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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누나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

  • 다름 아닌 백현이었다!
  • 헉!
  • 누군가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모두의 시선이 백현에게 향했다.
  • 임수연마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백현 씨…”
  • 한은정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자리에서 일어선 백현이 입을 열었다.
  • “한은정 씨도 이거 쓰고 결혼하고 싶다면서요? 나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게 마음에 든다잖아요. 당연히 사야죠!”
  • 그 말에 심유찬은 번호패를 내려놓고 임수연을 힐끗 보고는 한은정과 함께 자리를 떴다.
  • 티아라를 손에 넣은 백현은 잔금을 결제하고 임수연에게 그것을 건넸다.
  • “누나, 선물이에요.”
  • “이걸 경매로 사서 나한테 준다고?”
  • 임수연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 그녀는 그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에게 줄 선물이라고만 생각했다.
  • “맞아요.”
  • 백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너 미쳤어? 이백억으로 이걸 샀다고?”
  • 이 금액이면 백현에게는 전부의 적금일 것이다.
  • “가치를 훨씬 초과한 금액이야.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 임수연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 “티아라 자체는 이백억의 가치가 없죠. 하지만 누나는 이걸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
  • 백현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그건 짝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이었다.
  • ‘내가 잘못 봤나?’
  • 한편, 경매장 입구.
  • 한은정은 약간 숨을 헐떡이며 심유찬을 따라갔다.
  • “유찬아, 그래봐야 티아라 하나에 그렇게 신경 쓸 거 없어. 나 정말 괜찮아.”
  • 사려 깊은 여자친구가 할법한 말이었다.
  • “너 때문에 경쟁한 거 아니야.”
  • 심유찬이 차갑게 대꾸했다.
  • 티아라를 보자 결혼식을 올린 날 밤에 임수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사실 전통 혼례가 아니라 티아라를 쓰고 식장에 입장하는 서양식 혼례를 생각했었어요.”
  • 비록 그녀와 이미 이혼한 사이였지만 구매할 돈도 없으면서 바락바락 애쓰는 그녀가 안타깝기도 하고 혹여나 경매장에서 우스운 꼴이 될까 봐 도와주려 했던 것이다.
  • 처음에는 경고 한마디로 끝낼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집요하게 나오자 그녀 대신 구매해서 선물해 줄 마음으로 경매에 참여했다.
  • 그래서 그녀가 오기로 계속 금액을 불러도 내버려 두었다. 이혼 위자료 정도로 생각할 예정이었다.
  • 그런데 결과는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임수연의 옆에는 이미 그녀를 위해 억대의 돈을 아무렇지 않게 지불할 수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 게다가 그 남자는 그녀를 위해 얼마를 써도 아깝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고 그럴수록 심유찬은 자신이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 ‘처음부터 임수연이 잘못한 거잖아. 왜 내가 그 여자 사정까지 신경 써야 하지?’
  •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갑갑했다.
  • 한은정은 어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 사려 깊고 착한 여자친구처럼 보이려고 했는데 심유찬이 협조해 주지 않았다.
  •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체면을 구길 걱정은 없었다.
  • 결국 임수연은 그 티아라를 받았다. 그녀는 곧바로 진유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계좌에서 일억을 백현에게 송금하라고 부탁했다.
  • 하지만 백현은 그날 밤 돈을 도로 돌려보냈다.
  • “누나, 누나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쯤 어느 거리를 떠돌면서 방랑자 생활을 했을지도 몰라요. 계속 이렇게 섭섭하게 나오면 나 스타업이랑 같이 일 못해요!”
  • 그냥 액수가 너무 커서 돌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뭐가 이렇게 어려울까!
  • 경매 행사에 기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백현이 이백억의 거금을 주고 임수연에게 티아라를 선물했다는 소문은 업계에 소문이 쫙 퍼졌다.
  • 이튿날 아침, 심유월은 그날 상황에 대해 묻는 전화를 수십 통이나 받아야 했다.
  • “젠장! 유성그룹이 버린 여자에게 그 많은 돈을 쓰다니!”
  • 자신이 우러러봤었던 남자가, 꿈에서 그리던 백마 탄 왕자님이 임수연을 위해 억대의 돈을 썼다는 사실에 심유월은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부아가 치밀었다.
  • “백현 그 자식은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아무것도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애까지 딸린 이혼녀인데! 나라면 임수연이 무릎 꿇고 받아달라고 빌어도 걷어찼을 텐데!”
  • 손의령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 심유월에게서 어젯밤 당한 수모에 대해 자초지종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임수연이 이렇게 대놓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건 뒤에 백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백현이라는 애는 걔가 애까지 낳은 이혼녀라는 사실을 알긴 알아? 걔 원래 거짓말 잘하잖아. 백현까지 속였을 수도 있지.”
  • 손의령이 말했다.
  • “백현 걔도 알 건 다 알아!”
  • 손의령의 말에 기분이 더 나빠진 심유월이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 “소문을 들어 보니 유라 그것이랑 셋이 같이 피겨 스케이트도 탔다더라!”
  • 백현이 임수연의 사정을 다 알면서 그녀를 받아줬다는 사실에 심유월은 더 절망했다.
  • 자신은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고 유성그룹 2세인데 고백을 단박에 거절했던 백현이었다.
  • 심유월은 지금도 자신이 임수연보다 백배는 낫다고 생각했다.
  • 그래서 더 속이 상했다.
  • “엄마, 임수연 그것이 이혼하자마자 자꾸 태클을 거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 그녀는 사악한 표정으로 손의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 “우리 가문을 떠난 인간이니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나아! 그런 인간이랑 더 상종하다가는 우리 체면만 구겨져.”
  • 손의령이 가장 신경 쓰는 건 자신의 신분과 이미지였다.
  • “하지만 받아낼 건 받아내야지.”
  • 엄마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씩씩거리던 심유월은 손의령의 의도를 듣고 다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 “역시 우리 엄마야. 치려면 약점을 쳐야지! 이제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
  • 오늘 휴가를 낸 진유는 임수연과 함께 유라를 유치원에 데려간 뒤, 새로운 유치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 유라가 지금 다니는 유치원이 별로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임수연도 심유찬의 가족들 때문에 시끄러워질까 봐 다른 곳으로 유치원을 옮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두 사람은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어젯밤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 심유찬이 한은정을 위해 임수연과 티아라를 놓고 경쟁했다는 사실을 들은 진유가 이를 갈았다.
  • “심유찬 이 멍청이 같은 자식! 할 줄 아는 게 너 괴롭히는 거지! 사람 보는 눈이 없어. 백현이가 옆에서 잘 챙겨줘서 다행이야! 이제 심유찬 그놈도 너를 무시하지 못할걸!”
  • 백현 얘기가 나오자 임수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 그가 이백억이나 주고 구매한 티아라를 볼 때마다 속이 갑갑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 돈을 줘도 거부하기만 하니 이 빚을 어떻게 갚을지 막막했다.
  • 임수연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 전화를 받자 냉랭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열한 시 반에 내가 늘 가던 커피숍에서 좀 만나. 늦지 않게 나오거라!”
  • 상대는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뒤늦게 발신자를 확인한 임수연이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