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그런 반응이 우스웠다. 같은 집에서 4년이나 살았는데 얼마나 무시했으면 운전할 줄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더 말하기 귀찮아진 임수연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손에서 차키를 받았다.
심유찬도 말없이 차에 올랐다.
임수연이 그에게 아이를 건네자 그는 약간 어쩔 바를 몰라 허둥지둥했다.
“애 머리만 잘 받쳐주면 돼요.”
임수연은 그의 팔을 잡으며 자세를 고쳐 주었다.
그는 경직된 자세로 감히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아이의 보송보송한 볼이 자신의 가슴에 닿자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저절로 미소가 나오려고 했다.
임수연은 말없이 운전석에 올라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에게 자신의 거처를 알리기 싫었던 그녀는 택시가 잘 잡히는 곳까지 가서 차를 세웠다.
“도착했어요. 고마웠어요, 심 대표님.”
말을 마친 그녀는 심유찬의 품에서 유라를 받아 안고 걸음을 옮겼다.
“임수연!”
심유찬이 뒤에서 그녀를 불렀다.
“유라한테 못 해준 거 천천히 보상해 줄 거야. 하지만 내 딸은 다른 아빠는 필요 없어. 이게 내가 참아줄 수 있는 한계야!”
“도대체 그 보상을 어떻게 해줄지 궁금하긴 하네요.”
걸음을 멈춘 임수연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내일 이혼 철회한다고 기사 발표할 거야. 당신은 집으로 돌아와. 나는 유라한테 최대한 시간을 내볼게.”
“이혼을 철회할 거예요?”
임수연이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결정, 한은정 씨와 상의는 한 거예요? 한은정 씨가 동의했나요?”
“걔 동의가 왜 필요해?”
임수연과 대화만 하면 심유찬은 짜증이 치밀었다.
“두 사람 약혼한 사이잖아요. 이런 일은 약혼자한테 먼저 상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약혼?”
심유찬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을 재촉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다른 건 상관할 필요 없어!”
임수연은 이러는 그의 태도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나를 사랑해서 이혼을 철회한다는 거예요?”
“내가 하는 모든 건 유라를 위한 거야! 유라가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게 하고 싶어서!”
심유찬은 고민도 없이 경고 섞인 대답을 했다.
‘이럴 줄 알았지!’
임수연은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
“부모가 옆에 있는 게 아이한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죠? 하지만 이혼 가정에서 자라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 없이 아빠랑 둘이 살았지만 한 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아빠는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줬고 나만 즐거우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거든요. 우리는 4년이나 같이 살았고 유라도 올해 벌써 세 살이네요. 유라한테 행복했었냐고 물어볼 자신은 있어요? 당신 눈치 보느라, 당신 어머니 눈치 보느라, 당신 동생 눈치 보느라 유라는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어요. 당신들이 기분이 언짢으면 나한테 시비를 거니까! 당신들 비위를 맞추려고 그 나이에 좋아하는 춤까지 포기했어요, 유라는! 이런 숨 막히는 환경에서 계속 생활하라고 하는 게 유라한테 더 잔인한 일 아닌가요?”
울분을 토하듯 말을 마친 임수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앞으로 변할 수 있는 것들이야.”
심유찬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환경이 변하면 뭐가 달라져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잖아요? 유라가 자라면서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자신의 존재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한다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심유찬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이혼을 철회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게 유라한테 가장 좋다고 확신했다.
“유라는 내가 잘 보살필 테니까 심 대표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임수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고는 밖으로 향했다.
그날 심유찬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은정의 거처에 들렀다.
한은정은 심유찬을 보자 눈을 반짝이며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유찬아, 어서 들어와.”
심유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SNS에 올린 이 사진들 전부 삭제해 줘.”
한은정은 고개를 숙이고 약혼을 암시하는 듯한 자신의 게시물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미안해, 유찬아. 그냥 예전이 너무 그리워서 그만… 사진에 조회수가 이렇게 많이 몰린지도 몰랐어.”
말을 마친 그녀는 조심스럽게 심유찬의 눈치를 살폈다.
“이게 다 임수연 그 여자 때문이잖아. 그 여자가 그때 나를 곤란하게 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우리 사이의 일에 임수연 끌어들이지 마.”
심유찬이 차갑게 경고했다.
오늘만큼은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 4년 전에 이미 끝났어. 지금은 그냥 친구일 뿐이고.”
할 말을 다 한 그는 미련 없이 밖으로 향했다.
등 뒤에 선 한은정은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예쁘장한 얼굴이 이미 보기 싫게 일그러져 있었다.
돌아온 뒤로 다시 만나자는 의사는 전혀 밝히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의 주변을 떠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의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그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차갑게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해 버릴 줄은 몰랐다.
‘임수연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한은정은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무슨 소식 들었는지 알아? 글쎄 그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유성그룹 심유찬이 전처랑 이혼을 철회하겠다고 했다는 거야. 네가 모르고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전화했어. 너의 백마 탄 왕자님은 멀리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