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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집에 있는 못된 시어머니

  • 가람이의 말에 유형진의 안색이 대뜸 어두워졌다.
  • “가람아, 거짓말하면 못 써!”
  • 가람이는 크게 한 소리 듣자 깜짝 놀라 이내 억울한 듯 입을 삐죽거리며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 “가람이는 거짓말하지 않았어! 할머니가 진짜 그렇게 얘기했단 말이야! 난 할머니 싫어! 진서 이모 싫어!”
  • 유형진이 황급히 가람이를 안으며 나를 바라봤다.
  • “아람아, 우리 엄마가 그냥 농담한 걸 거야. 진지하게 듣지 마.”
  • 나는 유형진을 바라보며 그저 조용히 미소만 지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의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시골 아낙네라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 뒤로는 늘 나를 냉랭하게 대했다.
  • 그러나 유형진의 사업 자금이 내 주머니에서 나왔던지라 나에게 감히 유형진과의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 이 몇 년간 그녀는 늘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며 언짢게 굴었다. 그래도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유형진이 있었고 거기에 비록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지만 어쩌면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던 탓인지 입양을 해온 가람이에게는 잘해주었고 유 씨 가문에 대한 나의 죄책감까지 더해져 이 몇 년 간은 어찌저찌 잘 넘겨왔었다.
  • 유형진도 불편한 내 마음을 알고 있어 얼른 가람이를 달래 방으로 보내고는 이내 몸을 돌려 나를 단단히 품에 안았다.
  • “여보, 당신 속상한 거 나도 알아. 마침 나 내일 출장이니까 가람이는 엄마한테 맡기고 당신은 휴가 내서 나랑 같이 갈까? 둘이 가서 재밌게 놀까? 이 남편이 잘해줄게.”
  • 유형진의 다정한 위로에 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덕분에 마음속에 있던 속상함이 반절은 가셨다.
  • “내가 가서 뭐해, 난 당신의 비밀 데이트 방해할 생각 없거든!”
  • 유형진이 크게 웃더니 고개를 숙여 나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 “그러다 어느 날 진짜로 누가 날 채가면 어쩌려고 그래.”
  • “가기만 해봐!”
  • 나는 웃으며 유형진의 허리를 꼬집었다.
  • 이튿날 유형진은 출장을 갔고 원래는 내가 가서 가람이를 학교에서 데려오려 했었는데 퇴근시간 직전에 급한 일을 받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데리고 오라고 했었다.
  • 전화상에서 시어머니는 별말이 없었지만 일을 끝내고 시댁으로 가 가람이를 데리고 오려는데 소파에 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던 시어머니가 돌연 퉤 하는 소리를 냈다.
  • “보기엔 멀쩡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것도 속이 텅 비어버린 빈 껍데기였네! 퉤!”
  • 그 음흉한 모욕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막 가람이를 데리고 떠나려는데 별안간 방에서 아가씨인 유예쁨이 튀어나왔다.
  • “새언니, 왔어? 그 파텍 필립의 시계는 샀고?”
  •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 “요즘 좀 바빴어, 나중에 시간 나면 사줄게.”
  • 이 말을 듣자 얼굴에 웃음기 가득하던 아가씨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해 억지웃음을 한번 짓더니 태도가 눈에 띄게 냉랭해졌다.
  • “얼마 전에 진서 언니도 사다 준다고 하던데, 가족인 새언니가 남인 진서 언니보다도 못하네!”
  • 그런 그녀의 태도가 눈에 들어오자 별안간 마음속에서 뭔가 울컥했다.
  • 4년 전부터 왠지 유 씨 집안에 빚이라도 진 것 같아 아무쪼록 그들의 환심을 사 그 빚을 메우고자 각종 명품 백이며 명품 옷들에 각종 영양제 생활용품들을 선물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진서가 나보다 좋다고 할 수가 있지?
  • 매번 한진서가 시댁에 올 때면 어땠던가, 온 시댁 식구들 모두가 그녀를 떠받들어 귀빈처럼 모시지 않았던가. 그것을 생각하다 다시 나를 보면 냉대하는 시어머니에 구박하는 아가씨, 그리고 안방에서 얼굴도 비추지 않는 시아버지까지.
  •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나는 가람의 손을 잡아끌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시어머니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도리어 아가씨가 우리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며 나를 향해 탐욕스레 당부했다.
  • “새언니, 내 시계 잊지 말고.”
  •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마음에는 싸늘한 기운만이 맴돌았다.
  • 돌아가는 길에 허비아로부터 전화가 와 가람이가 보고 싶다고 했다.
  • 어제의 일로 그녀가 나를 향해 건네는 화해의 손길이라는 걸 알기에 그리고 나도 이 몇 년 간의 우정이 아깝기도 했기에 가람이를 데리고 허비아의 집으로 향했다.
  • 문을 들어서자 가람이는 가정부의 손에 이끌려 놀러 갔고 나는 곧장 허비아의 손에 이끌려 서재로 들어섰다.
  • “아람아, 나 오늘 시내에서 유형진이랑 한진서를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