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가 가엽잖아. 이렇게 큰 변고를 당하고 하니 몸져누웠대. 사람도 야위었고. 진서는 너의 친한 친구잖아. 배도 부르고 혼자 의지할 곳도 없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우리 집에 데려다 돌봐줬어.”
그 순간 나는 정말 옆에 있던 가방을 들어 이 집식구들의 머리를 마구 내리치고 싶었다.
이 연놈이 내 감정을 속이고 또 버젓이 내 집에까지 들어와서 살다니.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유형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보, 기분 나쁜 건 아니겠지? 엄마가 이렇게 하시니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이 쓰레기 같은 놈, 결국엔 책임을 모두 엄마한테 미루면서 한진서를 내보내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그런데 잠깐만…
그렇게 인색한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이렇게 인심이 좋을 수 있지. 그러니까 그의 어머니도 한진서 뱃속의 씨가 유형진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잖아?
세상에! 젠장,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기분 나쁘긴. 진서도 내 친한 친구야. 친구끼리는 의리가 중요하니까 반대하지 않을거야.”
나는 타는듯한 오장 육부의 분노를 억누르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내 마누라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쓰레기 같은 놈은 듣더니 기뻐하며 짐짓 내 비위를 맞추었다.
“진서야, 이겨내야지!”
나는 화를 억누르며 관심 어린 얼굴로 한진서에게로 다가갔다.
한진서의 눈이 빨개지더니 눈물 두 방울이 떨어졌다.
“아람아, 나는 왜 이렇게 팔자가 사나울까.”
“진서야, 너는 임신 중이니 쓰레기 같은 그 집식구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 그 개자식이 계속 너와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정말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잖아. 어차피 그 사람은 죽었으니 너도 낙태하고 잘 살아야 돼. 네가 왜 그 인간 쓰레기를 위해 덤받이를 낳으려는지 정말 이해가 안 돼.”
유형진을 개자식이라고 욕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한 집안을 모두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욕하고 또 한진서더러 낙태하라는 나의 말은 유형진의 부모로 하여금 철저하게 참을 수 없게 했다.
유형진의 어머니는 즉시 나를 제지하며 말했다.
“너! 진서도 이미 충분히 슬프니까 더 이상 이런 말을 꺼내지 마라!”
이 몹쓸 할망구는 아마 내가 한진서더러 그녀의 손자를 지우라고 할까 봐 겁이 난 거 겠지.
나는 속으로 냉소를 짓고 얼굴에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나도 진서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아요. 당신들이 진서를 개의치 않지만 진서는 내 친구인데 내가 그녀를 해치겠어요? 그녀가 지금 덤받이를 낳는다면 나중에 누가 그녀를 데리고 살겠어요?”
“진서야. 낙태하자. 네가 낙태를 하겠다고 하면 내가 언제든지 병원에 같이 가줄게!”
나는 아주 의리있게 말했다.
시어머니와 유형진은 두려운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시어머니는 무슨 말을 꺼내려다가 유형진의 눈빛에 제지당했다.
그런데 한진서가 갑자기 통곡하기 시작했다.
“내가 천박하다고 생각해. 아람아, 네가 나와 아이를 용납할 수 없다면 나는 지금 갈게. 더 이상 네 기분을 나쁘게 만들지 않을게.”
그녀가 가겠다고 하자 시어머니는 당연히 승낙하지 않았고 바로 그녀를 붙잡고 나를 꾸짖었다.
“아람아, 너는 지금 진서를 죽이겠다는 거냐?”
“한진서, 네가 이처럼 의리가 있는 사람인줄 몰랐어!”
나는 감탄했다. 내 말속의 야유를 그들이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한진서 그 망할 년은 아직도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됐다 됐어. 딴 생각 말고 그냥 여기서 지내.”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는 척을 했지만 마음속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깨달았다…
내 남편이랑 불륜을 저지른 파렴치한 년이 주동적으로 집에 들어왔는데 내가 어찌 잘 다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허허. 과연 하늘도 내 편이구나.
나는 이 집안사람들에게 내 것을 탐했던 것, 차지했던 것들을 모두 토해내게 할 것이다!
“아람아, 이제 출장 다녀왔으니까 피곤할 테지. 먼저 샤워부터 하고 쉬어.”
아마도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었는지 내가 한진서에게 이토록 진심으로 대하자 유형진 이 나쁜 놈도 민망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저분한 거실 바닥에 시선을 옮겼다.
집에 막 들어왔을 때 나는 이곳이 어제와 상황이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유형진의 부모와 한진서는 한참 전에 이사를 왔을 것이다.
어제 내가 돌아왔을 때 유형진의 부모는 집에 없었고 유형진과 한진서는 이 어려운 기회를 틈타 제대로 즐겼을 것이다.
내가 거실 바닥을 내려다보자 유형진은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
“아람아, 엄마 아빠보고 청소에 신경 쓰라고 할게.”
나는 유형진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연세가 계신데 살고 싶은 대로 사시라고 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이렇게 사리 밝은 것을 보자 유형진은 또 감동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 망할 놈들과 더 이상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피곤하다고 말하고는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갔다.
유형진도 따라 들어와 콜라를 따라주고는 욕실로 가서 목욕물을 받아주었다.
침실 문이 닫히자 한눈에 침실 안의 커다란 침대가 보였다. 머릿속에는 바로 어제 들은 것이 생각났고 속이 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