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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묻지 말아야 할 건 묻지 마

  • 항우그룹에서 나온 심가희는 바로 약국을 찾아 얼음과 소염제를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 다행히 심재민은 나수영을 따라 어린이집에 가고 없었다. 그렇지 않고 아들에게 이 못난 꼴을 보인다면 아들이 또 언제까지 이것저것 캐어물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 가끔 심가희는 하늘이 감사하다. 그녀가 가장 절망할 때 그녀에게 심재민이라는 천사를 주었으니까. 심재민이 비록 아직 어리지만, 그녀에 대해 매우 자상했다.
  • 아들을 생각하자 심가희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 그녀는 집에 돌아와 얼굴에 얼음찜질을 했다. 그 서늘한 느낌에 그녀의 눈이 저도 모르게 가늘어졌다.
  • 한소희는 아직도 여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되지 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 ‘아들을 낳아준 것만으로도 한소희는 여승현에게 공신이 아닌가. 게다가 그녀에게 애정도 있어서 그녀를 위해 이 아내까지 죽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았을까?’
  • 심가희는 이 점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한소희에게서 뺨을 맞은 일은 그리 쉽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 여승현이 한정그룹과 협력하고 싶어 하는 마음가짐으로 보면 꼭 한소희더러 사과하도록 할 것이다. 그때 가서 여승현이 앞에 있다고 해도 그녀는 이 뺨을 한소희에게 갚아줄 것이다. 어차피 그녀는 지금 여승현의 아내 심가희가 아니니까.
  • 5년 전의 심가희는 이미 그 불길 속에서 죽었다.
  • 심가희는 여전히 뜨거운 불이 피부를 태우는 따가움과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 가슴이 찢기며 절망했던 그 순간, 그 느낌은 지옥에 가서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 이런 고통을 준 사람을 그녀는 한 명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얼굴 반쪽을 가린 채 침실에 들어간 심가희는 이 사실을 본사에 알리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 송율은 신속하게 심가희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가 주소를 건네자 여승현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 ‘이것은 나수영의 거처가 아닌가!’
  • 그는 심가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나수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이 캐슬린이 한국 이름이 심가희와 같을 뿐만 아니라 사는 곳까지 삼가희의 절친 나수영의 집이었다.
  • ‘여기에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을까? 역시 그녀가 바로 심가희라면?’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여승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 “가서 알아봐. 어떤 방법을 대서든 나는 캐슬린의 모든 자료를 알아야겠어. 특히 5년 전의 자료를 말이야.”
  • 여승현의 말을 듣고 송율은 어리둥절했다.
  • “대표님, 캐슬린의 자료는 미국 측에서 비밀에 부치고 있어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이전에도 누군가가 찾아봤지만 아무런 결과도 없었습니다.”
  • “그럼 비정상적인 루트로 알아봐.”
  • 여승현의 말에 송율은 다시 한번 어리둥절했다.
  • 비정상적인 루트가 어떤 루트인지 송율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승현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그 루트를 이용하지 않았고, 지금 의외로 캐슬린 때문에 이용하게 되어 송율은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 “대표님, 이 캐슬린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요?”
  •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마.”
  • 여승현의 경고에 송율은 목을 움츠렸다.
  • “네, 바로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 송율이 떠난 뒤 여승현은 초조하게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 그는 이미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데 오늘은 오히려 자신의 초조한 기분을 완화할 니코틴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똑같은 몸짓, 심지어 친구까지 똑같다는 게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그런데 그녀가 정말 심가희라면 왜 나를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 이승현은 5년 전에 심가희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 ‘도대체 5년 전에 무슨 일이 발생한 걸까?’
  • 인터넷상에서 심가희가 애인과 은밀하게 즐기다가 화재를 당했는데 시신이 없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그는 믿지 않았다.
  • ‘그렇게 나를 사랑하던 여자가 어떻게 소리 없이 마음이 변할 수 있을까?’
  • 하지만 그 두 명의 경호원이 실종되고 심가희도 시신이 남아 있지 않아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 그는 5년 전에 심가희가 임신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여승현과 심가희의 아이였다.
  • ‘그 아이도 아마 그 큰불에서 없어졌겠지?’
  • 여승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고 담뱃불이 깜박깜박하더니 곧 담뱃대를 쥐고 있는 그의 손가락 부분까지 타들어 갔다.
  • 그는 화들짝 놀라서 얼른 담뱃불을 끄고 손가락에 난 검은 점을 멍하니 보았다.
  • 심가희가 유별나게 아픈 걸 무서워하던 기억이 났다.
  • ‘큰불에 주변 모든 것이 타들어 가고 있을 때 그녀는 얼마나 아팠을까?’
  • 더는 일할 마음이 없어진 여승현은 자신의 양복 겉옷을 덥석 집어 들고 휭하니 사무실 문을 나섰다.
  • “대표님,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 “나 나갈 테니까 오늘 모든 회의는 다 연기해.”
  • 여승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사무실 입구로 사라졌고 멍한 표정의 비서만 남았다.
  • 이것은 여승현이 처음으로 치는 땡땡이였다.
  • 여승현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차를 잽싸게 운전하며 바로 나수영의 집 앞으로 갔다.
  • 딩동, 하고 초인종이 끊임없이 울렸다.
  • 잠에서 깨어난 심가희는 온몸이 나른했다.
  • 그녀는 나수영이 아닌 줄을 알고 있었다. 나수영은 열쇠가 있고 그녀 또한 배달 따위를 주문하지 않았다.
  • ‘그럼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한소희?’
  • 만약 한소희라면 심가희는 쉽게 문을 열어 줄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