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우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못 본 척 하기도 애매했다.
그가 막 인사하려고 하는데 처제 임예연이 따지며 물었다.
“우진, 솔직하게 말해봐, 너 QY그룹의 임원을 알지?”
어제 돌아가서 오래도록 생각해 보았는데 임예연 모여는 여전히 그들이 무시하던 우진이가 QY그룹의 임원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 사장님의 비서가 우진에게 그렇게 예의를 차릴 리가 없다.
만약 우진이가 정말로 QY그룹의 임원을 안다면 우진이가 나서서 좋은 말을 하면 안설의 그 계약이 성사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맞아.”
우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설과 임예연은 이 말을 듣자마자 눈이 밝아지며 순식간에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아이고, 우리 사위가 이렇게 출세했을 줄이야. 얼른 말해봐, 어느 임원을 알고 있니?”
안설은 흥분한 표정으로 우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은 이 몇 년을 통틀어 우진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이다.
처제 임예연도 설레는 얼굴로 우진을 쳐다보았다. 우진이가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형부 같았다.
“저는 우준 밖에 몰라요.”
우진이가 솔직하게 말했다.
전체 QY그룹에서 그는 확실히 우준만 알고 있다. QY그룹의 기타 임원들은 하나도 모른다.
“얘야, 말하는 것 좀 봐, 우씨 갑부라고 해야지.”
안설은 우진을 교육하는 말투였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자신의 사위가 우씨 갑부를 알고 있다니, 그럼 자신의 큰 계약이 성공할 확률은 훨씬 더 큰 것이 아닌가.
우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살짝 어이가 없었다.
“참, 형부, 우씨 갑부와 무슨 관계야?”
임예연은 호기심 가득히 물었다.
“우준은 나의 집사야. 참, 어머님, 어제 QY그룹에 미팅하러 가셨죠? 얘기는 잘 됐나요? 아니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장모님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자 우진도 마음속으로 뿌듯했다.
비록 예전에 그들이 자기를 얕보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장모님인지라 그런 것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안설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듣더니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다.
Y시티의 제일 갑부가 네 집사라고? 너 아예 하늘로 올라가지 그러니?
모녀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우진이가 그들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우씨 갑부가 네 집사라고? 그럼 나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제일의 갑부야!”
임예연은 냉소를 터뜨리며 비꼬았다.
“우진, 너 간땡이가 부었구나? 나까지 놀려 먹어?”
안설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희망이 깨져서 그런지 그녀는 역대급으로 우진이가 혐오스러웠다.
우진이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왜 진실은 아무도 믿지 않는 걸까?
“지언을 잘 보살피지 않고 또 어디로 새려고 하는 거야?”
안설이가 호되게 꾸지람하며 물었다.
“지언이가 잠들어 저는 밥 먹으러 나왔어요.”
우진은 솔직하게 말했다.
“먹기는 무슨, 먹을 줄 밖에 모르니 조만간 먹다가 배 터질 거야!”
안설은 콧방귀를 끼더니 임예연을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오늘 온 것은 우진에게 따지는 것을 제외하고 외손녀를 보기 위해서다.
우진은 안설과 임예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할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털썩 떨구었다.
그래도 그는 핸드폰을 꺼내 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 아저씨, 요즘 XK제약에서 당신들과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죠? 책임자가 그들의 판매 실장인 안설 맞죠?”
우진이가 물었다.
“요즘 기온이 좀 높아서 회사에서 더위를 예방할 약을 사서 직원들에게 인당 두 병씩 나누어 주려고 하는데 어느 의약회사에서 구매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준이가 대답했다.
“네, 만약 XK제약의 안설이라면 그녀의 것을 구매하세요.”
우진이가 말했다.
“네. 참, 도련님, 어르신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도련님께서 시간이 된다면 어르신은 당일에 날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우준이가 말했다.
우진은 흠칫하더니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직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아요.”
우준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때의 일은 전부 어르신을 탓할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르신도 줄곧 마음속으로 괴로워하셨습니다. 어르신께서 왜 10년 동안 재혼하지 않으신지 아십니까? 어르신께서 도련님과 사모님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련님께서 Y시티에 온 걸 알고 바로 저를 Y시티로 보내 QY그룹를 설립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도련님을 찾지 않은 것은 어르신도 도련님의 성격을 잘 아시기에 도련님이 곤경에 빠지지 않는 한 나타나지 말고 도련님의 삶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10년 전 집을 나간 후 그는 아버지의 소식을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아버지의 전화도 받은 적이 없다.
물론 받아도 그는 당장 끊어버렸다.
다만 그의 가슴을 떨리게 한 것은 10년 전 어머니가 세상 떴을 때 아버지도 36세였을 뿐인데 지금까지 그 천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니?
설마 이 10년 동안 그는 정말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다는 말인가?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야 우진이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 딸의 병이 다 나은 후에 다시 말해요.”
누가 뭐래도 그는 그의 아버지다. 게다가 그도 조금씩 마음을 넓게 가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죽음은 결국 그 천한 여자의 잘못이 더욱 크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어르신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르신께서 들으시면 매우 기뻐하시겠네요.”
우준은 감격스러워 말했다.
그가 10년 동안 Y시티에 있으며 Y시티의 제일 갑부가 된 것은 중요한 때에 도련님을 돕는 것 외에 주로 도련님께서 마음을 되돌리기를 기다렸다.
우진은 전화를 끊고 병원 밖의 국수집으로 와서 국수 하나를 시키고 이제 막 먹으려고 하는데 처제 임예연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진, 지언이가 없어졌어. 빨리 돌아와서 찾아!”
임예연이 애타게 말했다.
우진은 웃으며 말했다.
“지언은 19층 VIP 귀빈실로 옮겨 갔어, 2번방에 있어.”
“뭐? 지언을 귀빈실로 옮겼다고? 네가 무슨 돈으로?”
임예연이 따졌다.
“빌린 거야.”
우진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그가 말해도 상대방이 믿지 않으니 더 이상 해명할 필요가 없다.
“그럼 지언과 일치한 골수를 찾으면 어떡하려고?”
임예연이 계속 물었다.
“걱정 마, 너희들한테서 빌리지 않을 거야. 나름 방법이 있어.”
1년 전 창업에 실패하여 안설에게 돈을 빌렸다가 쫓겨날 때 우진은 평생 다시는 장인어른 가족에게 손을 내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흥, 너 같이 방탕한 놈에겐 절대 빌려주지 않을 거야.”
안설이가 콧방귀는 끼는 소리가 들리자 우진은 전화를 끊었다.
“이 쓸모없는 놈이 감히 내 전화를 끊다니. 정말 건방지군!”
안설은 매우 불쾌하게 핸드폰을 딸에게 돌려주고는 딸을 데리고 19층으로 갔다.
귀빈실을 찾은 후 우진이가 전문 간호사를 불러 지언을 돌보는 것을 발견하고 안설은 그가 돈을 우습게 여긴다며 속으로 또 방탕한 놈이라고 몇 마디 욕을 했다.
두 사람이 잠깐 앉아 있은 후 지언이가 깨났다. 안설과 임예연은 비록 우진을 하찮게 여기지만 지언만큼은 진심으로 아낀다.
오후에 별일 없으면 지언이랑 오래 있으려 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안설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전화를 받더니 흥분하여 지언의 볼에 몇 번 입을 맞추었다.
“엄마, 누구예요?”
임예연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QY그룹의 매니저가 우리보고 오후에 만나서 협력 얘기를 하자고 했어.”
안설은 흥분하며 말했다.
“어머, 잘됐네요, 엄마 축하드려요, 드디여 QY그룹 이 큰 계약을 따내셨네요!”
임예연도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
“안 매니저가 원래는 우리의 약품을 원하지 않았는데 귀인이 우리를 도와 말씀해 줘서 우씨 갑부께서 직접 허락하셨대. 근데 도대체 누가 우리를 도운건지 모르겠네,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