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이는 크게 한 소리 듣자 깜짝 놀라 이내 억울한 듯 입을 삐죽거리며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가람이는 거짓말하지 않았어! 할머니가 진짜 그렇게 얘기했단 말이야! 난 할머니 싫어! 진서 이모 싫어!”
유형진이 황급히 가람이를 안으며 나를 바라봤다.
“아람아, 우리 엄마가 그냥 농담한 걸 거야. 진지하게 듣지 마.”
나는 유형진을 바라보며 그저 조용히 미소만 지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시골 아낙네라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 뒤로는 늘 나를 냉랭하게 대했다.
그러나 유형진의 사업 자금이 내 주머니에서 나왔던지라 나에게 감히 유형진과의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이 몇 년간 그녀는 늘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며 언짢게 굴었다. 그래도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유형진이 있었고 거기에 비록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지만 어쩌면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던 탓인지 입양을 해온 가람이에게는 잘해주었고 유 씨 가문에 대한 나의 죄책감까지 더해져 이 몇 년 간은 어찌저찌 잘 넘겨왔었다.
유형진도 불편한 내 마음을 알고 있어 얼른 가람이를 달래 방으로 보내고는 이내 몸을 돌려 나를 단단히 품에 안았다.
“여보, 당신 속상한 거 나도 알아. 마침 나 내일 출장이니까 가람이는 엄마한테 맡기고 당신은 휴가 내서 나랑 같이 갈까? 둘이 가서 재밌게 놀까? 이 남편이 잘해줄게.”
유형진의 다정한 위로에 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덕분에 마음속에 있던 속상함이 반절은 가셨다.
“내가 가서 뭐해, 난 당신의 비밀 데이트 방해할 생각 없거든!”
유형진이 크게 웃더니 고개를 숙여 나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그러다 어느 날 진짜로 누가 날 채가면 어쩌려고 그래.”
“가기만 해봐!”
나는 웃으며 유형진의 허리를 꼬집었다.
이튿날 유형진은 출장을 갔고 원래는 내가 가서 가람이를 학교에서 데려오려 했었는데 퇴근시간 직전에 급한 일을 받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데리고 오라고 했었다.
전화상에서 시어머니는 별말이 없었지만 일을 끝내고 시댁으로 가 가람이를 데리고 오려는데 소파에 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던 시어머니가 돌연 퉤 하는 소리를 냈다.
“보기엔 멀쩡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것도 속이 텅 비어버린 빈 껍데기였네! 퉤!”
그 음흉한 모욕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막 가람이를 데리고 떠나려는데 별안간 방에서 아가씨인 유예쁨이 튀어나왔다.
“새언니, 왔어? 그 파텍 필립의 시계는 샀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좀 바빴어, 나중에 시간 나면 사줄게.”
이 말을 듣자 얼굴에 웃음기 가득하던 아가씨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해 억지웃음을 한번 짓더니 태도가 눈에 띄게 냉랭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