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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사람을 잘못보다

  • “저 사람이 송민규예요?”
  • 송세희는 잠시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 “맞습니다. 3일 전부터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 한지윤은 의혹이 일었지만 아무말 않고 별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송세희더러 송민규를 안으로 들여보내라 했다.
  • 마침 오늘 시간이 좀 있으니 앞으로 자주 볼 사람끼리 안면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 얼마 안 가 송민규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손을 씻은 그는 하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다가왔다.
  • “대표님, 오셨어요?”
  • 한지윤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확실히 그날 일루젼에서 본 얼굴이 맞긴 맞았다. 흰 피부에 깔끔하고 점잖게 생긴 얼굴은 그대로였는데, 그래도 어딘가 자꾸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 “이쪽에 와서 앉아 봐. 잠깐 얘기하게.”
  • 기분이 나쁘지 않은 한지윤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 “네.”
  • 그녀의 맞은편에 송민규가 자리잡고 앉았다. 깨끗하고 길쭉한 손이 다리 위에 편하게 올려졌고 맑은 눈동자는 조용히 한지윤을 향해 있었다. 남들처럼 그녀 눈에 들기 위해 아부하려는 게 아니라, 정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 한지윤이 한눈에 수많은 남자들 속에서 그를 콕 집어 고를 수 있었던 바로 그 마음에 든 모습이었다.
  • 얘기를 나누려는데 한지윤은 문득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 “여긴 일하는 사람도 없어? 왜 차 하나 내주는 사람이 없지?”
  • 송세희가 입을 열려는데 송민규가 먼저 말했다.
  • “그분들은 제가 내보냈습니다.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외부인의 존재를 꺼려할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는데, 제가 주제넘은 행동을 한 거라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지금 가서 차를 내오겠습니다.”
  • 일적으로 유난히 엄격한 것 외에 평소의 한지윤은 딱히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다. 어차피 송민규에게 살라고 내어준 별장이라 그가 알아서 하게끔 내버려 두었다.
  • 송민규는 빠르게 주전자 가득 차를 끓여왔다. 그녀가 좋아하는 녹차의 한 종류인 명전용정이었다.
  • 3일 동안 그는 가만히 놀기만 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한 모양이었다. 한지윤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눈치 빠르고, 생긴 것도 맘에 들고, 밤일은 더할나위 없고. 차를 홀짝인 한지윤이 상쾌한 말투로 물었다.
  • “담배는 끊었어?”
  • 송민규가 얌전히 대답했다.
  • “저 담배 안 핍니다.”
  • 한지윤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일전에 생겼던 의혹이 다시 한 번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 “예전에도 담배 핀 적 한 번도 없었어?”
  • 그녀의 표정이 변하자 송민규 또한 덩달아 긴장했다.
  • “네. 저 담배 핀 적 없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폐암으로 투병 중이셔서 돈이 필요해서 일하기 시작한 터라… 그래서 저 담배 안 핍니다.”
  • 한지윤이 송세희를 쳐다보자 영문을 모르는 송세희가 입을 열었다.
  • “저분 얘기는 모두 사실입니다. 송민규 씨 아버지는 폐암으로 지금 입원 중이시고 어머니는 재작년에 투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송민규 씨는 원래 한 투자회사에서 출근하다 큰 돈이 필요해서 사직하고 일루젼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 얘기를 듣던 한지윤이 손을 휘휘 저었다.
  • 아니다.
  • 송민규는 그날밤의 남자가 아니었다.
  • 한지윤이 송민규를 향해 말했다.
  • “상의 좀 벗어 봐.”
  • 송민규는 멈칫하더니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눈앞의 어여쁜 물주가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제 역할을 모르지 않으니 송민규는 하라는 대로 할 뿐이었다.
  • 옷을 벗자 빈약한 상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 한지윤은 자리에서 일어서 남자의 가슴을 쿡쿡 찔러봤다. 훤한 대낮에 스킨십을 당하고 있자니 송민규는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했는데도 정작 일이 닥치자 초보인 그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송세희는 보기 민망한지 고개를 살짝 돌려버렸다.
  • 한지윤만 여전히 똑같은 기색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 속 의혹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송민규의 팔뚝을 만져봤다. 근육 하나 없이 그저 물렁하기만 했다. 한지윤은 송민규가 그날밤의 남자가 아님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됐다.
  • 사람을 착각해서 잘못 잤다.
  • 한지윤은 다시 한 번 송민규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다. 그날 아침에 커튼을 쳐두어서 광선이 그리 밝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의 우뚝선 콧대와 짙은 눈썹은 송민규의 청순한 오관과 전혀 결이 다름이 분명했다.
  • “너 그 사람이 아니야.”
  • 한지윤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 송세희와 송민규는 일제히 멍한 표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