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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양심 없는 인간들

  • 나는 하마터면 한진서의 뺨이라도 칠 뻔했다. 이 미친 년이 이제는 선을 넘네? 가람이한테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 잔뜩 굳은 내 표정에 한진서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내 앞에서 애써 미소를 지으며 변명했다.
  • “아람아, 너도 알잖아. 예전에 내가 가람이 엄청 예뻐했던 거. 그래서 가람이를 내 딸처럼 생각하는 거 너도 알지? 그래서 오늘 잠깐 그 말이 나왔던 것뿐이야. 가람이가 오해를 한 것 같아.”
  • 그녀의 변명이 가소롭기만 했다.
  • 예전에 가람이를 자신의 딸처럼 생각하고 예뻐해 주겠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가람이를 정말 예뻐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 처음부터 다른 속셈이었구나 너는.
  • 오해? 절대 아닐 것이다!
  • 한진서의 말을 들은 유형진은 잽싸게 표정을 풀고는 가람이를 보며 말했다.
  • “가람아, 이모가 너한테 농담한 거야. 네가…”
  • “어떻게 엄마로 농담을 할 수가 있어! 가람이 엄마는 한 명뿐이야!”
  • 가람이는 유형진의 말을 채 듣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
  • 가람이의 말에 나는 뿌듯했지만 한진서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 식사가 끝나자 한진서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 유형진은 나의 반응이 마음에 걸리는지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한진서를 배웅해 주라고 했다.
  • 그제서야 유형진은 몸을 일으켜 한진서를 배웅해 주러 나갔다. 난 가람이를 씻기러 욕실로 향했다.
  • “엄마, 비아 이모가 그러는데 진서 이모 여우래. 나 여우 싫어!”
  • 역시 가람이가 오늘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 건 허비아의 작품이었다.
  • 하여간 허비아 입이 문제라니까.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 이 일을 가람이까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일로 가람이에게는 피해가 가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 “비아 이모 헛소리하는 거야. 듣지 마.”
  • “아니야 엄마. 진서 이모 여우 맞아! 오늘도 할아버지 할머니 병실에 와서 엄마 험담했어!”
  • 가람이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 “엄마 험담?”
  • “할머니가 엄마 게으르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빠만 부려먹는대. 그리고 엄마가 아들 못 낳는다고 쓸모없다고 했어. 외할아버지만 아니면 진작에 엄마랑 아빠 이혼시켰다고 했어!”
  •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 “응!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런 말 하고 있을 때 진서 이모도 같이 했어. 엄마가 사람 배려할 줄 모른다고. 그래서 아빠도 배려 안 해준다고. 그런데 엄마, 나는 엄마가 동생 낳지 않는 이유가 나 때문인 거 알아. 그래서 나는 진서 이모가 싫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싫어!”
  • 가람이의 말에 나는 마음이 저릿했다. 시부모님이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나를 미워할 줄이야.
  •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는 언제나 아들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에 불과했다.
  • 이 집에 시집만 오지 않았다면 남부럽지 않은 집의 딸로 살다 부잣집 며느리가 되었을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데!
  • 처음부터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임신을 하고도 저 사람들 때문에 고생을 하다 유산을 하였고 그러다 몸이 상해 이렇게 된 것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죄책감이 없는 것은 물론 아직도 내 탓을 하고 있었다.
  •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지금의 유형진은 과거의 유형진이 아니었다. 놀 만큼 돈이 있었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 아마 아직 나와 부부 사이를 유지하는 것도 우리 아버지 때문이겠지.
  • “엄마, 가람이는 엄마를 사랑해! 앞으로도 영원히!”
  • 가람이는 갑자기 나의 얼굴에 뽀뽀를 하더니 고백을 했다. 가람이의 행동에 나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유형진과의 결혼생활에서 나한테 유일하게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가람이었다.
  • 한진서를 배웅하고 들어온 유형진은 나의 눈치를 보며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 다음날 아침, 가람이를 학교에 보낸 뒤 우리는 같이 병원에 갔다.
  • 가는 길에 대형마트 앞을 지나는 길에 유형진은 일부러 차의 속도를 줄였다. 내가 내려서 뭐라도 사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항상 내가 먼저 챙겼던 부분이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 어차피 잘해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인간들한테 잘해줄 필요가 없었다.
  • 병실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나와 유형진이 빈손으로 온 것을 본 어머니는 안색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