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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우리 엄마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오지 못해요

  • 멀리서 심가희를 발견한 여승현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몸매며 걸음걸이며 심가희와 너무나도 비슷했다!
  • 그는 저도 모르게 걸어가 일부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 여태껏 여승현이 주동적으로 여자와 접촉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송율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5년 전 부인이 뜻밖의 사고를 겪은 후, 그는 더욱더 차갑게 변해 사람들이 그를 멀리할 정도였는데 이렇게 전에 없던 적극적인 모습은 처음이었다.
  • 송율은 저도 모르게 심가희를 한 번 더 쳐다보곤 이내 그녀의 미모에 놀랐다.
  •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예술가가 한 땀씩 조각해 놓은 듯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 그녀의 미모에 놀란 건 여승현도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여승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뒷걸음질 치면서 차갑게 말했다.
  • “길 좀 똑바로 보고 걸으세요.”
  • 심가희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 지금의 얼굴은 예전의 자신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 그녀는 여전히 피부에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9개월간 고생하며 아이를 낳은 뒤 성형수술을 받았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 매번 한밤중마다 꿈을 꾸면 그녀는 악몽에서 놀라 깨어났으며 눈물이 베개 수건을 적셨다. 지금 원흉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니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그의 심장을 도려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또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 ‘네가 심장이 있긴 해?’
  • 심재민이 다 먹지 못한 막대사탕을 들고 오던 심가희는 여승현과 부딪히면서 그의 양복에 막대사탕이 묻고 말았다.
  •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그쪽 양복이 더러워진 거 같은데 제가 같은 거로 한 벌 배상해 드릴게요. 전화번호 있으세요? 제가 새 양복 사서 사람 시켜 보내 드리도록 하죠.”
  • 심가희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 가라앉았다.
  • 여승현의 눈동자에 실망한 듯한 기색이 보였다.
  • ‘그녀가 아니야!’
  • 얼굴도 다를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아니었다.
  • 그는 심가희의 목소리가 꾀꼬리 소리처럼 맑고 깨끗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은 비록 아름답지만,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허스키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 여승현의 안색이 다시 차가워졌다.
  • “아니요. 그냥 양복일 뿐인데요, 뭐.”
  • 말을 마친 후 그는 바로 양복 외투를 벗어 심가희가 보는 앞에서 멀지 않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버리는 것 같았다.
  • 심가희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 여승현의 눈에는 그녀가 그에게 반해서 연락처를 부탁하고 싶은 여자인지도 모른다.
  • 심가희는 그의 뒷모습을 경멸하며 바라보았다. 자신이 곧 맞이할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 여승현은 영문 모를 화가 치밀었다.
  • ‘저 여자는 분명 심가희가 아닌데, 그녀에게 왜 친숙한 느낌이 느껴지는 걸까?’
  • “그녀가 아니야!”
  • 심가희는 자기가 먼저 다가간 것을 알면 틀림없이 아주 기뻐할 것이다. 그는 심가희가 자신에 대한 감정을 알고 있었지만 방금 그 여인의 눈빛에는 정서적인 동요가 전혀 없었다.
  • 그녀의 두 눈은 너무나도 심가희와 비슷했다!
  • 여승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송율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곧바로 여승현의 등에 부딪혔다.
  • “대표님, 죄송합니다.”
  • 송율는 시큰거리는 코를 만지며 급히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여승현의 눈빛이 줄곧 심가희를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 심가희는 여승현과 짧은 만남을 가진 뒤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 걸음걸이와 걷는 모양새가 여승현을 다시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 “대표님, 저 여자한테 관심 있으세요?”
  • 여승현이 송율을 한번 노려보자 송율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 "화장실 좀 다녀올게."
  • 여승현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몹시 초조해하더니 몸을 돌려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 송율은 여승현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드물어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다.
  • 여승현은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고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정신을 차리려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옷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 여승현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네댓 살쯤 되는 남자애 하나가 고개를 쳐들고 오른손으로 자기의 옷 밑자락을 잡아당기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 “이거 놔!”
  • 여승현의 눈빛은 차갑고 온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일반 사람들을 피하게 하지만 눈앞의 남자아이는 꼼짝하지 않았다.
  • 아이의 두 눈이 그가 전에 어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 "아저씨,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 여승현을 똑바로 보고 있는 심재민의 그 순진무구한 눈빛은 여승현의 마음을 약해지게 했다.
  • "집안 어른들 안 계시니?"
  • "우리 엄마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오지 못해요!"
  • 심재민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 여승현은 도자기 인형처럼 어여쁜 어린애를 보고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 “내가 무엇을 도와주란 말이냐?”
  • "바지 지퍼가 걸렸는데 정말 급해요. 아저씨, 바지 지퍼 좀 열어 주시겠어요?"
  • 심재민은 말하는 사이에도 정말 참을 수 없는 것 같이 다리를 쉬지 않고 뭉그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