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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감히 내 딸한테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한진서와 유형진이 나를 돌아보았다.
  • 두 사람의 얼굴에는 어색함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진짜 친구 같았다.
  • “여보 벌써 일어났어? 좀 더 자지.”
  • 유형진은 나에게 다가오며 친절하게 말했다.
  • “잠이 안 와서.”
  • 그의 말에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 “아저씨 보러 병원에 갔더니 네가 요즘 잠을 잘 못 잔다고 하시길래 걱정돼서 왔어. 마침 가람이도 허비아한테서 데려와야 된다고 아주머니가 말씀하셔서 내가 오는 길에 데려왔어.”
  • “가람이는?”
  • 한진서의 말에 나는 담담하게 물었다.
  • “방에서 놀고 있어.”
  • 가람이를 위해 나는 가까스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렸다.
  • 마침, 유형진은 식사 준비를 마쳤고 우리를 불렀다.
  • 한진서는 마치 자신이 이 집안의 안주인이라도 된 양 가람이를 데리고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 나는 마음속으로 화를 가라앉히며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 다이닝 룸으로 들어갔다.
  • 다이닝 룸에 들어간 나는 비워진 자리를 보고 기가 막혔다. 나랑 한진서는 나란히 유형진의 오른쪽 왼쪽에 앉는 구조였다. 왜 전에는 이런 부분을 캐치하지 못했을까.
  • 유형진은 친절하게 나에게 국을 떠주었다. 그다음에는 한진서에게 그리고 가람이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국을 떴다.
  • 한진서는 자연스럽게 유형진이 떠준 국을 마시고는 해맑게 말을 했다.
  • “역시 형진이가 끓인 삼계탕이 제일 맛있어! 호텔 셰프들이 끓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
  • 형진이?!
  • 나는 나도 모르게 식탁 밑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들의 얼굴에 국이라도 엎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가람이가 보는 곳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 유형진은 나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어색하게 말했다.
  • “아람아, 이 삼계탕 내가 너 위해서 끓인 거야. 어서 먹어봐.”
  • 그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날 위해서 끓였다고?
  • 사실 나는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형진은 삼계탕을 자주 나한테 끓여줬었다. 처음에는 이 남자가 나를 위해 요리를 했다는 생각에 삼계탕을 싫어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 그러다 문뜩 매번 삼계탕을 먹을 때마다 한진서가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것도 모자라 한진서는 매번 삼계탕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었었다!
  • 심장이 구멍이 난 것만 같았다.
  •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것들이 내 앞에서 이런 짓을 했을까?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사랑하는 남편이 고생해서 끓여준 삼계탕이라고 억지로 먹었었다.
  • 밥상을 엎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밥을 먹고 있는 가람이 얼굴을 보고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반찬을 집어 가람이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한진서는 자신도 반찬을 집어 가람이의 그릇에 놔주었다.
  •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가람이는 한진서가 집어준 반찬을 위에 쌓아 놓기만 할 뿐 먹지 않고 있었다.
  • 그 모습에 유형진은 한진서가 신경이라도 쓰였는지 큰소리로 가람이를 혼내기 시작했다.
  • “가람아! 진서 이모가 가람이한테 반찬을 집어줬는데 이게 무슨 버릇없는 행동이야!”
  • 지금 내 앞에서 한진서 감싸려고 애한테 소리를 지른 거야?
  • 나는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젓가락을 식탁에 탁! 소리가 나게 놓았다. 그러고는 말을 하려는 순간 가람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이모 나쁜 사람이야! 나 이모 싫어!”
  • 가람이는 손으로 한진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 가람이의 의외의 말에 한진서의 얼굴은 보기 좋게 구겨졌고 나도 적잖이 놀랐다.
  • 평소 가람이가 한진서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대놓고 싫다고 한 적은 없었다. 무슨 일이지?
  • 그때 유형진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무언가 떠올랐으리라.
  •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는 찰나 가람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이모가 오늘 나한테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어!”
  • 가람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형진과 한진서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