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보다 한 살 더 많고 홀로 사업을 시작해 수십억의 이익을 내는 회사로까지 키운 사람을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름은, 유형진.
우리는 풍족한 재산과 함께 5년간 원만한 결혼 생활을 누려왔다.
유일한 흠은 바로 우리에겐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나의 소원을 위해 내 남편 유형진은 집안의 압박을 무릅쓰고 지금의 딸을 입양해왔다. 가람이라고 올해 다섯 살이었다.
늘 곁에 있어주는 가람이와 늘 다정한 남편 덕에 나는 점차 아이가 없다는 마음의 상처를 이겨낼 수 있었고, 난 내가 앞으로도 이렇게 쭉 행복한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람아, 왠지 가람이가 클수록 점점 유형진을 닮아가는 것 같지 않아?”
공원 안에서 노란 새끼 오리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가람을 보며 허비아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러는 그녀의 안색이 제법 진중해 보였다.
“그러게, 점점 닮아가더라.”
난 그것에 개의치 않았을뿐더러 속으로 질투마저 일었었다.
“형진이가 가람이한테 친자식보다 더 잘해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부부도 닮아가는 마당에 부녀끼리도 닮아가나 보지.”
그러나 허비아는 그렇게 말하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럼 가람이는 왜 넌 하나도 안 닮는데?”
“너 그거 무슨 뜻이야?”
나는 잔뜩 불쾌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허비아를 바라봤다.
“아람아, 난 너의 제일 친한 친구지만 네가 결혼을 한 뒤엔 너네 집도 자주 가지 않았었어. 근데 누구는 너네 집을 무슨 자기 집처럼 드나들면서 네 딸을 자기 딸처럼 생각하고 있잖아! 가람이한테 아빠는 하난데 엄마 행세를 하는 사람은 둘이나 있으니 가람이가 당연히 널 안 닮았지…”
그 말에 나는 넋을 잃었다 이내 그녀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채고는 화가 나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비아,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비록 너와 한진서는 늘 마음이 잘 맞지 않았던 걸 잘 알고는 있었지만 걔도 내 친구이기도 해! 걔한테 남자 친구가 생겼는데 그 집안에서 반대한다고 마음이 많이 힘든 상태라 우리 집에 오는 빈도가 늘었다지만 그건 정상적인 거잖아! 넌 왜 늘 걔를 좋게 보지 못해!”
“한진서가 가람이에게 잘하고 내 시어머니에게 잘하는 것도 다 날 친구로 생각해서이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파렴치한 이유 때문이 아니야!”
허비아는 입을 달싹이며 뭐라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더는 듣지 않은 채 가람이를 안아 들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이 허비아가 정말! 내가 사람을 단단히 잘못 봤어. 예전에는 그저 그녀가 한진서와 마음이 맞지 않다고 그런 거라고, 적어도 사람은 착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나는 화가 나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갔고 남편인 유형진은 내가 문을 들어서자 얼른 다가와 가람이를 안아 들어 다정하게 아이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나를 향해 물었다.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허비아밖에 더 있어? 도대체 왜 그렇게 진서랑 못 넘어가서 안달인지 모르겠어!”
내 말에 유형진이 미소를 지었다.
“여보, 모든 사람이 다 당신같이 착한 건 아니야. 나와 진서는 가난한 촌 동네 출신이니 허비아가 우리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도 당연한 거지.”
“근데…”
“화내지 마. 앞으로 왕래를 좀 줄이면 되지. 오늘 고생 많았어 여보, 가서 쉬고 있어. 난 가람이랑 좀 놀아주고 있을게.”
유형진이 다정하게 나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화내면 안 예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로 가 앉으며 다 큰 어른과 아이가 함께 소파에서 노는 것을 바라봤다. 그러나 왜인지 허비아의 말이 시종일관 머릿속을 가득 채워 괜히 짜증이 일었다.
나는 유형진의 됨됨이를 굳게 믿고 있었다. 나에게 그렇게 잘 해주는 사람인데 날 배신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허비아의 말도 맞았다. 지금의 유형진은 잘생긴 데다 돈도 많으니, 나도 좀 마음을 써야 할 때가 된 건가?
그러다 나의 시선이 느껴졌던 것인지 유형진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왜 그래?”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인 것이, 나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불쑥 질문을 내뱉었다.
“당신이 보기에 진서는 어때?”
멈칫하던 유형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괜찮은 여자지, 전에 우리 회사에 있는 남자애를 소개해 주려고 했었는데, 아깝게도 이미 임자가 있었지.”
그런 유형진의 대답을 듣자 난 한시름을 놓고 이내 입을 열려는데 가람이 불쑥 끼어들었다.
“난 진서 이모 싫어! 이모는 맨날 할머니랑 같이 엄마 험담을 해! 할머니는 언젠간 엄마를 쫓아내고 진서 이모 보고 가람이 엄마 하게 한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