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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공개 연애

  • “너 뭐 하는 놈이야? 왜 보는 사람마다 임수연 닮았다고 해?”
  • 옆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곽지훈이 짜증스럽게 그를 흘기며 물었다.
  • 저번에 클럽에서 춤추는 여인을 보고도 장문혁은 임수연을 닮았다고 했다.
  • 매번 임수연 이름이 나올 때마다 곽지훈은 무슨 더러운 것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기분이 안 좋았던 심유찬은 친구들의 입에서 임수연의 이름이 자꾸 오르내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룸을 나갔다.
  • 생방송은 한 시간가량 지속하다가 끝이 났다.
  • 임수연과 유라는 약간 아쉬운 표정이었다.
  • 가면을 벗은 유라가 눈을 깜빡이며 임수연을 바라보았다.
  • “나 엄마가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 처음 봤어. 엄마 웃으니까 정말 예뻤어!”
  • 임수연은 멈칫하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 4년 동안 그녀는 웃음을 잊어버리고 산 것 같았다.
  • “유라도 잘했어. 우리 유라가 이렇게 춤을 잘 추는 줄은 몰랐는걸.”
  • 임수연은 딸의 사랑스러운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 오늘 보여 준 아이의 모습은 그녀도 놀랄 정도였다.
  • 유라는 쑥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사실 유라는 춤추는 거 좋아하는데 할머니랑 고모가 싫어하잖아… 그분들이 엄마 욕할까 봐 하고 싶단 얘기를 못 했어…”
  • 그 말을 들은 임수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그런 거였구나!’
  • 결혼하고 그녀는 줄곧 시어머니, 시누이랑 같이 살았다.
  • 유라가 태어나고 첫돌쯤 되었을 때 TV 보면서 몸을 흔들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걸음마를 떼면서 매일 뛰어다니고 춤추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 그런데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아이는 움직이기 싫어했다.
  • 처음에는 그저 아이의 성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욕먹을까 봐 두려워서 욕망을 억누른 것이었다니!
  • 죄책감이 올라오자 그녀는 다시 유라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 “걱정하지 마, 유라야. 앞으로는 춤추고 싶으면 추고 다른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리고 엄마가 해야 할 말이 있어. 앞으로는 할머니 집에서 살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빠랑도 같이 안 살아. 그래도… 괜찮겠어?”
  • 이혼할 때 아이의 의사는 묻지 않은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던 임수연이었다.
  • “정말 앞으로는 할머니 집에서 안 살아도 되는 거야?”
  • 유라는 잠시 멈칫하더니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정말 잘됐네.”
  • “유라는… 거기 살기 싫어?”
  • 생각지 못한 유라의 반응에 놀란 임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거기 싫어.”
  • 유라는 고민도 안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 “할머니랑 고모는 엄마랑 유라를 싫어하잖아. 유라도 그 사람들 싫어!”
  • 아이의 격한 반응에 임수연은 다시 죄책감이 몰려왔다.
  • 신발 장인인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심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가 비천한 가정 출신이라며 무시했고 유라에게도 편견을 가지고 대했다.
  • 유라가 태어난지 벌써 3년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심씨 가문에 손녀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 임수연이 심씨 가문 핏줄을 잉태했다는 사실 자체가 치욕스러웠을 수도 있었다.
  • 임수연은 애초에 충동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몰래 유라를 낳아 혼자 키웠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방송이 끝난 뒤, 부탁했던 집을 이미 비워뒀다고 진유가 말했다.
  • 임수연은 유라와 함께 새집으로 향했다. 그건 그녀가 결혼 전 구매한 부동산이었다.
  • 명문가 출신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생방송으로 수많은 돈을 벌었다.
  • 이 집도 그녀가 방송을 해서 번 돈으로 구매한 것이었다.
  • “어서 오세요, 주인님. 저는 AI 집사 찬이에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저한테 말씀하세요. 찬이가 모든 고민을 해결해 드릴게요.”
  • 문을 열자 안에서 공손한 말투의 기계음이 들려왔다.
  • 임수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진유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그 집을 나온 건 그 사람들을 잊기 위해서인데 찬이가 뭐야?”
  • “그 집에서 그 많은 수모를 당했지만 네가 당한 만큼 돌려줄 수 없으니 아깝잖아. 이 AI 시스템은 그놈 목소리만 되는 게 아니야. 그 어미랑 그 동생 목소리도 있어. 기분 나쁠 때 바꿔서 들으면서 실컷 부려 먹어!”
  • 임수연이 4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과 수모를 겪었는지 아는 진유는 항상 그녀를 안타까워했다.
  • 임수연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라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 새집에 온 유라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핑크색 테마의 아이의 방으로 가자 예쁜 인형들도 잔뜩 있었다.
  • 유라는 활짝 웃으며 자신의 세상에서 뛰어놀았다.
  • 임수연과 진유는 다과실에서 핸드폰을 하며 차를 마셨다.
  • “그런데 왜 그 많은 집 중에서 여기를 고른 거야? 여긴 너무 작지 않아?”
  • 임수연의 명의로 많은 부동산이 있었지만 정작 그녀는 별로 관심을 느끼지 못했다.
  • “작은 집이 좋지. 애랑 둘이 살기에 너무 크면 허전하잖아.”
  • 심유찬의 본가에서 4년을 살다 보니 냉랭하고 텅 빈 느낌이 너무 싫었다.
  • “게다가 이건 내가 결혼 전에 구매한 거잖아.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
  • 눈물을 글썽이던 진유는 그 말을 듣자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 “당연히 그래야지.”
  • 두 사람은 수다를 떨며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 진해준과 임수연의 기사는 아직도 인기 검색어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진유는 핸드폰을 보며 엄마 미소를 지었다.
  • “다들 너희를 응원한대. 내가 보기에도 진해준이 심유찬 그 쓰레기보다는 백배 나아.”
  • “해준이야 두말할 것 없이 좋은 사람이지. 하지만 너 사람 잘못 짚었어. 나는 그냥 유라랑 행복하게 삶을 즐기고 싶어. 사랑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아.”
  • 심유찬을 사랑하게 된 뒤로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 그래서 사랑에 어떤 기대도 품지 않게 되었다.
  • “이런 나쁜 자식!”
  • 갑자기 진유가 탁자를 쾅 하고 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 “심유찬 이 자식 정말 쓰레기네! 이혼 접수된지 얼마나 됐다고 한은정이랑 약혼한대! 그때 그렇게 배신당했으면서 평생 함께하고 싶나 봐!”
  • 임수연은 한은정의 SNS를 힐끗 바라보았다.
  • 사진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은정의 사진과 꼭 잡은 두 사람의 손이 담겨 있었다.
  • 남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중지에 있는 빨간 점으로 심유찬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 한은정은 게시물에 ‘봄은 약혼하기 적당한 날’이라는 부제까지 달았다.
  • 임수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니 약혼을 하든 결혼을 하든 내 알 바 아니야.”
  • 말을 마친 그녀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 “그렇긴 하지만 짜증 나잖아! 네가 그때 나서지 않았으면 심유찬 그 자식 체면은 바닥에 나뒹굴었고 유성그룹도 타격이 컸을 거라고!”
  • 진유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소파를 팍팍 쳤다.
  • “그런데 그 자식은 은혜도 모르고 너를 무시했잖아!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한은정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꼭 이 시점에 공개해야 했냐고! 이건 과거 네가 했던 행동이 전부 쓸데없는 짓이었다고 선언하는 거잖아! 어떻게 이런 놈이 다 있어?”
  • “그 사람은 원래 그렇게 생각했잖아.”
  • 임수연은 한숨을 쉬며 체념한 듯 말했다.
  • “그래서 개 같은 자식이라고 하는 거야!”
  • 진유는 씩씩거리며 찻잔을 들고 뜨거운 차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그 자식이 비겁하게 나오면 우리도 똑같이 돌려줘야 해! 이번에는 백현이를 내보낼 거야. 백현 정도면 그 자식이랑은 비교도 안 되지!”
  • 진유는 결심한 듯,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그만 좀 해.”
  • 임수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말렸다.
  • “한 달 사이에 너 없는 남자친구를 둘이나 나한테 만들어줬어.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내가 바람둥이라고 욕했을 거야. 그리고 백현이는 진해준이랑 달라. 걔처럼 순수한 애 없어. 나한테 붙여줬다가 상처 입을까 봐 겁난다고.”
  •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
  • 진유는 못 말린다는 듯이 임수연을 쏘아보면서도 그녀의 결정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 백현을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임수연은 유라를 데리고 그를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