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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의문의 남자

  • 서지훈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임아리를 돌아보며, 속으로는 관심을 끌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 ‘흥,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어.’
  • 임지호는 수업 내내 멍하니 정신이 팔렸었다. 머릿속에는 임아리가 남학생의 옷깃을 잡고 강하게 사과를 요구했던 장면이 떠오르며 속으로 은근히 흥분감이 몰려왔다.
  • 수업이 끝나자 몇몇 남학생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 “임지호, 3학년 3반의 그 돼지가 네 누나야? 진짜? 한 번도 그런 뚱땡이 누나가 있다는 얘기 없었잖아.”
  • “누나가 그렇게 뚱뚱한 걸 보면 집안 사정이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왜 네 다리는 치료 안 해주는 거야? 혹시 부모님이 차별해?”
  • “내가 보기엔 네 누나가 치료비를 전부 식비로 썼나 봐. 너희들 옷이랑 신발만 봐도 집안 형편이 다 거덜 났다는 걸 알겠네. 푸하하.”
  • 임지호는 자리에 앉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 “진짜 친남매 맞아? 너는 성적이 좋은데 니 누나는 왜 그렇게 둔한데? 듣자니 매번 성적이 5점 아니면 10이라며? 내가 눈 감고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것보다는 높겠다.”
  • 임지호의 손바닥은 거의 피가 나올 정도였다.
  • “에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되지. 답안지를 바닥에 놓고 밟아도 네다섯 문제는 맞힐 거야. 그렇게 낮은 점수는 대체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 거냐? 하하하.”
  • “우리 누나 바보 아냐!”
  • 임지호는 더는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들었다.
  • “확실히 바보는 아니지. 등신이겠지. 푸하하.”
  • 몇몇 남학생들이 비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 임지호의 얼굴은 분노인지 아니면 수치심 때문인지 뻘겋게 달아올랐다.
  • 임아리도 자리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현재 휴대폰조차 없는 그녀는 먼저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돈을 구할 방법은 대부분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들이었다.
  • 선생님은 앞에서 침을 튀기며 수업을 진행하다가, 임아리가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 “임아리?”
  • “임아리!”
  • 임아리가 반응이 없자, 선생님은 더욱 화가 났다.
  • “집안 사정이 나쁘고 조건도 별로면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지. 매일 시간 낭비에 인생을 낭비하면 어떡해? 전체 반 분위기나 흐리고, 성적이나 떨어뜨리니 그야말로 반의 해충이나 다름없다니까.”
  •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임아리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임아리에게 쏠리며, 그녀가 아니라면 또 누가 있냐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 “다행히 눈치는 있나 보네. 나와서 이 문제 풀어봐.”
  • 선생님은 칠판을 두드리며 말하다가, 임아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싸늘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 “네 머리로는 무리겠지. 그냥 앉아 있어.”
  • 임아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뭐야? 네가 정말 풀 수 있을 것 같아?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자리로 돌아가.”
  • “선생님, 그냥 풀게 해보세요. 본인이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 임아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강단에 올라가 분필을 들고 빠르게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 임아리의 글씨체와는 사뭇 다른 시원시원하고 예술적인 느낌까지 나는 마샤의 글씨체는 선생님의 글씨와 비교하면 10배는 더 훌륭했다.
  • 모두가 놀라운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임아리는 거침없이 칠판을 꽉 채웠다.
  • 문제 풀이 방법도 선생님이 수업에서 설명한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웠으며, 아주 간단한 과정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 웃음거리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임아리를 바라보았다.
  • 칠판을 응시하던 선생님은 안경을 치켜 올렸다.
  • 마지막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마친 임아리는 분필을 한쪽에 던지더니 선생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 “모범을 보이는 선생님이라면 좀 더 자질을 키우셔야죠.”
  • 그리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 선생님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순간 반박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잠시 후 겨우 한 마디 쥐어짰다.
  • “운이 좋았을 뿐이겠지.”
  • 야간자습이 끝나고 임아리는 임지호가 자신을 기다리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임지호가 앞에서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 학교에서 절름발이라고 놀림을 받은 걸 보면, 임지호도 그녀만큼이나 괴롭힘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지금은 침을 살 돈이 없었다. 아니면 진작에 동생의 발을 치료해 줬을지도 모른다.
  • 임아리는 빠른 걸음으로 임지호를 따라잡았다.
  • 임지호는 그녀를 보자마자 시선을 돌렸고, 원래 둘 다 말이 없는 편이라 임아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수능은 제대로 볼 거야?”
  • 임지호가 갑자기 물었다.
  • “당연하지.”
  • 마샤가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밀릴 수 있겠는가.
  • 집에 돌아온 임아리는 옷을 갈아입고 야간 러닝하러 나가려던 때, 설거지를 하라고 부르는 박정희의 소리에 멈춰 섰다.
  • 설거지는 저녁에 박정희가 남겨둔 것으로, 평소에도 임아리가 야간자습이 끝나고 돌아와서 설거지를 했다.
  • 임아리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완전히 무시했다.
  • “저 망할 계집애가.”
  • 박정희는 분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 임지호는 가방을 내려놓고 묵묵히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했다.
  • 임아리가 대문을 나설 때 박정희가 숙제나 하라고 아들을 방으로 쫓은 뒤, 혼자서 투덜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임아리는 매일 식단 조절과 아침저녁으로 러닝을 뛰면서 며칠 동안 놀라온 효과를 거두었는데, 턱까지 가늘어질 정도로 살이 많이 빠졌다.
  • 학식 카드에 돈이 없으니 임아리는 아예 저녁 식사를 거르기로 했다. 그녀는 박정희의 욕설에 성질을 참지 못할까 봐 아예 손을 내밀지 않기로 했다.
  • 저녁 러닝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방에 누워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임아리의 귀가 예민하게 움직였다.
  • 그녀는 얼른 몸을 굴려 침대에서 내려왔다.
  •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에 외부인들이 들이닥쳤다.
  • 총에 맞은 배를 움켜쥐고 낡은 주택가 사이를 헤매며 도망치던 남자는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 뒤쫓던 사람들이 잠시 따라오지 않자, 남자는 그 자리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 임아리는 달빛을 빌려 현관 홀을 지나 정원에 나타났다.
  • 지금은 4월 말이라 정원에는 물푸레나무가 막 피어나 향기가 가득했다.
  • 남자는 이미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듯 울타리에 기대어 바닥에 앉았다. 복부는 피로 흠뻑 젖었고 숨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졌다.
  • 갑자기 뭔가를 감지한 남자가 경계 태세를 취하며 고개를 번쩍 들자, 이 집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임아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 ‘낯익은 얼굴인데.’
  • 빠르게 머리를 굴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정확히 이 남자의 정체를 알아냈다.
  • 임아리는 정원으로 나와 그 남자 앞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 남자는 배를 움켜잡고는 거칠게 입을 열었다.
  • “죽고 싶지 않으면 들어가.”
  • 그런데 이 뚱뚱한 여자한테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 “도와드릴까요?”
  • 남자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 “급소를 찔리진 않았으니 죽진 않을 거예요. 물론, 30분 안에 지혈하지 않으면 보장할 수는 없어요.”
  • 임아리는 그의 상처를 훑어보며 무덤덤하게 얘기했다.
  • 우르르 몰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는데, 듣자마자 훈련을 받은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임아리는 청력이 뛰어났고, 남자도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 그리고 임아리를 쳐다보니, 놀랍게도 그녀는 남자의 양복 안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그리고 남자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도 펜으로 남자의 소매를 살짝 들어 올렸다. 마치 그의 손에 묻은 피가 불쾌하다는 듯이 조심스런 행동이었다.
  • 임아리는 펜을 들어 남자의 팔에 숫자를 적은 뒤 다시 펜 뚜껑을 닫아 제자리에 넣었다.
  • “여기로 들어가서 뒷문으로 도망쳐요.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았으면 이 계좌로 돈 보내는 거 잊지 말고요.”
  • 남자는 임아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 그러나 그가 생각할 틈도 없이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그는 몸을 일으키며 힘겹게 일어나 정원으로 들어갔다.
  • 그가 막 들어가자마자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뒤쫓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