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고 하기에는 안락함을 일도 찾을 수 없는 분위기다. 사방이 벽이고 가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찾을 수 없으며 먼지가 가득 쌓인 전구는 희미한 빛을 내뿜었다.
다섯 식구가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임지호는 묵묵히 밥을 먹다가 임아리가 오니까 조용히 의자를 옆으로 옮겨 뚱뚱한 임아리에게 공간을 더 주고 자기는 식탁 끝에 앉았다.
“푹 자고 나니 훨씬 낫지? 얼른 먹어.”
아버지는 임아리의 그릇에 고기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이틀 더 입원할 돈이 없으니 일찍 퇴원 수속을 밟을 수밖에 없었어. 집에서 쉬다가 몸이 회복되면 그때 학교에 가. 내일 아빠가 몸보신을 위해 닭죽 해줄게.”
“성적이 형편없으니 학교에 안 가도 상관없을걸? 선생님은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임예봄은 비꼬는 말투로 비웃었다.
“임예봄! 아리는 네 언니야! 버르장머리 없이!”
아버지는 임예봄의 말투에 화를 냈다.
“왜 그렇게 사납게 굴어요? 예봄이가 뭘 잘못했다고? 이 돼지 년의 머리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네. 시험 성적이 10점, 5점 이러는데 내가 얘 때문에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기는 해요? 무슨 연애까지 한다더라 이제는? 어린 나이에.”
박정희는 말하면 할수록 점점 더 화가 났다. 임아리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니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아 목표를 아버지에게로 옮겼다.
“당신 친척들이 나를 어떻게 비웃는지 알아요? 내가 어쩌다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랑 결혼한 건지. 당신 형제들, 다 가난했었어. 근데 이젠 다들 잘 살잖아! 우리만 아직도 이렇게 낡은 집에 살고 있다고! 당신 형제들이 갖다 버린 냉장고 TV나 주워 오면서 살고 있다고! 당신이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당신 아들은 발을 절뚝이지 않았을 텐데. 내가 장님이었지 뭐, 당신이랑 결혼한 건 내 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야!”
아내의 불평에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술잔만 꽉 쥐었다. 과로로 인해 또래보다 훨씬 늙어버린 그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붉어졌다.
임지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밥을 먹었으나 발을 절뚝인다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는 젓가락을 더 꽉 움켜쥐었다.
“엄마 아빠가 너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데 언니라는 사람은 TV나 보고 있고 말이야. 정말이지 내 언니인 게 부끄러워 죽겠어.”
임예봄은 계속해서 불에 기름을 끼얹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 말을 들은 박정희는 화를 내며 임아리를 원망에 가까운 칼날 같은 눈빛으로 노려봤다.
하지만 임아리는 무표정하게 TV에서 시선을 옮겨 임예봄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매우 차가웠다.
“왜 째려봐! 사실이잖아.”
임예봄은 임아리가 병원에서 돌아온 후 조금 이상해졌다고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고개를 숙이고 목을 움츠렸을 텐데 오늘은 감히 눈을 마주치다니.
그것도 뚫어지게.
“야! 어디서 감히 네 여동생을 흘겨 봐! 얼른 밥 먹고 설거지나 해! 보기만 해도 화가 나네.”
박정희는 임아리를 꾸짖으며 밥그릇을 집어 들었다.
임아리의 시선은 박정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이런 사사로운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녀는 다시 TV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TV는 몇 년 동안 사용했는지 모르겠을 만큼 매우 낡았고 오래전에 폐지된 모델이었다. TV에서는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즈라 해의 대폭발.
임아리의 눈동자 아래에는 섬광 같은 차가움이 번쩍였다.
흑룡, 내가 조만간 복수하러 찾아간다.
임아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어머, 오늘은 왜 이렇게 적게 먹어? 보통 세 그릇은 먹어야 배부르면서?”
임예봄은 임아리의 그릇을 흘겨보며 조롱했다.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설거지부터 해.”
박정희는 임아리에게 한 마디 던졌다.
“아리는 사고 당한 아이야. 설거지를 시키면 안 되지. 예봄이랑 지호가 씻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난 할 줄 몰라요.”
임예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리를 다쳤지 손이 다친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설거지는 항상 해왔던 일이기도 하고.”
“예봄이랑 지호는 숙제하러 가야 된다고. 성적 떨어지면 어쩌려고요? 새해 때마다 친척들은 차 자랑에 집 자랑하는데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건 예봄이와 지호의 성적뿐이라고요.”
박정희는 빈정 상한 말투로 임아리에게 설거지하라고 재촉했다.
임아리는 고개를 돌려 박정희를 조용히 응시했다. 무언가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마샤는 좋은 성격이 못된다. 그녀의 무자비함에 대한 소문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박정희와 임예봄이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분명 마샤는 참지 못하고 뭔가를 저지를 게 뻔하다.
이때, 임지호는 밥 다 먹고 묵묵히 그릇과 젓가락을 치우기 시작했다.
“내려놔! 네가 왜 씻어? 방에 가서 숙제나 해!”
평소의 집안일은 다 임아리가 도맡아서 했다. 그렇게 힘들게 집안일을 했기에 밥을 그만큼 많이 먹었다.
임지호는 박정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설거지하러 주방에 들어갔다.
임예봄은 이 상황이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동생을 말리고 싶지는 않아 방에 들어갔다. 한마디만 더 했으면 자기의 “목숨”이 날아갈 뻔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박정희는 임아리를 노려보고는 주방에 가서 아들을 방으로 내쫓고 자기가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하루 푹 자니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임아리는 정원으로 나가 집 상태를 확인해 봤다.
이 낡은 집은 조상이 물려준 재산이다. 많이 낡기는 했지만 정원도 있고 담벼락에 단독 주방까지 있다. 정원에는 월계수 나무가 심겨있다.
방이 유독 많았다. 집안 식구들이 다 같이 살았지만 친척들은 돈을 벌어 이사 갔고 다섯 명만 남았다. 임지호는 주방에서 나오면서 임아리와 마주쳤다. 서로 바라보다 임지호는 발을 절뚝이며 방으로 돌아갔다.
임아리는 그의 뒤를 따랐다.
임지호는 어제 인터넷에서 베껴온 수학 문제를 꺼내 책상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그는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봤고 임아리가 문에 기대 팔을 안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뚱뚱한 몸은 문 전체를 딱 가렸다.
처음이다. 임아리가 자기 방에 들어온 건. 예전 같으면 학교에서 오자마자 바로 방에 들어가 있을 텐데 오늘의 임아리는 뭔가가 달라 보였다.
임아리는 그 수학 문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눈썹을 치켜들고 물었다.
“할 줄 몰라?”
“......”
임지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임아리는 펜을 가져와 고민도 하지 않고 공책에 풀이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풀이 과정까지 적어놨기에 임지호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흥분한 목소리와 깜짝 놀란 눈빛으로 말을 더듬었다.
“어떻게 할 줄 알아?”
동생이 자기에게 건넨 첫 말이 이거라니.
“이 문제는 손만 있으면 다 풀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임아리는 진지하게 답했다.
“이건 인터넷에서 베껴온 대학교 문제인데?”
임지호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임아리와 임예봄보다 한 살 어리다.
“그래서?”
“평소에 5점 10점만 맞으면서? 제일 높을 때는 25점이었나? 수학 객관식 문제는 ABCD만 고르줄 알고 나머지는 다 비워두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임지호는 의심의 눈초리로 평소와 확연히 다른 임아리를 쳐다봤다.
이 몸의 기억을 이미 읽은 마샤는 이 몸이 얼마나 바보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