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2화 밀고 당기기의 최고 경지

  • “심가희 씨의 재치 있는 언변은 당신의 디자인만큼이나 돋보입니다.”
  • 여승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손은 놓지 않았다.
  • 그는 그냥 심가희의 몸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고 그 기운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싶었다.
  • 심가희는 쌀쌀하게 웃으며 말했다.
  • “대표님은 집안일부터 잘 해결하세요.”
  • 말을 마치고 그녀는 바로 몸을 돌려 항우그룹을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승현도 막지 않았다.
  • 심가희가 항우그룹을 떠난 뒤에야 한소희는 앞으로 나서며 불안하게 말했다.
  • “승현아, 난 저 여자가 회사의 협력 디자이너인 줄을 몰랐어. 하지만 정말 그녀가 먼저 도발했어. 난…”
  • “여기는 뭐 하러 왔어?”
  • 얼음장같이 차가운 여승현의 표정은 한소희를 더욱 조마조마하게 했다.
  • “네가 아침을 거르는 걸 보고 굶은 채로 일하면 위가 안 좋을 것 같아서 먹을 걸 챙겨 왔어. 승현아,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니까 화 그만 내면 안 될까?”
  • 한소희는 가여운 표정으로 여승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 여승현은 그녀를 보았다. 한소희는 그 날카로운 눈빛을 견딜 수 없었다.
  • “승현아…”
  • “네가 먼저 손을 댄 거야?”
  • 그는 엘리베이터를 막 나오다가 한소희의 무지막지한 표정을 보았을 때의 엄청난 충격을 잊을 수 없었다.
  • 한소희는 반박하려다가 여승현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말했다.
  • “그래, 하지만 나는…”
  • “저 여자는 미국 한정그룹의 유명한 자동차 디자이너 캐슬린이야. 내가 이번에 모든 방법을 다해서 데려온 디자이너이기도 해. 지금 네가 그녀를 쫓아버렸으니 회사는 최소 200억 원의 손실을 보게 됐어. 이건 신용을 지키지 못한 손실이야. 한소희, 난 네가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의 용서를 구해서 내일 아침에 그녀가 우리 회사에 나타나 나와 협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하기를 바란다. 안 그러면 너를 여씨 가문에서 쫓아내도 날 탓하지 마!”
  • 여승현은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 한소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 “아니! 승현아, 넌 나한테 이렇게 하면 안 되잖아! 난 여준의 엄마야. 네가 나를 쫓아내면 여준이는 어떡해? 승현아, 내가 잘못했어. 난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 그녀는 여승현의 팔을 덥석 껴안고 애걸복걸했다.
  • 5년이다.
  • 그녀는 여준을 낳고 그 여준이 여씨 가문의 장손이라는 신분을 빌려 여씨 가문에 발 들여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여승현의 태도는 그냥 쌀쌀했다.
  • 그는 여준을 예뻐하며 여준에게 좋다는 것은 다 주었지만 여준의 엄마인 그녀는 낯선 사람 대하듯이 했다.
  • 모든 사람이 여승현이 그녀에게 잘해 주는 줄로 알고 있었고 확실히 물질적으로는 그녀에게 많은 만족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갖고 싶은 것은 여승현의 아내 신분이지 이처럼 모호하게 여준의 엄마로 여씨 가문에 얹혀사는 것은 아니었다.
  • 하지만 여승현은 그녀를 무시하며 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별의별 수단을 다 써 보았지만 여승현의 마음속은 고사하고 침실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여승현이 그녀를 여씨 가문에서 쫓아내겠다고 하는 말은 그녀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것이었다.
  • “내가 그 여자한테 가서 용서를 구할게! 내가 그녀에게 빌게! 승현아, 나와 여준을 떼어놓지 마! 내가 그 애를 낳으려다 출혈로 죽을 뻔한 걸 다 잊었어?”
  • “그게 아니라면 네가 여씨 가문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 여승현은 온몸으로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더욱 사정없는 말을 내뱉었다.
  • 한소희의 몸이 떨렸다. 그녀는 눈앞의 이 몰인정한 남자를 보며 한순간도 견딜 수 없었다.
  • “승현아, 너 어쩜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장 비서, 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이 여자가 내 사무실에 한 걸음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 그렇게 못하겠으면 인사팀에 가서 사표를 내고.”
  • 여승현은 한소희의 느낌은 아랑곳없이 차가운 말을 남기고 휭하니 홀을 떠났다.
  • 송율은 한마디 말도 없이 여승현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갈 때 여승현이 송율에게 말했다.
  • “가서 심가희가 묵고 있는 호텔을 알아보고 비싼 선물을 보내주면서 내가 사과하는 거라고 전해.”
  • “대표님, 한소희 씨더러 사과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왜 우리가 쓸데없는 사과를 하죠?”
  • 송율은 이해할 수 없었다.
  • 여승현은 송율에게 눈을 흘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 “한소희가 사과하는 것은 개인적인 매듭을 해결하는 것이야. 우리가 회사 차원에서 사과하는 것은 우리 회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고. 그 심가희가 정말 우리와 협력할 의향이 없는 줄 알았어? 그녀는 단지 이것을 빌미로 시작부터 나한테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거야. 하지만 조금 재미는 있는 여자야. 밀고 당기는 짓거리도 최고의 수준이거든. 됐어. 비싼 선물을 골라서 내가 직접 갖고 가지.”
  • 송율은 바로 멍해졌다.
  • “대표님, 직접 가다니요? 이건 그녀에게 너무 체면을 세워주는 게 아니에요?”
  • “그녀가 원하는 바가 바로 내가 직접 찾아가는 거야. 그녀가 무슨 속셈인지 직접 가봐야 알 수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해.”
  • 여승현은 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송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 5년이다. 여승현이 어느 여자를 위해 이렇게 신경 쓰는 걸 못 본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 과연 그 캐슬린 디자이너가 그렇게 큰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천년 빙산처럼 얼어붙은 여 대표의 마음이 바뀔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