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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5년 전의 그 남자

  • 잔뜩 당황한 아가씨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시아버지는 심한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래도 요즘 잘 관리하고 있었건만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발작을 일으킨 거지?
  • “얼른 119에 연락해!”
  • “이미 했지. 새언니, 오빠가 전화를 안 받아, 지금 올 수 있어?”
  • “먼저 병원으로 따라가, 나도 얼른 갈게.”
  • “무슨 일이야?”
  • 허비아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 “시아버지 병이 다시 도졌대. 병원으로 가봐야겠어.”
  • 가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자 허비아가 그 뒤를 따랐다.
  • “유형진이 저 꼴인데 그 망할 집안일에 뭐 하러 신경 써!”
  •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 유형진이 지금 하고 있는 짓을 생각하니 심장이 쥐어뜯기는 것 같았다.
  • “그래도 사람 목숨인데, 가람이는 여기 잠시 맡길게. 가볼게.”
  • 내가 가는 것을 보자 허비아는 화가 나 내 뒤에서 발을 굴렀다.
  • 병원에 도착하니 시아버지는 응급 수술에 들어가 있었고 시어머니와 아가씨가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보자 마치 구세주라도 본 듯 굴었다.
  • “아람아, 왔구나!”
  • 시어머니가 얼른 다가와 먼저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제법 많이 놀란듯했다.
  • “아까는 정말 깜짝 놀랐어. 그래도 네가 왔으니 다행이다. 형진이도 참, 요즘 무슨 출장이 그렇게 잦다니?”
  • “일이 바쁘대요.”
  • 더는 이 문제에 신경 쓰고 싶지 않기에 짧게 대꾸했다.
  •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 간호사가 응급실에서 나왔다. 난 또 시아버지의 구급조치에 진전이라도 있는 줄 알고 시댁 식구들과 같이 급히 다가섰건만 간호사는 우리를 향해 치료비를 청구하려는 것이었다.
  • 시어머니와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시어머니는 카드를 들고 오지 않았고, 아가씨는 카드에 돈이 없다고 하는 모습이 척 보기에도 나보고 돈을 내라는 것이 분명했다.
  • 나는 올라오는 화를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료비를 납부하러 몸을 돌렸다.
  • 바삐 걸음을 옮겼던 탓에 나는 누군가의 품에 부딪쳤고 상대방은 빠르게 손을 뻗어 나를 부축해 내가 바닥으로 넘어지는 걸 막아줬다.
  • “죄송합니다!”
  • 나는 얼른 사과했다.
  • “괜찮아요.”
  • 듣기 좋은 목소리가 왠지 익숙하게 들려 고개를 들어 보니 엄청난 미모의 남자의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 순간 내 몸이 돌처럼 굳었다.
  • 왜냐하면, 이 얼굴, 무려… 5년 전의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 5년 전, 나는 아버지의 호텔에서 나의 생일파티를 주최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고 내가 주인공이었던 터라 다들 나에게 술을 권한 탓에 많이 마신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피신해 술을 깨려고 했었다.
  • 그러고 나선 복도에서 엄청나게 잘생긴 남자를 보게 됐었다. 너무 많이 마신 알코올 탓인지 나는 주체를 하지 못하고 그 남자를 쫓아가 전화번호를 묻고 잘생겼다고 말하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에게 입을 맞췄었다.
  • 이튿날 일어나고 보니, 유형진과 함께 누워 있는 것을 알게 됐다…
  • 유형진은 나를 안은 채 세세하게 설명을 하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해 나는 이 얼굴이, 너무 잘생겨 숨이 막힐 지경인 남자가, 그저 술에 취해 젖어든 꿈인 줄로만 알았었다!
  • 그러나, 꿈속의 사람이 무려 눈앞에 진짜로 나타나다니…
  • 아연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짓고는 이내 떠났다. 그제서야 나는 그를 찾아 5년 전의 일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 갑자기 그를 찾아 그날의 그 사람이 정말로 그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 그러나 막 그를 쫓아가려는데 아가씨가 전화를 해 얼른 납부를 하고 돌아오라고 재촉했다.
  • 생명이 위급한 시아버지가 떠오르자 나는 이를 악물고는 억지로 고개를 돌려 방향을 바꿨다.
  • 비용을 납부하자 의사는 그제서야 제대로 된 구급처치를 시작했고 나와 시어머니, 아가씨는 밖에서 삼십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 그러다 응급실의 문이 열리고 시아버지가 누운 침대가 밀려나왔다. 그 뒤로 의사가 나오더니 시아버지는 잠시 고비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생명의 위험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라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 시어머니와 아가씨는 얼싸안고 울기 시작했고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떠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병원에서 지키고 있었다.
  • 늦은 밤, 시어머니와 아가씨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는 잘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나에게 시아버지를 잘 보라고 당부하고는 간이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 다음날 아침, 시아버지가 깨어나고 유형진도 드디어 연락이 되었다.
  • 나는 감정을 잘 가다듬고 시아버지가 입원한 일을 처음부터 다 그에게 전해줬다. 그러고는 언중유언의 말로 그에게 시아버지는 고비를 넘겼으니 ‘출장’ 잘 다녀오면 된다고도 전했다.
  • 그러나 내 말의 조롱을 못 알아챈 유형진은 그날 오후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왔다.
  • 그가 병실로 들어선 시간은 내가 전화를 끊은 시간과 마침 4시간이 차이 났고 H 시에서 차로 돌아오면 대충 4시간 정도가 필요하니 시간 딱 맞춰서 온 셈이었다.
  • 유형진은 시아버지의 곁으로 가 몸이 괜찮은지 물었고 나는 그 옆에 서있었다.
  •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 어쩌면 그런 나의 시선이 느껴져서일까 유형진은 시아버지를 보던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에는 다정함과 함께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 “여보, 어젯밤 내내 여기서 지키고 있었을 텐데, 많이 피곤하지. 집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좀 쉬어.”
  • 그에 응하는 나의 마음은 싸늘하기만 했다. 만약 증거가 확실하지 않았다면 그 누가 유형진의 눈에서 그 거짓된 감정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 유영진이 먼저 나를 집으로 바래다준다니 나는 거절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나는 앞 좌석이 아니라 뒷좌석에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 유형진은 내가 정말 피곤한 줄 알았는지 세심하게 가림막을 내려줬으나 일말의 감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 가는 길에 한진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보고 어디냐며, 보고 싶다고.
  • 튀어나오려는 코웃음을 내리누르며 나는 유형진의 아버지가 입원한 일을 그녀에게 처음부터 설명하자 그녀는 깜짝 놀란 척 연기하며 유형진의 아버지에게 병문안을 오고 싶다고 했다.
  • 그러라며 대꾸하고는 전화를 끊자 내 반응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는지 앞에 있던 유형진이 관심 있게 한마디 물었다.
  • “여보, 당신 어디 아픈 건 아니지?”
  • 가타부타 말이 없는 나를 향해 그가 달래듯 나에게 돌아가 밥을 해준다며 잘해주겠다고 했으나 그런 그를 나는 본체도 하지 않았다.
  • 이틀을 연속 잠을 못 잔 탓에 집에 오자마자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 얼마나 오랫동안 잤던 걸까, 나는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그 사이에 무려 한진서의 목소리가 섞여있었다.
  • 감히 집까지 찾아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