이 여승현의 눈에 띄기만 하면 모든 계획이 더는 진행되기 어렵다. 이 5년간 겪어 왔던 뼈를 깎는 아픔도 물거품이 될 것이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가희의 온몸에 힘이 불끈 솟구쳤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바로 여승현의 코를 들이받았다. 여승현은 순간적으로 시큰한 느낌이 들었다.
심가희를 후딱 놓아버린 여승현의 코에서 새빨간 피가 흘렀다. 그의 예쁜 봉안이 독 가시처럼 겁대가리 없는 여인을 노려보았다.
“밀고 당기는 건 뜻대로 되겠지만 심가희, 넌 내 앞에서 아직 어려. 말해봐. 무슨 목적이야? 그리고 정체는?”
여승현이 비록 고통스러워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나고 코에서 피도 흘렀지만,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는 기백과 사람의 마음을 압박하는 기세는 여전했다.
심가희는 심장이 곧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머리가 몹시 아팠다!
‘설마 이 남자의 코가 쇠로 만들어졌을까?’
그렇게 취약한 곳을 맞고도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그녀를 위협하다니. 과연 소갈머리 없는 여승현이었다!
심가희는 자신의 잠옷을 재빠르게 바로잡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여승현을 경계하며 쌀쌀하게 말했다.
“대표님은 말도 참 잘하시네요. 우리 집에 와서 저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서 지금 또 질문까지 하다니. 묻건대 대표님은 무슨 권리로 저를 이렇게 대하는 거예요? 아무리 협력사라도 당신의 여자친구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난감하게 했고 당신은 또 저를 찾아와 능욕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 한정그룹에 사람이 없는 줄로 알고 그렇게 업신여기는 거예요? 만약 대표님이 또 이렇게 몰아붙인다면 제가 당신네 항우그룹을 봐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직접 경찰서에 가서 얘기해요.”
울분을 토하는 심가희를 바라보며 화염처럼 타오르는 예쁜 봉안에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욱 돋보였고 그의 기억 속의 한 사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승현의 표정은 다소 무거웠지만 더는 심가희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가 알고 싶어 하는 일은 여태까지 모르는 바가 없었으니 이 여자의 정체도 조만간에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심가희, 당신 정체가 지금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인 게 제일 좋을 거야. 그렇지 않고 나 여승현을 몰래 음해하려 한다면 절대 좋은 결과가 없어.”
“대표님은 지금 저를 협박하는 거예요? 아이고, 무서워라! 만약 대표님이 합작할 성의가 없다면 우리 그룹 대표님에게 전화하세요. 또는 저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품고 있다면 우리 대표님한테 디자이너를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약한 여자를 괴롭힐 필요는 없어요. 그러면 저만 못마땅하게 느껴질 거예요.”
심가희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여승현은 심가희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 허점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너무도 위장을 잘했다. 분노한 눈을 부릅뜨고 마치 그가 무슨 도저히 용서 못할 죄를 지은 것처럼 노려보고 있다.
몇 초간 마주친 두 쌍의 눈이 마치 강자의 대결 같았다.
심가희는 등이 흠뻑 젖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외국에서 5년을 연마했다지만, 결국 기세에서 그녀는 여전히 눈앞의 이 남자를 이길 수 없었다.
심가희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귓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뭣들 하는 거예요?”
한소희는 이곳에서 여승현을 만날 줄을 전혀 몰랐고, 여승현과 심가희가 눈길을 마주치고 있는 것이 불편해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심가희는 이 순간만큼은 한소희가 와 준 것이 더없이 고마웠다.
그녀가 먼저 눈을 돌려 한소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한소희 씨, 대표님을 데리러 온 거예요? 아니면 당신 부부가 쌍으로 달려들어 저를 여기서 괴롭히고 죽여서 끝낼 거예요? 궁금합니다만, 제가 두 분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렇게 찾아와 귀찮게 하는 거예요?”
심가희의 목소리는 자못 쌀쌀했다.
여승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코를 훔치며 한옆으로 비켜섰는데 어쩌다가 그만 심가희의 옆에 서고 말았다.
“여긴 뭐 하러 왔어?”
여승현의 목소리는 쌀쌀했다.
한소희는 이들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의외로 강렬한 위기감이 들었다. 그것은 5년 전에 심가희와 여승현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봤을 때의 그런 느낌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질투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지만 여승현의 쌀쌀한 눈빛을 견딜 수 없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억누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찾아 캐슬린 디자이너의 주소를 알아보고 일부러 사과하러 찾아온 거예요. 제가 무모한 거 알아요. 미안해요, 캐슬린 씨. 제 결례를 용서해 주세요. 제발 항우그룹으로 돌아가서 근무하세요.”
한소희는 되도록 자신이 아주 비굴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여승현이 자기의 성의를 본다면 심가희가 돌아가든 말든 자기를 탓하지 않을 테니까.
이런 생각으로 한소희는 바로 심가희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이때 한 줄기 반사광선 때문에 심가희는 눈을 가늘게 뜰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