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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난감하기 그지없는 추잡한 일이 폭로되다

  • 나의 안색은 완전히 변했고 멍하니 침실 문을 바라보았다.
  • 이건 내 집이라고! 그들이 어떻게 내 침대에서…
  • 구빈도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동정과 연민이 더해졌다.
  • 나는 유형진과 한진서가 이렇게 뻔뻔스럽게 대놓고 집에서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또 이렇게 난감하기 그지없는 추잡한 일을 우연하게 나와 또 다른 외부인이 같이 보게 될 줄은 더더욱 생각 못 했다.
  • 치욕. 메스꺼움. 난감한 감정이 번갈아 나를 토벌하는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지고 온 선물들을 들고 구빈을 끌고 문을 나섰다.
  • 길에서 계속 비틀거리며 나도 어떻게 아래층까지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 유형진과 한진서가 한 더러운 일들을 나는 구빈이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거의 나와 결혼할 뻔했던 남자에게 내가 이처럼 비참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 “아람아!”
  • 구빈은 가슴 아프게 나를 불렀다.
  • 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웃었다.
  • “구빈아, 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아니야? 사실 유형진은 그런 영화를 즐겨 보는데 아마도 끄는 것을 깜박했나 봐. 이런 일을 외부인이 알게 되면 꽤 난감하니까 그래서 아까 너를 끌고 나온 거야.”
  • 나도 이 말을 할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내가 지어낸 이유가 얼마나 어설픈지를 몰랐다. 나는 다만 이 난감함을 숨기고 나 자신을 숨기고 싶었다.
  • “그런 거야?”
  • 구빈은 가슴 아프게 웃었다.
  • “네 남편도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난감할 만하지.”
  • 나는 구빈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폭로하지 않았기에 나도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었다.
  • 구빈과 작별 인사를 한 후 나는 목적 없이 오랫동안 거리에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아무런 생각 없이 허비아의 집으로 갔다.
  • 허비아를 보는 순간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를 안고 성난 소리로 비명을 질렀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 다음날.
  • “출장”을 마치고 나는 선물과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가람이 달려와 내 품에 와락 안겼다.
  • “엄마, 보고 싶었어요!”
  • 가람이는 말하며 빨간 입으로 내 얼굴에 계속 뽀뽀를 했다.
  •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껴안았다. 마음속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 “엄마도 네가 보고 싶었어. 아가야!”
  • 가람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마음을 독하게 먹고 개 같은 남녀에게 복수한다면서 가람이를 냉대한 자신을 나무랐다.
  •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눈을 들어 가람의 뒤에 서있는 유형빈을 흘끗 쳐다보았다.
  • 그는 멋진 홈웨어를 입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그 자리에 품격있게 서있었다.
  • 내가 그를 보는 것을 보더니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꽃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지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 “여보, 보고 싶었어.”
  • 부드러운 사랑의 멘트에 나는 역겨움을 참으며 가볍게 그를 밀쳐냈다.
  • “아이가 보고 있어.”
  • “그게 어때서. 남편이 아내를 안는 건 당연한 거잖아.”
  • 유형빈이 말하며 또 끌어안으려 할 때 나는 피곤해서 자야겠다며 피했다. 그는 그제야 실망한 듯 손을 거두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 “참, 여보. 우리 가람이가 당신한테 선물을 준비했어.”
  • 유형빈이 말을 꺼내자 가람도 생각이 나 즉시 그림 한 장을 들고 나와 나한테 건네주었다.
  • “엄마, 이건 내가 엄마한테 주려고 준비한 선물이야.”
  • “우리 가람이가 엄마한테 선물할 줄 다 알고. 엄마는 너무 기뻐.”
  • 나는 그녀에게 뽀뽀를 하고 그림을 펼쳤다.
  • 이것은 아주 유치한 그림이었다. 그림 속에는 어른 두 명이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즐겁게 풀이 가득 나있는 잔디를 걷고 있었고 길옆에는 잔디와 과일이 가득 달린 과수원이었다.
  • “이건 나와 아빠 엄마야. 이건 잔디, 꽃, 그리고 다 먹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과일이야. 나는 아빠랑 엄마와 같이 영원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 거야.”
  • 그 그림을 보고 가람의 설명을 들으니 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저도 모르게 가람이를 꼭 껴안았다.
  • 하나님은 나한테는 후한 것 같다. 비록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하늘은 나한테 아름다운 천사를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유형빈과 한진서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았다.
  • 나는 유형진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만약 유형진이 회개하고 한진서와 헤어진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 모든 것을 유지해 가람에게 따뜻한 집을 마련해 주어 그 애가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걱정 없이 성장하게 할 것이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나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
  • 내가 가람이를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유형진은 헛기침을 하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 “여보, 당신과 상의할 일이 있어.”
  • 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 “무슨 일인데?”
  •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엄마 혼자 돌보는 것도 불안하고. 우리 집은 지금 방이 많잖아.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오라고 했어. 같이 살면 돌봐드리기 편하잖아.”
  • 이 뜻인즉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까지 이미 이사 왔다는 거지? 이게 어딜 봐서 의논이야, 이건 분명히 사후의 통보잖아!
  • 그리고 내가 출장을 다녀왔는데 이미 이사 왔다는 사람들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허세는 정말 대단하다!
  • “그들은 당신의 부모님이니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 나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냉소를 지었다.
  • 나는 마침 나의 보복 계획을 어떻게 편리하게 실시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너희들이 뜻밖에 주동적으로 들어왔으니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혼내나 봐라.
  • “내 마누라는 사리에 밝을 줄 알았다니까.”
  • 유형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 “여보, 이 일 말고 당신에게 할 말이 또 있어.”
  • 그는 잠깐 멈칫하다가 말했다.
  • “한진서에 관한 일이야.”
  • 한진서 세 글자가 내 마음속에 경종을 울렸다.
  • 나는 그의 부모님이 우리 집에 이사 온다는 유형진의 말을 그냥 전주곡으로 예상했었다. 과연 그는 또 한진서의 얘기를 꺼냈다.
  • “한진서의 남자 친구가…사망했어.”
  •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