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진이 오늘 출장이야, 진서는 그 사람 비서고. 둘이 같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뭘 그렇게 놀라?”
“둘이 간 곳이 공항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허비아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을 이었다.
“너 걔네 둘 어디로 간 건지는 알아?”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은 허비아가 옆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서류를 내게 건네줬다.
“내가 걔네 조사를 해봤는데, 봐봐.”
나는 놀란 눈으로 허비아를 보다 손을 뻗어 서류를 건네받았다.
비록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나의 손은 나도 모르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서류를 꺼내니 순간 나의 마음이 산산조각이라도 난 것 같았다.
이 서류들은 무려 4년 전의 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짧디짧은 4년간, 십수 장의 기록을 남긴 그들이었다. 날 시체 취급한 것이 아니고서야!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눈이 멀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마음이 복잡해져 무슨 심정인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감히 어떠한 단어로도 지금 내 심정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머릿속을 번쩍 스치는 생각에 불쑥 허비아를 향해 한진서에게 정말로 남자친구가 있는 것인지 물었다. 허비아는 아직 찾지 못해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유형진과 한진서가 알고 지낸지 이렇게 오래 지났고 유형진도 한진서가 나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라 유형진이 처음부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나를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나를 만나려 했던 것은 사실 나의 집안을 보고, 나를 자신의 발판으로 삼아 개천남이 되고 싶어 그런 것일 거라고.
그녀의 말을 들으니 가슴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S 시에 있는 대표적인 한 모범 기업 총수의 딸이었다. S 시에서 한 손에 꼽히는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이 유형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결혼 당시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부모님과 연을 끊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사업을 하면서 부모님의 집을 파는 모습을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그를 위해 얼굴에 철판을 깐 채 몰래 엄마에게 손을 벌려 8억 5천만 원을 빌렸었다. 그리고 그의 회사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아버지의 친구분들을 찾아가 사업을 연결해 주기도 했다.
유형진의 회사가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다 아버지의 그 친구분들의 도움이 컸다.
매일 나를 향해 달콤한 말들을 하던 다정한 남편이 알고 보니 전부 다 연기였다니!
순간, 마음이 저릿해지며 온갖 감정들이 내 안에서 뒤엉켰다. 분노, 절망, 허망, 불신…
허비아는 우유부단한 나를 보더니 한바탕 혼을 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경고했다.
“만약 이대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경제권을 단단히 틀어잡아야 해!”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돈이 있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다고.
허비아는 그런 나를 보며 멍청하다고 속 터져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손에 곱게 자라 경제관념이 없어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른다고.
그녀는 한참을 말해도 내가 반응이 없자 다른 방법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람아, 만약 유형진이 돈을 위해서 너랑 같이 있었던 거라면 그 사람은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잖아. 지금 그 사람은 돈이 있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없어져봐, 그럼 반드시 그 돈 좀 꽤나 있다는 친구들한테 무시당하고 멀어지겠지. 그때가 되면 분명히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텐데 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어?”
그녀의 말을 듣자 마음속에서 복수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대로는 못 참지!
“너 유형진의 계좌를 제대로 알아봐야 해, 함부로 재산 못 빼돌리게!”
허비아는 한바탕 걱정을 쏟아내다 잠시 숨을 골랐다.
“이참에 한진서도 한번 알아보고. 걔가 받는 월급으로 어떻게 집을 사고 차를 살 수 있었겠어. 게다가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죄다 명품이던데. 걔 남자친구가 그렇게 돈이 많다고? 분명히 뭔가 있을 거야.”
허비아의 말은 나로 하여금 목이 죄여오게 만들어 말을 잇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이때, 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건너편에서 아가씨인 유예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