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여승현이 주동적으로 여자와 접촉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송율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5년 전 부인이 뜻밖의 사고를 겪은 후, 그는 더욱더 차갑게 변해 사람들이 그를 멀리할 정도였는데 이렇게 전에 없던 적극적인 모습은 처음이었다.
송율은 저도 모르게 심가희를 한 번 더 쳐다보곤 이내 그녀의 미모에 놀랐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예술가가 한 땀씩 조각해 놓은 듯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미모에 놀란 건 여승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승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뒷걸음질 치면서 차갑게 말했다.
“길 좀 똑바로 보고 걸으세요.”
심가희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지금의 얼굴은 예전의 자신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여전히 피부에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9개월간 고생하며 아이를 낳은 뒤 성형수술을 받았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매번 한밤중마다 꿈을 꾸면 그녀는 악몽에서 놀라 깨어났으며 눈물이 베개 수건을 적셨다. 지금 원흉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니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그의 심장을 도려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또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네가 심장이 있긴 해?’
심재민이 다 먹지 못한 막대사탕을 들고 오던 심가희는 여승현과 부딪히면서 그의 양복에 막대사탕이 묻고 말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그쪽 양복이 더러워진 거 같은데 제가 같은 거로 한 벌 배상해 드릴게요. 전화번호 있으세요? 제가 새 양복 사서 사람 시켜 보내 드리도록 하죠.”
심가희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 가라앉았다.
여승현의 눈동자에 실망한 듯한 기색이 보였다.
‘그녀가 아니야!’
얼굴도 다를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는 심가희의 목소리가 꾀꼬리 소리처럼 맑고 깨끗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은 비록 아름답지만,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허스키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여승현의 안색이 다시 차가워졌다.
“아니요. 그냥 양복일 뿐인데요, 뭐.”
말을 마친 후 그는 바로 양복 외투를 벗어 심가희가 보는 앞에서 멀지 않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버리는 것 같았다.
심가희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여승현의 눈에는 그녀가 그에게 반해서 연락처를 부탁하고 싶은 여자인지도 모른다.
심가희는 그의 뒷모습을 경멸하며 바라보았다. 자신이 곧 맞이할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여승현은 영문 모를 화가 치밀었다.
‘저 여자는 분명 심가희가 아닌데, 그녀에게 왜 친숙한 느낌이 느껴지는 걸까?’
“그녀가 아니야!”
심가희는 자기가 먼저 다가간 것을 알면 틀림없이 아주 기뻐할 것이다. 그는 심가희가 자신에 대한 감정을 알고 있었지만 방금 그 여인의 눈빛에는 정서적인 동요가 전혀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너무나도 심가희와 비슷했다!
여승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송율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곧바로 여승현의 등에 부딪혔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송율는 시큰거리는 코를 만지며 급히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여승현의 눈빛이 줄곧 심가희를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가희는 여승현과 짧은 만남을 가진 뒤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 걸음걸이와 걷는 모양새가 여승현을 다시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대표님, 저 여자한테 관심 있으세요?”
여승현이 송율을 한번 노려보자 송율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여승현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몹시 초조해하더니 몸을 돌려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송율은 여승현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드물어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다.
여승현은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고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정신을 차리려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옷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여승현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네댓 살쯤 되는 남자애 하나가 고개를 쳐들고 오른손으로 자기의 옷 밑자락을 잡아당기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이거 놔!”
여승현의 눈빛은 차갑고 온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일반 사람들을 피하게 하지만 눈앞의 남자아이는 꼼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