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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재혼 축의금

  •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내가 무시했다고 시위라도 하는 건가? 자기가 무슨 자격으로?’
  • 임수연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심유찬은 이 모든 게 그녀가 꾸며낸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 그는 차가운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 ‘들어오라고 말까지 했는데 안 들어온 건 너야! 이러다가 안 통하면 자기가 알아서 기어들어 오겠지!’
  • “사모님.”
  • 아니나 다를까, 집사는 심유찬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는 임수연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 심유찬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이 여자에게 장난이 지나치면 큰 화를 입는다고 경고할 생각이었다.
  • 그가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 “임수연, 잘 들어…”
  • “감사합니다.”
  • 임수연은 그를 지나쳐 고용인에게서 클러치백 하나를 건네받았다.
  • 그러고는 걸음을 돌려 집사에게 말했다.
  • “앞으로는 임수연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여기 남은 물건들은 필요 없으니 알아서 정리해 주시고요.”
  • 말을 마친 그녀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 심유찬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
  • 집사와 고용인과는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을 무시한 그녀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 집사와 고용인도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낯선 눈빛으로 임수연을 바라보았다.
  • 예전이었다면 심유찬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임수연이었고 항상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 그런데 오늘은 웬일일까…
  • 대문까지 도착한 임수연이 걸음을 멈추더니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남자에게 말했다.
  • “가자.”
  • 젊은 남자는 재빨리 가서 차 문을 열었다.
  • “알았어, 누나.”
  • 두 사람은 함께 차에 올랐다.
  • “진유가 미쳐 날뛴다고 너도 같이 날뛰면 어떡해?”
  • 차에 오른 임수연이 굳은 표정으로 남자를 나무랐다.
  • 이렇게까지 큰일을 벌일 사람은 진유밖에 없었다.
  • 남자는 쑥스러운 듯, 턱을 만지며 대꾸했다.
  • “진유 누나가 누나한테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잖아.”
  • ‘이건 이벤트가 아니라 공포 영화인데?’
  • 임수연은 말없이 진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 수화기 너머로 진유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 “어때? 심유찬 그 자식 속 좀 쓰렸을걸? 걱정하지 마. 아직 시작에 불과해. 이어서 더 잘난 남자들이 나타날 거야! 심유찬 그 자식한테 네가 얼마나 인기 많은 여자인지 보여줄 거야!”
  • 임수연은 한숨만 나왔다.
  • 임수연이 나간 뒤, 심유찬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사모님이 왜 저 남자 차에 탄 거죠?”
  • 고용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사모님 혹시…”
  • 대놓고 바람을 피웠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심유찬은 여전히 똥 씹은 얼굴로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 거처에 돌아간 임수연은 본가 고용인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 “사모님, 그냥 집으로 들어오세요. 도련님 많이 화나 보였어요.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해명이라도 해보세요.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니까요.”
  • 고용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임수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걱정해 줘서 고마운데 심유찬 씨가 아직 말 안 했나 봐요? 우리 이미 이혼서류까지 법원에 접수했어요.”
  • “이… 혼이요?”
  • 고용인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심유찬의 눈치를 살폈다.
  • 조금 전 보였던 현수막은 그냥 장난인 줄로 착각했던 그들이었다.
  • 그런데 사실이라니!
  • 고용인은 그제야 임수연이 보였던 반응이 떠올라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사모님이… 도련님을 찬 거야?’
  • 심유찬은 고용인에게서 임수연이 언제 돌아온다는 답이 안 들려오자 짜증스럽게 다가와서 수화기를 낚아챘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련님한테 가서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요. 앞으로 이혼만 접수되면 서로 엮일 일 없이 각자 갈 길을 가는 거라고요. 그리고 퀵으로 카드 한 장 보냈어요. 그 돈은 나중에 심유찬 씨가 재혼할 때 축의금 정도로 해두죠.”
  • 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집사가 퀵서비스 기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 상대는 그에게 카드 한 장을 건넸다.
  • 심유찬은 카드를 보며 피가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그 카드는 결혼기념일 당일 날 그가 그녀에게 선심 쓰듯 던져줬던 카드였다.
  • 그에게서 사인을 받으려던 퀵 기사는 살기를 내뿜는 그의 눈빛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버렸다.
  • 한편, 진유의 오피스텔.
  • 임수연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진유는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 “수연아, 너도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재혼 선물로 그걸 줄 생각을 했을까? 심유찬 그 자식 지금쯤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거야! 아주 잘했어!”
  • 말을 마친 그녀는 임수연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 “이제 두 번째 이벤트를 준비해야지! 저번에는 그냥 신인 배우라서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우리 회사 얼굴마담을 내보내야겠어! 우리의 목표는 심유찬 기를 채워서 죽이는 거야!”
  • “그 정도에서 그만해.”
  • 임수연은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
  • “카드를 돌려준 건 빚지기 싫어서였어. 네가 또 일을 벌이면 그 인간은 내가 자기를 잊지 못해서 일을 꾸민다고 생각할 거야. 나는 빨리 숙려 기간이 지나서 이혼 절차를 차질 없이 마무리하고 싶어!”
  •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진유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 “그럼 일단은 그냥 내버려 둘게! 참, 우리 귀염둥이 방학할 때 되지 않았어?”
  •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 무릎을 탁 치며 물었다.
  • 귀염둥이라는 말에 굳었던 임수연의 표정이 환하게 빛나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 임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 “올 때 됐지.”
  • 다음 날 오후, 임수연과 진유는 성진 유치원으로 갔다.
  • 잠시 후,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밖으로 나왔다. 임수연을 본 소녀는 머뭇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