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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오랜만이야, 임수연

  • 십 분 정도 지난 뒤, 붉은색 미니 쿠페가 임수연 앞에 멈추었다.
  • 차에서 화려한 차림의 여자가 내렸다.
  • “세상에! 너 정말 이혼했어?”
  • 임수연의 절친 진유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 “응.”
  • 임수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조수석에 올랐다.
  • “잘했어!”
  • 진유는 바로 운전석에 오르더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 “너처럼 자존심 강한 애가 심유찬 눈치 보면서 그 집 가정부처럼 사는 게 이해가 안 됐어. 그 인간들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네가 자기들 덕을 본다고 생각하면서 시비만 걸었잖아. 보는 내가 답답할 지경이었다고!”
  • 임수연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 그 모습을 본 진유가 그녀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 “울고 싶으면 지금 울어.”
  • 임수연은 친구의 품에 잠시 머리를 기대고 눈물을 훔친 뒤, 해탈한 미소를 지었다.
  • “오늘 같은 날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어. 축배를 들어야지.”
  • 30분 뒤.
  • 대운시의 한 놀이공원. 임수연은 자유 낙하 놀이기구에 앉아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 잠시 후, 그들은 롤러코스터와 번지점프 등 스릴 있는 놀이기구를 즐겼다.
  • 임수연은 눈물을 흩날리며 비명을 질렀다.
  • 10년 동안 자신과 심유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 아슬아슬하고 스릴 있는 놀이기구를 즐기고 나니 조금 힐링 된 기분도 들었다.
  • 마지막으로 눈물을 닦은 그녀는 심유찬을 마음에서 철저히 지웠다.
  • 그 후 그녀는 진유와 함께 편집숍으로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맞춘 뒤, 밋밋하기만 했던 긴 생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웨이브를 넣었다.
  • 진유는 완전히 딴사람이 된 임수연을 보며 만족스럽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 “이제야 너답네.”
  • 임수연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우아하고 아름답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
  • 4년 동안 눈치만 보고 비굴했던 유성그룹 안주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 “오랜만이야, 임수연.”
  • 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 시간은 어느덧 흘러 벌써 저녁 일곱 시가 되었다.
  • 두 사람은 허기진 배를 안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 “너는 일단 룸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 사장님한테 가서 가장 잘하는 요리를 내오라고 할게!”
  • 진유는 임수연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어디론가 향했다.
  • 임수연이 예약한 룸으로 향하는데 맞은편에서 한 쌍의 남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 심유찬과 그의 첫사랑이었다.
  • 평소에는 한 달에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였는데 왜 이혼하자마자 또 마주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임수연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길을 비켰다.
  • “임수연 씨.”
  • 그녀를 발견한 한은정이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 “유찬이 만나러 온 거죠?”
  • 임수연이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쳤다.
  • “미안해요. 유찬이한테 법원 근처에서 라떼 좀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일로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 ‘그러니까 법원 앞에서 먼저 기다린 것도 이 여자 덕분이라는 거네?’
  • 임수연은 그래도 4년의 정을 봐서 심유찬이 매너를 지킨 줄 알았던 자신의 생각이 우스워졌다.
  • 아마 그를 내려놓기로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눈물이 났을 것 같았다.
  • “다행히 지금은 숙려기간이라는 게 있어서… 유찬아 너도 오해가 있으면 제대로 설명하고 화해해. 알았지?”
  • 한은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심유찬의 등을 떠밀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 그에게 오해받기 싫었던 임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 “당신 찾아온 게 아니고 그냥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
  • “이런 밀당은 나한테 아무런 소용 없어!”
  • 심유찬이 말했다.
  • 그는 눈을 내리깔고 임수연을 바라보았다.
  • 새로운 헤어스타일, 비싸 보이는 옷, 신경 써서 한 메이크업.
  •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서 관심을 끌려는 게 아니라니!
  • 심유찬은 이혼하자고 했던 임수연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지 숙려기간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그와 밀당을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 그런 생각이 들수록 그녀가 더욱 혐오스러웠다.
  • “밀… 당이요?”
  • 임수연은 이혼한 사이에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 헛웃음이 나왔다.
  • 하지만 어차피 해명해도 믿지 않을 것을 알기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 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지나쳐 자신의 룸으로 갔다.
  • 그녀가 한바탕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 예상했던 심유찬은 당당한 그녀의 태도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이대로… 간다고?’
  • 식사를 마친 진유가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임수연에게 말했다.
  • “겉모습만 바뀐다고 되는 게 아니지. 내가 알던 퀸수연으로 돌아와야지 안 그래?”
  • 임수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유를 따라나섰다가 요즘 대운시 핫플레이스인 폰타인 클럽에 도착해서야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 “나한테 저 무대에서 춤을 추라고?”
  • 임수연은 무대 위에서 요염하게 몸을 흔들고 있는 댄서들을 가리키며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 “춤을 안 춰본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야?”
  • 진유는 붉은색 미니스커트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 “네 실력으로 무대에 오르면 쟤네들 바로 옆으로 물러설걸?”
  • 임수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쇼핑백에서 노출이 적은 옷을 꺼냈다.
  • “노출이 심한 건 사양이야. 전통무를 출래.”
  • 옷을 갈아입은 임수연은 무대위로 올라가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 신나는 음악과 함께 그녀의 몸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나갔다. 긴치마가 그녀의 몸짓에 따라 흩날리며 신비로운 느낌을 더해주었다. 마치 요정이 춤을 추는 듯, 가볍고 아름다운 춤사위였다.
  • “저게 뭐야! 클럽에 와서 전통무를 추는 사람이 있다니!”
  • 무대 아래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몸짓을 보고 불만을 터뜨렸다.
  • “그런데 신기하게 박자가 딱 맞네.”
  • “예쁘네. 무용 전공했나 봐!”
  • 처음에는 불만을 터뜨리던 사람들이 그녀의 춤사위를 보고 태도를 바꾸었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 전통무용과 클럽 음악의 미묘한 조화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열심히 몸을 흔들던 댄서들도 그 아름다운 춤사위에 홀린 듯, 옆으로 비켜섰다.
  • 형광등 아래, 그녀는 무대에 홀로 남아 예쁜 곡선을 그려나갔다.
  • 옆에서 배꼽까지 드러내고 폴댄스를 추던 댄서도 졸지에 그녀의 백댄서가 되어버렸다.
  • 그녀가 전통무를 춘다고 할 때 조금 걱정했던 진유도 이 광경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임수연 죽지 않았어. 어딜 가든 빛나는 존재였지.”
  • 한편, 춤에 푹 빠진 임수연은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 4년이나 춤을 끊었던 그녀의 갈망이 이 순간 폭발해 버렸고 그녀는 단지 이 소중한 순간을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 가녀린 몸매로 우아한 몸짓을 그리던 그녀가 갑자기 봉을 잡더니 폴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 조금 전 보았던 폴댄서의 노골적인 춤과는 전혀 다른 색다르고 신비한 춤사위였다. 임수연은 봉을 잡고 가볍게 몸을 날리며 고난이도 동작을 완성했고 무대 아래에서는 어느새 탄성이 터졌다.
  • “새로 온 댄서인가? 대단한데?”
  • 무대 아래에서 공연을 보던 심유찬의 친구 중 한 명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 “유찬아, 저거… 네 마누라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