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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정복하러 왔습니다

학교를 정복하러 왔습니다

놀면되지

Last update: 2024-09-25

제1화 같이 지옥으로 떨어지자고

  • 아즈라 해.
  • 망망대해 한 가운데 우뚝 선 외로운 섬 하나.
  •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섬 아래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인간적인 지하 실험실이 있다.
  • 각종 약물과 최신형 첨단 장비로 가득 찬 연구실, 그리고 이와 어울리지 않는 좁은 싱글 침대. 그 위에 있어야 하는 소녀는 이미 사라졌다. 침대 네 귀퉁이에 걸려 있는 피 묻은 수갑은 방 분위기를 순식간에 기묘하게 만들었다.
  • “마샤가 사라졌다!”
  • 통제실 직원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통제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잿빛이 되었고 모두 빠르게 CCTV 앞으로 모였다.
  • 수많은 CCTV 사이에서 소녀의 흔적을 재빨리 찾았지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밖을 지키던 수많은 경비원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 모습은 그녀가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걸 증명했다.
  • “당장 보안 시스템을 통해 마샤를 찾아! 절대로 놓쳐선 안 돼. 아님 우리가 죽게 될 테니.”
  • 곧바로 켜진 보안 시스템.
  • 그리고 공중에는 거대한 파란색 프로젝션 화면이 나타났다. 빽빽한 데이터들이 쫙 나타났는데 이는 마치 드래그넷이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 “얼른 NT34를 발사시켜! 손실 봐도 좋으니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녀를 잡아!”
  • 그러자 단단한 벽에 숨겨진 분사 장치가 나타나며 독가스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실탄이 든 총을 쥐고 방독면을 쓴 채 조심히 실험실로 진입하는 수많은 경비원. 하얀 연기로 가득 찬 실험실에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나아가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사람이 하나둘 쓰러져갔다.
  • “김 박사와 다른 분들을 얼른 보호 구역으로 이동시켜!”
  • “지직-”
  • 장치에서 갑자기 전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불꽃을 튀기며 터졌다.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CCTV에서 물러섰다.
  • CCTV 화면은 곧바로 꺼졌고 실험실은 이제 기본적인 CCTV 조작도 힘들게 됐다.
  • 이때 울려 퍼진 사이렌 소리.
  • 그리고 통신 장치로부터 믿기 힘든 사실이 알려졌다.
  • “박사와 연구원 모두 죽었습니다. 김 박사는 사라졌습니다.”
  • “김 박사를 죽였구나.”
  • “얼른 튀어야 해요. 마샤를 당해낼 사람이 없잖아요. DNA은 이미 대부분 채취한 상태이니 데이터만 들고 갑시다.”
  • “마샤가 여기로 찾아오기 전까지 결정해야 해요!”
  • 사람들은 잔뜩 겁에 질렸다. 이때 리더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모든 데이터를 들고 즉시 후퇴한다. DNA 채취 성공 즉시 마샤를 죽이라는 본부의 명령에 따라 여기 폭발시킬 준비 해!”
  • 이때, “쾅-” 소리와 함께 통제실의 금으로 만든 단단한 대문이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실험실 전체가 이 엄청난 폭발 때문에 흔들렸고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청각을 잃었다.
  • 뜨거운 불길과 흩날리는 금속 파편, 그리고 머리가 깨질듯한 이명 때문에 사람들은 겁에 질려 도망갔다.
  • 문은 잔햇더미가 되었고 그 더미 속에서 가냘픈 형체가 피를 밟으며 여유롭게 걸어왔다. 모든 걸 부숴버리겠다는 기운을 내뿜으면서 말이다.
  • 짙은 연기가 걷히자 사람들은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경악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 “마... 마샤...”
  • 소녀는 천천히 얼굴을 들고 피에 굶주린 듯한 눈빛으로 겁에 질린 통제실 사람들을 둘러봤다.
  • 허리까지 내려온 긴 머리카락,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과 피로 범벅이 된 섬뜩한 얼굴은 마치 유령 같았다. 이 소녀가 바로 그들이 말한 마샤이다.
  • 킬러 사이에서 명성을 떨친, 고위 관리들 마저 두려워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킬러 말이다.
  • 소녀는 팔을 가볍게 들어 손에 쥔 물건을 쓰레기처럼 버렸다. 버려진 이 물건을 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는데, 다름 아닌 김 박사의 머리였다.
  • 반응하기도 전에 잘려 나간 듯한 머리는 피조차 멎지 않았다. 굴러가는 동선에 따라 피가 뚝뚝 흘렀고 두려움에 크게 뜬 두 눈은 마저 감지도 못했다. 이 장면은 사람들의 숨통을 막았다.
  • 리더는 정신을 차리고 떨면서 검은 기폭 장치를 꺼내며 협박했다.
  • “마...마샤! 우리는 이미 네 뇌에 칩을 이식했어. 이 버튼 누르기만 하면 30 초 안에 넌 재가 될 거야. 그러니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 “30초면 충분해. 너희를 죽이기엔.”
  • 소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 소녀의 태도에 사람들은 즉시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 “우리도 그냥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이렇게 하라 지시한 건 본부라고. 그러니 우리는 그냥 보내줘.”
  • 본부?
  • 소녀는 음침하게 웃었다. 증오로 뒤덮인 눈동자에서 숨김없는 조롱이 흘러나왔다.
  • 본부는 흑룡이다. 흑룡은 세계적으로 가장 크고 강력한 킬러 조직이며 비인간적인 훈련 방법으로 치명적인 킬러를 차례로 양성했다.
  • 마샤 역시 그 킬러 중 한 명이다.
  • 그러나 다른 킬러들과 달리 그녀는 매우 어린 나이에 본부에 의해 조직에 합류했고 결국 가장 어리지만 가장 재능 있는 킬러가 되었다.
  • 13년 동안 비인간적인 훈련을 견뎌왔고 14살 때부터 그녀는 극한 미션을 차례로 맡았다.
  • 17살 때 “마샤”라는 코드명과 함께 세계 킬러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고 아무도 어린 소녀를 넘볼 수 없었다.
  • 6년 동안 마샤는 남들이 절대 깨지 못한 기록을 잇달아 세웠고, 흑룡은 물론 킬러 계에서 실패한 적 없는 전설의 신화가 되었다.
  • 은퇴한 사람들조차 마샤를 상대할 수 없었고, 모두 그녀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이 재능은 화를 불러왔는데 본부는 마샤의 유전자를 이용해 수많은 킬러를 복제할 생각을 했다.
  • 하지만 마샤는 자발적으로 이곳에 왔다. 그래도 자기를 키워준 은혜가 있으니 이를 보답하기 위해 기꺼이 승낙했다. 자기 유전자 중 일부를 공헌함으로 흑룡을 더 강한 조직으로 만드는 것에 동의했다.
  • 하나 흑룡은 일부가 아닌 모든 유전자를 추출해 그녀와 완벽히 똑같은 소녀를 하나 더 복제할 생각이라는 것을 추후에 알았다. 심지어 이용을 한 뒤 자기 목숨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 마샤는 이미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돈과 권력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흑룡을 배신하려는 마음은 맹세코 하나도 없었다.
  • 자신의 재능이 오히려 죽음을 초래할 뻔했다니.
  • 이런 생각에 마샤는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 어린 시절부터 흑룡은 그녀에게 킬러는 감정이 없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은인인 흑룡에게 연민을 보이다 죽음을 초래할 뻔했다는 슬픈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 정말이지 냉혈하고 무자비한 본부다.
  • 마샤가 잠시 딴생각을 한 틈을 타 리더는 기회를 보고 조용히 손에 있던 기폭 장치를 누른 다음 뒤로 물러났다.
  • 마샤는 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단 한 번의 눈빛으로 리더를 공포에 빠트렸다. 그녀는 여유롭게 사람들의 겁에 질린 시선에서 똑같이 생긴 기폭 장치를 하나 더 꺼냈다.
  • “이 기폭장치, 낯익지? 김 박사가 그러는데 이 실험실에 100파운드의 TNT를 묻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 소녀는 기폭 장치를 누르며 섬뜩한 목소리로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
  • “같이 지옥으로 떨어지자고.”
  • 그냥 처음부터 기폭 장치를 눌러버릴걸.
  • 리더는 뒤늦게 후회했다. 혹여나 그녀를 붙잡아 유전자를 마저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에 빠지지 말 걸 하면서.
  • 큰 굉음과 함께 비인간적으로 잔혹한 이 섬은 비밀을 안은 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부와 명성을 얻은 삶을 살았지만 전성기를 마저 즐기지 못한 어린 소녀도 함께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