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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무시하던 사람이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

  • 임수연이 고개를 들자 심유월과 전 시어머니 손의령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심유월이 가소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 현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각자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좌석에는 그녀 홀로 앉아 있었다.
  • 저번 의류 매장에서 당한 수모를 아직도 기억하는 심유월은 임수연을 보자 철천지원수라도 본 것처럼 으르렁댔다.
  • “유월아!”
  • 옆에 있던 손의령이 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제지했다.
  • 손의령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도도하고 우아한 모습은 흔들림이 없었다.
  • 심유월은 사악한 눈빛을 번뜩이며 손의령을 끌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 “아직 행사 시작 전이니까 저쪽으로 가서 그림이나 둘러봐, 엄마.”
  • 미술전과 경매 행사는 동시에 진행되었다.
  • “그러지 뭐.”
  • 딸의 마음을 눈치챈 손의령은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 예전에 집에 있을 때도 이런 태도였기에 임수연은 놀랍지도 않았다. 심유월이 생글생글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지만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았다.
  • 가까이 다가온 심유월은 거칠게 그녀의 손에 든 경매품 리스트를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 “주제 파악도 못 하는 년! 진유를 믿고 설치나 본데 진유 없으면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스타업 엔터 사람이야? 여기가 너 같은 인간이 발을 들일 수 있는 행사인 줄 알아? 당장 자리 비켜주고 여기서 꺼져!”
  • 임수연은 차가운 얼굴로 심유월을 쏘아보며 물었다.
  • “내가 싫다면요?”
  • “싫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사람들에게 네가 초대장도 없이 행사장에 진입했다고 알릴 거야! 그러면 경비 직원들에게 끌려 나가겠지. 어떤 남자가 너를 거들떠볼까?”
  • 심유월은 누군가가 놓고 간 청소부 복장을 힐끗 보며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다.
  • 그녀가 청소부로 둔갑해서 여기 흘러들어왔다고 단정 지은 모양이었다.
  • 임수연도 그 복장이 신경 쓰였지만 굳이 일을 만들기 싫어 치우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 그녀가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 한 번도 심유월이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동생이었기에 양보한 것뿐이었다.
  • 하지만 두 사람이 이미 이혼한 마당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 상대가 이토록 도발적으로 나오는데 같이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임수연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 “그럼 나는 어디 앉을까요?”
  • 심유월이 원하던 반응이었다.
  • 그녀는 가장 뒷줄에 있는 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 “봤어? 저 자리는 강찬웅 그 늙은 여우 옆자리거든? 저기 앉으면 딱이겠네. 워낙 여자를 밝히는 영감이라 너를 보면 아주 환장할 거야. 강 회장 비위라도 잘 맞추면 첩 자리라도 내어줄지 누가 알아?”
  • 명진그룹 강찬웅은 여자를 밝히기로 소문난 늙은이였다. 본처를 제외하고 알려진 애인만 여섯 명, 그러다가 성병에 걸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 ‘이건 모욕이 아니라 나가 죽으라는 건데?’
  • “저 자리요?”
  • 임수연은 화를 내는 대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심유월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말에 하마터면 뒤로 쓰러질 뻔했다.
  • “아니면 심유월 씨가 저리로 가서 앉을래요?”
  • “너! 감히 나한테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어디 매운맛 좀 봐야 정신을 차리지?”
  •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심유월이었고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공주라고 생각하는 공주병 환자였다. 임수연이 자신을 못생기고 늙은 남자에게 보내려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깊은 치욕감을 느꼈다.
  • 결국 그녀는 임수연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 하지만 임수연은 재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 “심유월 씨, 여기 CCTV 많아요. 찍히면 심유월 씨만 난처해질 텐데요.”
  • 대외적으로 알려진 심유월의 이미지는 청순하면서도 도도한 재벌 2세 이미지였다. 공들여 구축한 이미지를 망가뜨릴 수 없었기에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했다.
  • “너 두고 봐!”
  • 매를 들 수 없으니 그녀는 표독스럽게 으르렁거렸다.
  • “오늘 안에 넌 강 회장 파트너가 될 거야!”
  • 말을 마친 그녀는 임수연을 힘주어 쏘아보고는 자리를 떴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심유월은 한 남자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백현의 매니저 서현중이었다.
  • “서 매니저님, 보셨죠? 저 여자가 초대장도 없이 백현 씨 옆에 들러붙어 있다니까요!”
  • 심유월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백현의 이름이 적혀 있는 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 임수연의 신분을 모르는 서현중은 그 말을 듣고 정색해서 다가왔다.
  • “혹시 초대장 가지고 오셨나요? 없다면 여기서 나가주세요.”
  • “죄송하지만 초대장은 없어요.”
  • 임수연은 의기양양한 심유월의 표정을 보고도 침착하게 응대했다.
  • “그런데 저는 백현 씨 친구 신분으로 온 거라서요. 백현 씨가 저를 여기 앉으라고 했는데요.”
  • “무슨 헛소리야!”
  • 심유월이 앙칼진 목소리로 반박했다.
  • “너 백현 씨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어? 이건 여자친구를 위해 남겨둔 자리라고! 네가 뭔데 그 자리를 차지해? 어쩜 염치도 없이!”
  • 백현이 공개 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방금 뉴스로 접한 심유월이었지만 그 상대가 자기가 그렇게 경멸하던 임수연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 임수연은 해명하기도 귀찮아서 담담하게 대꾸했다.
  • “이 자리는 내 자리인데요.”
  • 서현중은 침착하게 응대하는 그녀의 모습에 일단 백현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기로 했다.
  • 그가 백현에게 전화를 걸자 심유월은 또다시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 “너 백현 씨 여자친구 자리를 허락도 없이 차지해 놓고 이따가 백현 씨 돌아오면 어쩌려고 그러니?”
  • 잠시 후, 백현이 자리로 돌아왔다.
  • “백현 씨, 이 여자가 주제도 모르고 글쎄 백현 씨 여자친구의 자리를 차지했지 뭐예요? 이 여자 빨리 내쫓아요.”
  • 심유월은 일부러 사람들이 다 듣게 목청을 높여 말했다.
  •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잠시 후면 임수연이 굴욕스럽게 끌려 나갈 생각을 하니 심유월은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 “경비 뭐 해요? 빨리 이 여자를 끌어내라니까요?”
  • “당신은 누군데 내 사람을 끌어내라고 지껄이는 거지?”
  • 백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 줄곧 온순하고 착한 이미지였던 백현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 “백현 씨 사람이라뇨?”
  • 의기양양했던 심유월의 표정이 굳어버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 “그럴 리 없는데…
  • ‘설마 기사에 났던 여자친구가 임수연?’
  • 백현의 팬이었던 심유월은 들어오기 전부터 공개 연애 기사를 보고 울적했던 참이었다.
  • 그런데 그 상대가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존재라니!
  • 그녀는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심유월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 백현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임수연에게 다가가서 부드럽게 물었다.
  • “많이 놀랐죠?”
  • “아니야.”
  • 임수연은 차갑게 심유월을 힐끗 쏘아보고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 이쪽에서 소란이 일었다는 소식을 접한 담당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심유월을 쏘아보고는 다급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 “장 사장님.”
  • 임수연은 담당자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 “진유한테 연락을 받았는데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하네요. 저 사람 좌석을 강 회장님 옆자리로 좀 빼주시겠어요? 진유가 이쪽에 앉을 예정이라서요.”
  • 임수연의 진짜 신분을 모르는 담당자였지만 이미 진유에게서 그녀의 모든 지시를 따르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망설임 없이 그녀가 가리킨 좌석을 뒤로 뺐다.
  • 그리고 그 좌석은 심유월의 좌석이었다!
  • 심유월은 자신의 좌석이 강 회장의 옆자리로 옮겨지자 경악한 표정으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 “너… 이런 고얀 년!”
  • “어떻게 된 거야?”
  • 마침 이쪽으로 다가온 손의령이 씩씩거리는 심유월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