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9화 다 지나간 일이야

  • 백현은 요즘 떠오르는 피겨 샛별이었다.
  • 임수연과 유라가 도착했을 때, 그는 금방 연습을 마친 상태로 난간에 기대 휴식하고 있었다. 타이트한 선수복 때문에 그의 다부진 몸매가 더욱 강조되었다.
  • 앞머리가 살짝 아래로 드리우면서 그림자가 졌고 순수하면서 귀티 나는 얼굴은 완벽한 귀공자의 모습이었다. 임수연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듯 말했다.
  • “너는 여전하구나.”
  • 그녀를 발견한 백현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 “수연 누나.”
  • 임수연은 유라의 손을 이끌며 말했다.
  • “오빠한테 인사해.”
  •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요정 같아요. 앞으로 잘생긴 오빠라고 부를게요.”
  • 본가를 나온 유라는 성격이 많이 활발해져서 말투도 활기차게 변했다.
  • 백현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라에게 팔찌를 선물로 건넸다.
  • 유라는 뛸 듯이 좋아하며 팔찌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 “진유 누나한테 얘기는 들었어요. 괜찮은 거죠?”
  • 유라가 멀리 가자 백현은 그제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 임수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흔들었다.
  • “다 지나간 일이야. 나 괜찮아.”
  • 백현은 그 말에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 그는 남자 중에서도 꽤 섬세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임수연이 아직 이별의 아픔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으나 더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 “수연 누나, 나랑 피겨 스케이트 타요.”
  • 백현이 웃는 얼굴로 제안했다.
  • 스트레스는 풀어야 했다.
  • 그 제안에 임수연도 마음이 동했다.
  • 백현처럼 뛰어난 선수는 아니지만 한때 피겨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 있었다. 백현을 설득하기 위해 배운 피겨였지만 나중에는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 “좋아.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몸 좀 풀지 뭐. 하지만 유라랑 함께하고 싶어.”
  • 백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백현과 임수연과 함께 스케이트를 탄다는 말에 유라는 신이 나서 손뼉을 쳤다.
  • 백현은 두 사람에게 스케이트화와 훈련복을 챙겨주고 같이 연습장에 나갔다.
  • 그는 먼저 유라에게 연습장 환경을 둘러보게 해주고 간단한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임수연은 옆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 유라의 학습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백현의 손을 잡고 연습장을 한 바퀴 돌았다.
  • 임수연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서 유라의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은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탔다.
  • 연습장에 선남선녀와 귀여운 아이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연습장에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 임수연은 연습했던 대로 스핀을 한 바퀴 돈 뒤, 유라를 살짝 밀었고 백현은 가볍게 아이를 받았다.
  • 유라는 깔깔 웃으며 더해달라고 재촉했다.
  • 임수연은 아이를 공중으로 들어올렸고 백현은 그녀의 뒤에서 단단하게 허리를 받친 상태로 같이 회전했다.
  • 백현의 실력을 믿었기에 임수연은 넘어질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 자유분방한 선율 속에 그들은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 그녀는 긴 팔다리와 가녀린 허리, 그리고 뛰어난 춤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동작 하나하나가 박자가 딱 맞았고 몸짓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백현의 역동적인 움직임까지 더해져 섹시한 느낌마저 주었다.
  • 백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 팔로 그녀를 받쳐주었고 그녀는 유라를 잡은 상태로 스핀 스파이럴을 선보였다.
  • “정말 보기 좋은 한 가족이네.”
  • 연습장을 방문한 한은정이 옆에 있는 심유찬에게 감탄하듯 말했다.
  • 고개를 든 심유찬의 눈에 아름다운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유라와 임수연은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도 한은정처럼 참 보기 좋은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 마침 곡이 끝나자 임수연은 헬멧을 벗었고 긴 생머리가 흘러내렸다.
  • “너무 상쾌해!”
  • 임수연을 알아본 심유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그녀가 피겨 스케이팅을 탈 줄 안다는 사실도 오늘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실력자일 줄이야!
  • 그가 기억하는 임수연은 그저 돈을 위해 못된 짓을 꾸미는 재미없는 악녀였다.
  • 이때 유라도 헬멧을 벗었다.
  • “엄마, 너무 재밌어!”
  • 심유찬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는 아이는 백현에게 반한 듯,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 “잘생긴 오빠, 오빠 말고 아빠라고 부르면 안 돼요?”
  • 여기 오기 전, 진유는 아이에게 엄마랑 아빠는 이혼했고 엄마는 더 괜찮은 아저씨를 만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마침 아이는 백현이 마음에 들었고 백현이 아빠가 된다면 참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 순수한 마음에서 한 말이었지만 심유찬은 졸지에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한은정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끼고 가슴이 철렁했다.
  • “백현아, 유라 좀 보고 있을래?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 임수연은 유라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백현에게 당부의 말만 남긴 뒤, 화장실로 갔다.
  • 연습장을 나와 화장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문이 쾅 하고 닫혔다.
  • 놀란 임수연이 고개를 돌리자 잔뜩 성이 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 심유찬이 팔짱을 낀 채, 음침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