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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문전박대

  • 나는 일부러 못 본 척 유형진의 뒤로 몸을 피했다.
  • 어머니는 일부러 병실에 놓여 있는 보양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 “진서가 오늘 아침에 갔고 온 거다. 배가 불러서 힘들 법도 한데 항상 이렇게 뭘 잔뜩 챙겨서 와! 정성이지!”
  •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 평소 내가 갖고 온 보양품들이 훨씬 좋은 것들이었다. 내가 챙겨줄 때에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더니 정말 기가 막혔다.
  • 내가 반응이 없자 어머니는 더욱 큰소리로 말을 했다.
  • “진서가 사람이 참 싹싹해. 눈치도 빠르고. 지금 뱃속에 아기도 아들이라고 하더구나. 시집에서 얼마나 좋아하겠어!”
  • 평소 어머니가 뭐라고 하던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나였지만 오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 “언제 아기 성별 확인했대요?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어머니한테 먼저 말했어요?”
  • 나의 말에 어머니의 얼굴은 굳어졌고 유형진도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어색하게 어머니를 꾸짖었다.
  • “어머니는 그런 말을 왜 하세요! 지금 아이 성별 확인 못해요. 진서가 농담한 걸 믿으셨어요?”
  • 아들한테 질책을 당한 어머니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나는 이왕 시작한 반박, 여기에서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 “여보 어머님이 계속 아들 타령을 하시는데 혹시 당신이 아들 낳고 싶다고 했어? 어쨌든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니 내가 미안하네.”
  • 내 말이 끝나자마자 유형진은 사뭇 진지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여보? 나한테는 당신이 유일한 내 와이프야. 가람이도 유일한 내 딸이고.”
  • 하, 유일? 누굴 바보로 아나!
  • 결국 우리는 병실에 잠깐 머물다 나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형진은 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 “여보, 어머니가 나이가 드셔서 그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 “당신 어머니인데 당연하지. 걱정 마.”
  • 유형진은 말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 채 안심을 했다. 그는 내가 아직도 예전의 그 바보 같던 민아람인 줄 알고 있었다.
  • 그러고는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자신을 키웠는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점점 마음이 아팠다. 유형진의 부모님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나의 부모님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
  • 나를 이렇게 예쁘게 키워주셨는데 남자 때문에 부모님과 연을 끊었었다. 유형진과 결혼을 한 이후에도 딱 한 번 먼저 엄마한테 전화를 했었다. 그것도 돈 때문이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협박을 하면서까지 돈을 받았었다.
  • 생각을 할수록 나 자신이 얼마나 불효자인지 깨닫게 되었다.
  • 내가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눈치챈 유형진은 자신의 부모님 때문에 그런 줄로 알고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척 집에 가지 않고 허비아를 만나러 가겠다고만 했다. 지금 유형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화가 주체가 될 것 같지가 않았다.
  • 그러나 나는 허비아를 만나러 가지 않고 부모님을 뵈러 갔다.
  • 결혼을 한 이후로 처음 온 집이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지만 아빠는 아니었다. 아빠는 문 앞을 막고는 나에게 말했다.
  • “누구세요? 집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네요.”
  • “아빠 내가 잘못했어!”
  •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아빠는 차갑게 돌아서며 말했다.
  • “왜 또 찾아온 거냐. 난 이제 너희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 말을 끝내자마자 아빠는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닫힌 문을 바라보며 혹시나 다시 나오지 않으실까 기다렸지만 끝끝내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 결국 나는 몸을 돌려 떠날 수밖에 없었다.
  • 나는 허비아한테로 갔고 빨갛게 부은 내 눈을 본 허비아는 놀라서 물었다.
  • “아람아, 무슨 일이야?”
  •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고 허비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어떻게 사람 마음이 하루아침에 풀리겠어. 네가 좀 모질었어? 그래도 부모님들이신데 언젠가는 용서해 주실 거야.”
  • “정말 용서해 주실까?”
  • 나는 자신이 없었다. 유형진과 결혼하기 위해 부모님과 싸웠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유형진 같은 놈과 결혼하려고 부모님을 버리다니!
  • 허비아는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아람아, 일단 진정해. 내가 지금 너한테 엄청 중요한 말을 할 거야.”
  • “무슨 말?”
  • “전에 한진서 남자친구에 대해 알아보라고 한 거 기억나? 결과 나왔어!”
  • 허비아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그녀의 손에 들린 물건을 급하게 낚아채 보았고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