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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구미호

  • 20분 뒤, 임수연은 유라와 함께 스타업 엔터로 다시 돌아왔다.
  • “네가 쓰던 거 다 보관해 두고 있었어.”
  • 진유는 그녀에게 하얀 여우 가면을 건네며 신이 나서 말했다.
  • “사람들이 구미호가 복귀한다는 소식을 알면 분명 기뻐할 거야.”
  • 임수연은 묵묵히 가면을 건네받아 얼굴에 착용했다.
  • “엄마 가면 쓴 모습 너무 재밌어 보여. 유라도 해보고 싶어.”
  • 유라는 가면을 보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 “당연히 우리 귀염둥이 것도 준비해 뒀지.”
  • 진유는 서랍에서 핑크색 여우 가면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 유라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가면을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진유의 도움을 받아 얼굴에 착용했다.
  • “엄마, 우리 연극 놀이하는 거야?”
  • 아이는 들뜬 목소리로 임수연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 임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우리는 인터넷 생방송 할 거야.”
  • 두 모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진유는 이미 방송을 켰다.
  • 채널에는 아직 사람이 많이 들어와 있지는 않았다.
  • 4년 만에 방송에 복귀하게 된 임수연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 “안녕, 나는 여러분의 친구 구미호야. 다들 내가 왜 4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을지 궁금했을 거야. 오늘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 그녀는 결혼과 출산에 관한 과정들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유라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 자기소개가 끝나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한적하던 채널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정말 구미호 맞아?”
  • “설마 미호 사칭하고 사기치는 거 아니지?”
  • “그렇겠지. 구미호는 수천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비제이였잖아. 자본가들이 가만둘 리 없지.”
  • “구미호 본인이 아니면 재미없어. 갈래.”
  • 게시판에 난리가 난 댓글을 확인한 임수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 한 곡을 불렀다.
  • 이어서 준비한 마술 공연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 마술 공연을 하는 도중에 재미난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 “구미호야! 미호 본인 맞아! 예전에 방송할 때 하루도 빠짐없이 봤던 나야! 어떤 모습으로 둔갑했어도 알아볼 수 있어!”
  • “맞아. 구미호가 진짜 돌아왔어!”
  • “미호야, 사랑해!”
  • 채널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로 들끓었고 일부 골수팬들은 미친 듯이 풍선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 사실 임수연은 대학교 때부터 취미로 인터넷 방송을 했고 점점 유명세를 타면서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 하지만 심유찬과 결혼하면서 그의 가족들이 인터넷방송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방송을 그만두었다.
  • 처음에는 심유찬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바보 같은 짓이 없었다.
  • 임수연은 풍선 받기 시스템을 끄면서 입을 열었다.
  • “4년 만에 복귀했는데 기억해 줘서 고마워. 오늘은 여러분과 수다나 떨고 싶어. 선물은 안 받을 거야.”
  • 다시 방송으로 복귀한 임수연은 활기가 넘쳤다.
  • 가끔은 웃기고 가끔은 청순, 또 가끔은 귀엽다가 도도한 매력까지 뽐냈다.
  • 옆에 있던 유라는 처음에는 수줍어하다가 엄마가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나오니 자신감을 얻었는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마술 서포트도 하면서 어느새 방송을 즐기기 시작했다.
  • 한편, 심유찬은 아까부터 기분이 저기압이었다.
  • 아침부터 원치 않은 일로 유명 인사가 되었고 이제 대운시에 그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 아침에 받은 친구들의 전화만 수십 통이 넘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비슷했다. 축하보다는 정말 이혼했냐, 좀 아깝지 않냐 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 아깝냐고?
  • ‘그런 된장녀를 내가 왜?’
  • 더 화가 나는 건 임수연을 감싸는 진해준의 모습이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는 사실이었다.
  • 몇 시간 뒤에 진해준이 방송을 켜자 일부 팬들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믿었다.
  • 진해준은 오랫동안 임수연을 짝사랑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갭 차이가 너무 커서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 그런데 우연히 그녀의 이혼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녀를 위로할 마음으로 그 자리에 갔다고 답하면서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 ‘하! 기가 차서 정말!’
  • 그가 버린 여자가 다른 남자의 오랜 짝사랑이었다니! 심유찬은 자신의 안목이 형편없다고 욕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 그는 더러워진 기분을 달래려 평소 자주 가던 SY클럽을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말없이 술만 들이켰다.
  • 그의 옆에는 절친 장문혁이 앉아 있었다.
  • 그는 앞에 놓인 패드로 두 사람의 기사를 읽고는 농담조로 말했다.
  • “네 마누라가 이렇게 인기 많은 사람일 줄은 몰랐네!”
  • 그러는 그의 입가에 얄미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 그 모습을 본 심유찬은 수치심을 확 느끼며 차갑게 대꾸했다.
  • “전처거든!”
  • “그래. 전처, 전처지. 하지만 조금 아깝기는 해. 비록 처음에 너한테 접근한 방법이 괘씸하지만 4년 동안 본분을 잊지 않고 얌전히 내조를 잘했잖아. 게다가 그 여자가 그런 일을 벌이는 바람에 너도 이득을 봤고… 됐어. 내 얘기는 못 들은 거로 해.”
  • 주절주절 떠들던 장문혁은 잡아먹을 기세로 자신을 노려보는 심유찬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 심유찬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생각에 잠겼다.
  •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임수연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먼저 이혼을 제기한 걸까?
  • ‘네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 “그런 여자랑 이혼했는데 아깝기는 왜 아까워?”
  • 옆에 있던 곽지훈이 입을 삐죽이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 “그런데 맨몸으로 집을 나가면서 애 양육권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가 없다는 게 수상해.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텐데 말이야! 내가 보기엔 얼마 지나지 않아 애 데리고 너한테 와서 재결합하자고 애원할 거야. 너 마음 약해져서 그거 받아들이면 그 여자한테 당하는 거고.”
  • 임수연이 진심으로 이혼하려는 게 아니라는 곽지훈의 말에 심유찬은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다시 기분이 잡쳤다.
  • ‘진작 이혼했어야 했어!’
  • “이게 뭐야? 구미호가 복귀했네?”
  • 장문혁은 아이패드를 꽉 잡고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유찬아, 우리가 기획하던 프로젝트… 그거 희망이 생겼어!”
  •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일은 일이다. 심유찬은 기사 속 인물을 힐끗 보고는 장문혁에게 말했다.
  • “일단 네가 알아서 추진해.”
  • “알았어.”
  • 장문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팔꿈치로 심유찬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 “그런데 구미호가 네 전처랑 좀 닮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