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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망할 년이 우리 집에서 살다니!!

  • 유형진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실감 나게 연기했다.
  • “당신이 출장 간 날, 내가 엄청 많은 전화를 걸었던 게 기억나? 사실 그날에 나는 한진서의 남자 친구 얘기를 해주고 싶었으나 당신이 받지 않았어. 당신이 일하는데 지장을 줄까 봐 걱정돼서 나중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 유형진은 나를 생각하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 한진서에게 아예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진서의 남자친구가 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 가소롭다.
  • 그러나 표정관리는 여전히 해야 한다. 나도 저 사람이 어떤 연기를 할 건지 궁금했기 때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 “한진서도 불쌍한 여자야. 혼전 임신이라 지금까지 혼인 신고도 못했는데 지금은 남자친구도 교통사고로 사망했잖아. 그녀의 남자친구의 부모들은 한진서가 살고 있던 집을 아들 것이지 한진서와 상관없다며 한진서를 쫓아냈어. 그리고 아이가 재산을 나누어 가질까 봐 한진서에게 낙태하라고 강요했대.”
  •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부모가 있을 수 있어? 한진서는 정말 눈이 멀었어. 그런데 그 남자도 너무 뻔뻔해. 이건 한진서를 그냥 갖고 논 거잖아? 그리고 그 남자의 부모도 모두 사람이 아니야. 짐승 새끼들일 뿐이지!”
  • 나는 일부러 따라서 크케 욕했다.
  • 내가 욕을 한 사람은 바로 유형진과 그의 부모가 아닌가. 누구든 이렇게 대놓고 욕을 먹는다면 기분은 좋지 않겠지?
  • 유형진의 얼굴에 갑자기 어색함이 스쳤다.
  • “그 남자도 한진서에게 잘해줬어. 그렇지 않으면 한진서도 혼전임신을 하지 않았을 테지.”
  • “당신은 왜 그 사람 대신 말해?”
  • 나는 냉소를 금치 못했다.
  • “한진서도 그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었는지 모르겠네. 걔가 전셋집 마련이 어려운 거야 아니면 돈이 부족한 거야. 이렇게 쓰레기 같은 남자한테 빌붙을 게 뭐야!”
  • 나는 화가 난 표정으로 욕했고 유형진은 내가 욕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부자연스레 억제하고 있는 그의 표정에 내 가슴이 후련해졌다.
  • 그러나 방안에 숨어있던 시부모와 시누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문을 열고 방에서 나왔다.
  • “아버님, 어머님, 아가씨, 저 다녀왔어요.”
  • 한진서의 “남자친구”에 대한 욕설로 분노했던 나의 얼굴도 순식간에 웃음으로 바뀌었다.
  • “아람이 돌아왔어!”
  • 유형진의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나와 유형진의 손에서 내가 사 온 선물을 받아 쥐었다.
  • “무슨 선물을 사 왔나 보자.”
  • “어머니, 이건 가람이 거야.”
  • 유형진이 가로막았다.
  • “가람이 것만 샀다고?”
  • 유형진의 어머니의 안색이 확 나빠졌다.
  • 내가 그들의 선물을 사주지 않은 것에 대해 아주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 “엄마, 아람이는 일하러 간 거지 여행 간 게 아닌데 선물을 살 시간이 어디 있겠어.”
  • 유형진이 나와 중재했다.
  • “자녀를 키우는 것은 노후를 대비해서라고 말하는데 너희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자식만 있지 어디 부모가 있어.”
  • 비록 유형진이 해석했지만 그래도 불만이 가득한 유형진의 어머니는 유형진의 아버지와 여동생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 “그러게요. 가람이한테만 이렇게 많이 사주고. 새언니도 너무 편애하네.”
  • 유예쁨도 덩달아 끼어들었다.
  • 예전의 나 같았으면 웃는 얼굴로 바빴다고 해석하며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고 돈을 주며 그녀 스스로 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돈을 쓰려는 꿈도 꾸지 마라!
  • 나는 유형진의 어머니와 동생의 말을 못 들은 척 웃으면서 고개를 숙여 가람이한테 분부했다.
  • “가람아, 네 선물을 가지고 방에 가서 뜯어보렴.”
  • “엄마, 고마워요.”
  • 가람이는 선물을 안고 즐겁게 방으로 돌아갔다.
  • 내가 아예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자 유형진의 엄마와 여동생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다. 유형진의 동생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 “새언니, 나와 약속했던 시계는 언제 사줄 거야?”
  • “내 정신 좀 봐. 요즘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었어. 미안해. 아가씨.”
  •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해명했다.
  • “새언니, 그럼 언제면 안 바쁜데?”
  • 유예쁨은 분명히 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을 기세였다.
  • “예쁨아!”
  • 유형진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 “한동안 바쁠 것 같은데. 이렇게 해…”
  • 나는 웃으며 고개를 돌려 유형진을 보며 말했다.
  • “형진 씨, 아가씨가 요즘 새로 출시한 파텍필립 시계를 봐뒀다는데 당신의 회사가 파텍필립 매장이랑 가까우니까 내일 아가씨한테 사다 줘.”
  • 내가 “이렇게 해”라는 네 글자를 말했을 때 나는 유예쁨의 눈에서 탐욕스러운 기색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 그녀의 안색은 순식간에 변했다.
  • “새언니가 약속해놓고 왜 오빠가 사 와야 돼?”
  • “예쁨 씨 질문이 이상하네. 내가 사는 거랑 오빠가 사는 거랑 뭐가 다른데?”
  • 내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 “당연히 다르지.”
  • 유예쁨이 반박했다.
  • “새언니가 사주는 것은 새언니의 성의이고 오빠가 사주는 것은 오빠의 성의니까.”
  • 나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성의는 개뿔. 내 돈을 쓰면 아깝지 않고 유형진의 돈을 쓰면 아깝다는 게 다르겠지?
  • “나와 오빠의 돈은 모두 함께 쓰는데 왜 나와 오빠를 그렇게 구분해? 설마 아가씨 마음속에 나와 남편은 두 가족인가?”
  • 나는 한숨을 쉬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 “예쁨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유형진이 유예쁨을 노려보았다.
  • “그런 뜻이 아니야.”
  • 유예쁨은 억울한 듯 입을 실룩거렸다.
  • “됐어. 아무것도 말하지 마. 시계도 그렇게 많으면서 또 사게? 사고 싶으면 너 스스로 돈 벌어서 사.”
  • 유형진이 화를 냈다.
  • “왜 이래요?”
  • 가냘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보니 한진서가 홈웨어를 입은 채 허약하게 문틀을 짚고 거실 입구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열려있는 방문을 통해 거실 내의 모습이 보였는데 책상 위에는 분명히 한진서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 이 망할 년이 왜 우리 집에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