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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

  • “그 여자가 이런 곳에 올 리 없잖아.”
  • 다른 친구가 가소로운 표정으로 반박했다.
  • “저런 실력이 있었으면 진작 유찬이를 유혹했겠지. 그런 여자를 저 댄서랑 비교하다니! 저 댄서를 모욕하는 말이야.”
  • 심유찬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무대 위 여자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임수연이랑 많이 닮기는 했네.’
  • 하지만 유성그룹 안주인 자리를 위해 전전긍긍하던 그녀가 이런 곳에 와서 춤을 출 리 없었다.
  • 심유찬은 레스토랑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보였던 반응을 떠올리고 구석으로 가서 집에 전화를 했다.
  • “사모님 집에 있어?”
  • “그게… 아침에 나가셔서 아직 안 돌아오셨습니다.”
  • 고용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 말을 들은 심유찬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 남자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 ‘이런 얄팍한 수법으로 내 연민을 사려나 보군! 임수연, 너한테 속는 건 한 번이면 족해!’
  • 심유찬은 다시 평소의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룸으로 돌아갔다.
  • 친구가 다가오며 말했다.
  • “유찬아, 애초에 임수연 같은 여자랑 말도 섞는 게 아니었어. 그냥 돈 주고 꺼지라고 했으면 됐잖아! 이제 봐! 네 앞에서는 그냥 사고였다고 추궁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기자들한테 너희 약혼한 사이라고 떠벌렸잖아!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여자가 있을까? 막장 드라마도 요즘은 이렇게 안 나와!”
  • 아픈 곳을 정확히 찌르는 친구의 말에 심유찬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너도 그만해.”
  •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말렸다.
  • “아무리 사고였다고 해도 유찬이도 남자인데 너무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는 없었어. 관계를 해놓고 사고였다고 돈이나 뿌려주면 상대를 모욕하는 것밖에 더 돼?”
  • “유찬이한테 물어봐! 그게 정말 사고였을까? 임수연 그 여자가 일부러 계획한 게 아니라?”
  • “그 여자가 계획한 거라고 해도 나중에 그 일만 없었어도…”
  • 친구는 말을 하다 말고 어색한 표정으로 심유찬의 눈치를 살폈다.
  • 심유찬은 음침한 표정으로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 룸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 그의 친우가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 “유찬아, 결혼생활 4년 동안 너는 그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신경 써서 보지도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일찌감치 차버리는 게 나아. 아까운 시간을 그런 여자한테 낭비할 수는 없잖아.”
  • “너랑 이혼하면 여자에 눈이 먼 영감들이나 그 여자한테 접근하겠지! 그 여자와 딱 어울리는 조합이잖아!”
  • 룸에 비웃음 소리가 가득 찼다.
  • 한편 밖에서 소리를 듣고 있던 진유는 시뻘게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쥐더니 당장이라도 달려 들어가려고 했다.
  •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 임수연은 그런 친구를 뜯어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 “이거 놓으라니까? 저 나쁜 자식들이 너한테 뭐라고 하는지 너도 들었잖아! 이걸 어떻게 참아!”
  • 진유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 임수연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 “이혼까지 했는데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 무슨 상관이야.”
  • 이혼하기 전에는 어떻게든 오해를 풀려고 그의 친구들을 잡고 설명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 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 그때는 화목한 가정을 위해 자존심을 굽혔지만 이제 모두 필요 없어졌으니 사람들의 비난도 딱히 와닿지 않았다.
  • 진유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렸다.
  • “그 인간을 위해 자존심 굽히고 산 세월이 몇 년이야? 너 안 믿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기도 싫다니! 게다가 뭐라고? 너한테는 여자에 환장한 영감들이 딱 어울린다잖아! 내가 저놈들한테 네가 얼마나 잘났는지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똑똑히 보여줄 거야!”
  • 임수연은 홧김에 한 소리라고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밖으로 나갔다.
  • 다음날, 임수연은 본가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저택으로 향했다.
  •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고용인에게 전화해서 밖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 통화가 끝나기 바쁘게 자가용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 똥 씹은 얼굴을 한 심유찬이 차에서 내리더니 짜증스럽게 그녀를 힐끗 보았다.
  • ‘어젯밤 그 난리를 피우더니 역시 집에 돌아왔네.’
  • “소란 다 피웠으면 빨리 안으로 들어가!”
  • 그가 명령조로 차갑게 말했다.
  • 임수연은 멈칫하다가 다시 초연한 표정을 지었다.
  • ‘아직도 내가 자기한테 미련이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담담하게 대꾸했다.
  • “심유찬 씨,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네요. 우리 어제 이혼했잖아요.”
  • 심유찬이 불쾌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 “내가 이만큼 참아줬으면 알아서 기어야지. 끝까지 가면 결국 다치는 건 당신일 텐데!”
  • 참아줬다?
  • 입만 열면 온갖 모욕에 협박이면서 어떻게 참았다고 표현하는 걸까?
  • 임수연이 뭐라고 하려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거대한 현수막이 보였다.
  • [임수연, 이혼한 거 축하해! 이제 꽃길만 걷자!]
  • 현수막뿐이 아니었다. 옆에는 작은 플랜카드도 보였다.
  • [잘했어, 임수연!]
  • 갑작스러운 상황에 임수연 본인마저 입이 떡 벌어졌다.
  •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장미꽃다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 “수연 누나, 이제 나한테도 기회가 온 거 맞지?”
  • 고개를 들자 미모의 남자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 180이 넘는 훤칠한 키와 황금비율을 자랑하는 다부진 몸매까지! 누구나 꿈꾸는 완벽한 남자친구의 모습이었다.
  • 그녀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상대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 “많은 걸 약속할 수는 없어. 하지만 함께하는 매 순간 누나만을 바라보고 아껴줄 거야. 누나가 하는 말은 전부 믿을 거고 영원히 누나를 외롭게 하는 일은 없어.”
  • 그 말에 뒤에 서 있던 심유찬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