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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예쁘게 생긴데다가 나이까지 어린 사모님

  • 차진우는 고고한 성정으로 질척이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 “한지윤, 그 남자 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너한테 손 댄 거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 말을 마친 그는 홱하고 뒤돌아 떠났다. 프로젝트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않은 채 말이다.
  •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사라지자 한지윤은 배서영에게 매달리며 배고프다 칭얼댔다. 배서영은 유경험자라 그녀의 목에 새겨진 키스마크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 “지윤아, 너 남자친구 생겼어?”
  • “남자친구요? 그건 아니긴 한데.”
  • 어른들에게 제 사생활로 걱정을 끼쳐드리기 싫었던 한지윤은 대충 둘러댔다.
  • “엄마는 걱정 안 해도 돼요. 저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지금처럼 머리가 선명했던 적도 없어요.”
  • 배서영은 그래도 조금쯤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 “너 차 서방이랑 다시 화해할 가능성은 없는 거야? 아까 보니까 차 서방은 너 그래도 계속 신경 쓰는 눈치던데.”
  • 여태 말을 안 하고 있었던 이문희가 곁에서 작게 소리를 냈다.
  • “왜 화해해야 되죠? 제 앞에 얼마나 드넓은 숲이 펼쳐져 있는데 굳이 한 그루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요.”
  • “지윤이 잘했어. 우리 한 씨 가문의 여자들은 과감히 내려놓을 줄도 아는 사람이야. 할머니는 너 응원한다.”
  • 한지윤은 할머니를 끌어안으며 뽀뽀를 쪽 남겼다.
  • “역시 우리 할머니야. 너무 영명하세요.”
  • 흉흉한 기세로 한 씨 저택에서 나오는 차진우를 본 박우영이 재빨리 차 문을 열었다.
  • 허리 굽혀 차에 올라탄 차진우는 쉴틈 없이 지시했다.
  • “한지윤이랑 가깝게 지내는 남자 지금 당장 다 찾아내.”
  • 응? 프로젝트 건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거 아니었나? 갑자기 웬 남자? 의문이 들었지만 차진우가 뿜어내는 노기가 워낙 짙어 박우영은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알겠다 대답했다.
  •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오희민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진우 오빠, 지윤 언니가 도와주겠대요?”
  • 차진우는 그제야 화를 내느라 여기로 온 목적을 하나도 해결 못 했음을 알았다.
  • 할머니와 어머니랑 같이 점심을 먹은 뒤 한지윤은 새로 옷을 갈아입고 회사로 출근했다. 오후에 영상 미팅이 잡혀 있었는데 혜성 그룹 산하의 한 투자회사에 문제가 조금 생겼기 때문이다.
  • 미팅이 시작되고 연달아 이어지는 직원들의 책임전가에 한지윤은 손을 내저었다.
  • “고작 이 정도 문제도 해결 못하는 걸 보니 다들 혜성 그룹에 남아있을 자격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자진 사퇴하시면 위약금 외에도 반 년치 월급을 별도로 더 드리겠습니다.”
  • 영상 속 사람들이 일제히 멍한 눈빛을 했다.
  • 그리고 두 시간 뒤, 새로운 계획서가 짠하고 나타났다.
  • 영상 미팅이 끝난 후 비서실장 주민식이 서류를 안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 “대표님, 여기 성남 프로젝트 계약서입니다. 한번 보시죠. 그리고 상일 프로젝트 책임자가 대표님을 10분이라도 좋으니 만나뵙고 싶어 하십니다.”
  • 상일 프로젝트가 바로 차진우가 그녀의 손에서 뺏어가 자신의 내연녀인 오희민에게 넘겨준 그 프로젝트였다.
  • “시간 없다고 하세요. 그리고 저희쪽 문제가 아니면 인정할 필요 없으니 굳이 사서 남의 걱정하지 말라고들 전하세요. 상일 프로젝트가 오희민 씨 손에서 적자 나면 차 대표님한테서 프로젝트를 다시 가져올 방법이 차고 넘치니까. 그런데 만약 저희쪽 문제가 맞다면 관련된 사람들은 이제 회사에 필요 없으니 다들 짐 싸고 나가라고 하세요.”
  • 주민식은 한지윤의 곁에서 일 년여를 일하면서 상대가 일적으로 얼마나 단호한 사람인지를 잘 알았다. 고작 20대 초반인 그녀는 사업장에 있어 그 수단이 절대 남자 못지 않았다. 심지어 어떨 때 보면 남자보다도 더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했다.
  • 비록 혜성 그룹에서 일하면서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는 많이 받지만 그래도 대우는 업계에서 좋기로 소문나 불만있을 이유가 없었다.
  • 주민식은 별다른 말 없이 한지윤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송세희가 들어왔다.
  • “대표님, 송민규 씨 건강검진 다 마쳤습니다. 이제 더팰리스로 가라고 할까요, 아니면…”
  • “벌써요?”
  • 한지윤이 놀라서 반문했다.
  • 당연히 빠를 수밖에 없는 게, 한지윤이 송민규의 스폰을 제안하고 나서부터 일루젼 전체가 부러움에 휩싸였다. 필경 돈 많은 사모님은 널렸을지 몰라도, 예쁘게 생긴데다가 나이까지 어린 사모님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모두들 한지윤이 얼마 전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눈에 들기만 하면 송민규는 평생, 아니, 어쩌면 다다음 생까지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며 다들 부러워했다.
  • 더팰리스는 한지윤의 개인 거처였기에 외부 사람을 들이기 꺼려했다. 그녀는 대충 지시했다.
  • “코히스 별장을 정리해서 거기에서 당분간 살라고 하세요.”
  • “네.”
  • 한지윤은 곧바로 이 사실을 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는 일이 너무나도 바빴기 때문이다.
  • 바로 당일날 저녁, 한지윤은 비행기를 타고 남쪽 도시로 출장을 갔다가 3일 뒤에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 더팰리스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깨끗해진 목덜미를 본 후에야 문득 송민규를 떠올린 한지윤은 그대로 코히스 별장으로 향했다.
  • 저녁이 다가오고 있는 시각, 별장에 들어선 한지윤은 하얀 셔츠를 입은 채 정원에서 물을 주고 있는 키 크고 마른 남자를 발견했다. 호스를 손에 들고 허리를 조금 굽힌 남자의 옆모습이 많이 슬림해 보였다. 손목도 그녀의 손목보다 크게 굵어 보이지 않았다.
  • 예쁜 아몬드 눈이 가늘게 접혔다.
  • 뭐야… 저 몸으로 나를 이리저리 돌렸다고? 그날밤의 역삼각형 몸매보단 조금 말라 보이는 것 같은데, 설마 옷태가 좋아서 그런 것이고 벗으면 잔근육이 박힌 몸매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