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구경거리
- 야간 자습을 마치고 임아리는 집으로 향했다.
- 4월 말의 날씨는 아직도 약간 쌀쌀했다. 임아리는 아침에 옷장을 뒤졌지만 입을 만한 긴팔 셔츠를 찾지 못해 지금은 교복 재킷 안에 2~3년 동안 입었던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에 밤바람이 특히나 차가웠다. 임아리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 낡은 주택가가 눈앞에 나타나자 임아리는 걸음을 멈췄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임아리의 등을 비추고 있었다.
-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으면 나 이제 집에 들어갈 거야.”
- 임아리가 말을 마치자 네다섯 명의 껄렁껄렁한 불량배들이 어둠 속에서 나왔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담배를 물고 있었는데, 빨강과 초록이 섞인 머리에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 “꼬맹이가 제법이네.”
- 임아리는 움직이기 귀찮다는 듯 두 팔을 벌리고 태연하게 서서 불량배들이 자신을 둘러싸도록 내버려뒀다.
- 임아리는 이들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원래 이 몸의 주인인 ‘임아리’가 이들을 알고 있었다.
- 이 불량배들은 매일 청산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서 삥을 뜯었다. 청산고 학생들은 그들을 멀리했고, 임아리도 마찬가지였다.
- “어린 나이에 배짱이 두둑하네.”
- 불량배 대장은 임아리를 한 번 훑어보고는 담배 연기를 임아리 얼굴에 내뿜으며 말했다.
- “좀 통통하긴 해도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겼네.”
- 임아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에는 싸늘한 기운이 깃들었다.
- “지금까지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은 사람은 없었는데.”
- 불량배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임아리가 살이 빠진 후 더욱 또렷해진 이목구미로 미소까지 지으니 더욱 욕정이 생겼다.
- “그래? 그럼 어쩔 건데?”
- 불량배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임아리의 얼굴을 만지려 손을 뻗었다.
- 불량배의 손이 임아리의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 한 쌍의 하얀 손이 그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 임아리는 힘을 많이 준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불량배는 고통에 얼굴마저 일그러졌다.
- 그는 손을 빼내려 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마치 집게처럼 단단히 그의 손목을 조였다.
- “죽어야지.”
- 임아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 마디 던졌다.
- 다음 순간, 임아리는 손목에 힘을 주어 불량배의 팔을 비틀었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 임아리의 강한 힘에 남자의 팔은 그대로 탈골되고 말았다.
- “으아악!”
- 방금까지 거들먹거리던 불량배들이 순식간에 손발이 부러져 땅에 널브러졌고, 비명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임아리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바닥에 쓰러져 팔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비틀린 불량배 대장을 내려다보았다.
- 그녀는 그의 가슴을 발로 밟으며 입을 열었다.
- “지금은 시신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 이대로 살려주는 걸 다행으로 여겨.”
- “누가 보냈어?”
- 불량배는 팔이 부러진 고통에 임아리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고 계속해서 비명만 질렀다.
- “누가 보냈냐고 묻잖아.”
- 임아리는 참을성 있게 다시 물으며 발에 힘을 주었다.
- 불량배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 “처, 청산고 학생이야.”
- ‘염희주.’
-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염희주가 보낸 것이 분명했다.
-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 임아리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 예전의 그녀였다면 다시는 이런 죽음을 자초할 짓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 하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하고 싶다면 몰래 죽여버리든,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든 아무 증거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그녀를 처리해 버릴 수 있다.
- 하지만 염희주의 행동은 죽여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 게다가 이런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라면 다양하게 있으니까.
- 그녀는 재밌는 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 임아리는 발밑에 깔린 불량배를 내려다보며 문득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 아침부터 특별히 기분이 좋은 염희주는 학교 정문 앞에서 차에서 내릴 때 운전기사한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까지 했다.
- 염희주는 집안 조건이 꽤 좋았다. 아버지는 반쯤은 공무원에 외삼촌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많은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어 재벌 집 딸이라 할 수 있었다.
- 어릴 적부터 등하교할 땐 늘 운전기사가 있었고, 그녀는 늘 눈부신 존재였다.
- 차에서 내렸을 때 마침 차에서 내리던 서지훈과 마주쳤고, 염희주는 열정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 “지훈아, 좋은 아침.”
- “그래.”
- 서지훈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쌀쌀맞게 대답하고는 혼자서 걸어갔다.
- 염희주는 기분이 약간 불쾌했지만 이내 그의 뒤를 쫓았다.
- 서지훈의 성적은 전교에서 앞자리를 차지했고, 아버지도 시장이라 앞날이 창창했다.
- 염희주는 어렸을 때부터 서지훈과 알고 지냈고, 그때부터 쭉 그를 좋아했다. 그녀의 주변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 임아리가 서지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임아리를 더욱 심하게 괴롭혔다.
- 그녀에게는 임아리가 서지훈을 좋아한다는 것은 서지훈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지훈아, 입시 준비는 어디로 하고 있어? 난 서원대로 가려고. 외삼촌도 서원시에 있으니까 거기 가면 챙겨 줄 사람이 있거든.”
- 그녀가 서원대를 지원한다는 말을 듣고, 늘 그녀를 무시해 왔던 서지훈은 자연스레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 “너 중간고사 점수도 꽤 높았으니까 가능성이 높겠네.”
- “내가 중간 고사 점수 얼마 받았는지 기억하고 있었어?”
- 염희주는 심장이 두근대며 얼굴마저 붉게 상기되었다.
- “수능 잘 봐.”
- 서지훈은 무덤덤한 어조로 한 마디 던진 후 걸음을 재촉했다.
- 2교시가 끝나고 친구들이 염희주에게 달려와 임아리가 학교에 왔는데 아무 일도 없다고 알려주었다.
- “그 뚱땡이가 무사하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 염희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직접 확인하러 가자, 임아리가 평온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 “등신 같은 인간들이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돈을 얼마나 줬는데.”
- 염희주는 너무 화가 나서 점심시간까지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 입맛이 까다로운 염희주는 학교 식당의 음식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오늘은 기분까지 잡쳐 밖에서 먹으려고 했다.
- 그런데 교문을 나서자마자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쌌고, 염희주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 자세히 보니 그 사람들은 불량배들이었다.
- 지금 퉁퉁 부은 얼굴에 목발을 짚고 있는 모습에 염회주는 겁을 먹었다.
- 학생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몇몇 학생들이 들어와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 “얼른 교문으로 나가 봐. 불량배들이 우리 학교 퀸인 염희주를 찾아왔어. 팔다리가 모두 부려졌다는데, 염희주가 우리 학교 학생을 혼 좀 내주라고 그들에게 사주했는데, 오히려 역으로 당해서 치료비 요구하러 왔나 봐. 지금 교장 선생님도 그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야.”
- “얼른 나와. 염희주가 아주 겁에 질려서 자기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울면서 소리쳤는데 상대방이 증거까지 내놓았나 봐.”
- 임예봄은 이 얘기를 듣고 수저를 내려놓은 뒤 교문으로 가보기로 했다.
- 서지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일으켜 우르르 몰려 가는 학생들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 바글바글하던 식당은 순식간에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갔다.
- 임지호가 고개를 들어보니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 넓은 식당 안에서 자신의 누나가 밖에서 일어나는 일엔 관심도 없다는 듯 창가에 앉아 차분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임지호는 식판을 들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 “넌 구경하러 안 가?”
- 임아리가 넌지시 물었다.
- “관심 없어.”
- 임지호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식사에 열중했다.
- 임아리는 야채밖에 없는 임지호의 식판을 보고, 자신의 식판에 있는 닭 다리를 집어 주었다.
- “확실히 구경할 건 없지. 기회가 되면 더 재밌는 걸 보여줄게.”
- 임아리의 말에 임지호는 그녀를 쳐다보고, 그 말을 속에 담아 두지 않았다.
- 대신 누나가 더욱 날씬해진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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