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민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며 그 한 쌍의 초롱초롱한 사슴 같은 눈망울로 심가희를 바라보는데 그렇게 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비록 심가희는 심재민이 일부러 그런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이런 어리광스러운 태도에 습관처럼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모는 널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너 신사답지 못하게 그럴 거야?”
“좋아요. 이모한테 사과할게요.”
심재민의 그 억울하다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숨을 내쉬더니 걸어 나갔다.
나수영은 여전히 심재민을 너무 귀여워했다.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즐겁고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안 돼 그는 또 심재민한테 다시 장난을 쳤다.
심재민은 엄마 심가희의 얼굴을 봐서 꾹 참긴 하지만 되도록 나수영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세 사람은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심가희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침밥은 이미 심재민이 사다가 밥상에 올려놓은 뒤였다.
“엄마, 좋은 아침.”
심가희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심재민은 비록 여승현과 많이 닮았지만 여승현은 여태껏 그녀한테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심재민은 심가희의 천사나 다름없고 그녀 한 사람만의 천사였다.
“좋은 아침!”
심가희는 행복을 느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수영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방을 걸어 나와 밥상에 놓여 있는 아침을 보고 금세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
“가희야, 넌 진짜 나의 천사야. 아침까지 사다 놓다니! 대박, 나 오늘 드디어 아침 먹고 수업을 하러 갈 수 있게 됐네.”
“재민이가 산 거야. 나도 금방 일어났어.”
심가희는 이렇게 오바하는 나수영의 모습이 일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심재민은 봐주기 어렵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나 진짜 이모네 유치원에 가야 해요?”
그의 말투에는 하찮다는 듯 경멸감이 묻어 있었다.
나수영은 이내 귀가 쫑긋해졌다.
“이놈, 너 그게 무슨 말투야? 말하는데 이모는 이 유치원에서 제일 잘나가는 선생님이야!”
“칫!”
심재민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바로 앉더니 수저를 집어 들고 먹기 시작했다.
나수영은 속상했다.
낌새를 느낀 심가희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나 오늘 항우그룹에 가서 얼굴도장 찍어야 해. 먼저 씻을게.”
“심가희, 너 진짜 의리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나수영을 뒤로 한 채 심가희는 이미 화장실로 들어갔다.
분주스러웠던 아침은 지나갔다. 심재민은 별수 없이 나수영을 따라 유치원에 가고 심가희만 항우그룹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녀는8년 전에 결혼하고 5년 전 여기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여씨 가문의 맏며느리로서, 여승현의 아내로서, 지금까지 항우그룹의 문턱을 한 걸음도 넘어서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그녀는 낯선 사람으로 돌아왔다. 지난밤에 여승현이 심가희 이름 석 자를 봤을 때 잠이 오긴 했는지 궁금했다.
심가희의 입가에는 이유 모를 미소가 살짝 번지려다가 갑자기 맺혔던 한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아파졌다.
그녀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항우그룹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손님, 누구 찾으러 오셨나요?”
프런트 안내원이 재빠르게 심가희를 발견하고 그를 저지시켰다.
심가희는 항우그룹 홀을 살펴보았는데 정말 기품 있고 웅장했다. 괜히 해성에 주력기업으로 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돌아왔으니 여씨 가문이 계속 해성시에서 최고의 위치에 굳건히 버티고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안다.
“여승현을 만나러 왔어요. 캐슬린이라고 전해 주세요. 미국 한정그룹에서 보낸 디자이너인데 보도하러 왔어요.”
심가희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설명을 들은 프런트 안내원은 쌀쌀맞던 태도를 접고 연신 웃는 얼굴로 말했다.
“캐슬린 님, 잠깐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대표님한테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심가희는 일부러 난처하게 굴지 않고 프런트에 서서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어디선가 낯익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비서, 대표님 왔죠? 아침에 급하게 나가서 아침밥을 안 먹었어요. 먹을 걸 좀 가져왔는데 전할 필요는 없고 제가 바로 올라가면 돼요.”
도시락을 들고 한소희는 빠르게 걸어왔다.
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전이랑 변함없이 예뻤고 심지어 몸매도 나무랄 데 없이 더 완벽해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살펴보던 심가희의 눈에서는 감출 수 없는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눈치채기라도 한 듯 고개 돌린 한소희는 곧장 심가희와 눈이 마주쳤다. 비록 심가희는 즉시 치밀어 올랐던 분노를 감췄지만 한소희는 여전히 곱지 않은 눈치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죠?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 누구라도 홀릴 것 같은 여우상 해서 혹시 우리 승현이 찾아온 건 아니겠죠?”
한소희는 심가희의 예쁘장한 외모에 질투심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막말을 내뱉었다.
왠지 이 여자는 여러 면에서 그녀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생긴 것도 너무 예뻤는데 심지어 그녀보다도 더 예쁜 정도였다. 그 몸매며 얼굴은 여자인 그녀도 방심하면 정신 놓을 지경인데 하물며 남자는 어떨까.
여기까지 생각하던 한소희는 바로 경계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장 비서, 경비한테 이 여자 빨리 항우그룹에서 쫓아내게 해주세요!”
한소희의 말에 난처해진 프런트 안내원이 심가희의 신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던 그때, 심가희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웃는 모습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쪽은 누구죠? 항우그룹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 확실히 날 보낼 건가요?”
심가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심지어 풍자와 경멸이 담긴 눈빛과 거들떠보지도 않는 표정이 한소희에게 생생한 자극을 주었다. 그녀는 갑자기 심가희가 자기를 도발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