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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6천만 원 있어?

  • 판명이 떠나가자, 임예향의 눈빛은 생기를 잃었고,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 “우진, 당신의 자존심이 지언의 목숨보다 중요해?”
  • 우진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손에 든 디저트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돈 빌리러 갈게.”
  • “당신이 돈 빌리러 간다고? 어디 가서 빌릴 건데? 지금 판 본부장님을 제외하고, 대체 누가 우리를 돕기 위해 6천만 원을 빌려주겠어?”
  • 임예향은 단단히 벼르면서 말했다.
  • “나에게 돈을 빌릴 방법이 있어.”
  • 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 그는 창업도 해보고, 실패도 맛보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친분을 쌓은 친구들이 있었다.
  • “우진!”
  • 임예향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 “당신을 원망하게 만들지 마!”
  • 우진은 흠칫하더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 임예향은 눈앞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우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온몸의 기가 다 빨리는 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마음은 완전히 타들어 갔다.
  • 그녀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 그녀는 충동적으로 그와 결혼을 선택한 자신을 후회했다!
  • 순간, 임예향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디저트 박스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 우진은 병원을 나서 싸구려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셨다. 그는 사레가 들린 듯 끊임없이 기침했다.
  • 그의 눈은 빨갛게 되었다.
  • 돈!
  • 돈! !
  • 이 모든 게 다 돈 때문이었다!
  • 비록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그의 딸은 목숨을 잃게 된다!
  • 우진은 자리를 잡고 앉아, 주소록을 뒤지면서 연이어 전화를 걸기 시작했지만, 상대방은 그가 돈을 빌리려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하나같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꺼내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저예요.”
  • 우진은 차갑게 말했다.
  • “아이고, 작은 도련님이시군요.”
  • 전화기 너머로 한 어르신이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 “작은 도련님이 이 전화를 걸어온 목적은 저와 함께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거겠죠?”
  • “미안하지만 돌아갈 수가 없어요.”
  • 우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 “준 아저씨한테는 다른 일 때문에 전화했어요. 아저씨 혹시 사적으로 저한테 6천만 원만 빌려줄 수 있어요? 급하게 사용할 곳이 있어요.”
  • “작은 도련님은 모르겠지만, 제 명의로 된 모든 자산은 우 씨 가문의 소유입니다. 6천만 원이 아니라 이 늙은이의 목숨을 가져간다고 해도 저는 찍소리도 못하죠.”
  • 상대방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 “하지만 전제가 있죠. 작은 도련님이 상속계약에 먼저 사인을 해야 해요. 서명을 마치고 나면 이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서명에 관한 내용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저 지금 진짜 급하게 6천만 원이 필요해요.”
  • 우진이 대답했다. 그는 우 씨 가문과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딸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 “안됩니다. 주인어른께서 작은 도련님이 상속계약에 서명을 해야만 가족의 재산을 건드릴 수 있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 상대방은 단호하게 말했다.
  • 우진은 이를 악물었다.
  • “협상할 여지는 없나요?”
  • “죄송합니다. 작은 도련님.”
  • 우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 그는 타협을 선택해야 하는지 망설였다.
  • 결국, 자신의 딸을 위해 그는 타협하기로 했다.
  • “좋아요. 사인할게요.”
  • 우진이 대답했다. 그는 말 못 할 통증이 자신의 얼굴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 “지금 어디에 있죠?”
  • “저는 현재 QY 빌딩에 있습니다. 작은 도련님은 어디에 계시죠? 제가 사람을 보내 모셔올까요?”
  • 상대방이 물었다.
  • “괜찮아요. 바로 찾아갈게요.”
  • 우진은 전화를 끊었다,
  • 그와 우천형, 우 씨 가문은 피로 이어진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 그는 평생, 이 장벽을 넘어가는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 하지만 딸이 중병을 앓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그는 스스로 원한을 내려놓고 그에게 머리를 숙이는 선택을 할지 상상도 못 했다.
  • 그에게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 우진은 담배꽁초를 땅바닥에 뱉어버리고 몸을 돌려 택시를 잡아 곧장 QY 빌딩으로 향했다.
  • QY 빌딩에 도착한 우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빌딩에서 걸어 나오는 그의 장모님 안설을 발견했다.
  • 그는 무의식적으로 안설을 피하려고 했지만, 안설은 이미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당신 돈 빌리러 간다고 하더니 여기 왜 왔어?”
  • 안설은 한껏 불쾌한 표정으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딸이 아이만 가지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이 무능한 놈이랑 이혼시키리라 생각했다.
  • 우진은 안설과 맞닥뜨리자 어쩔 수 없이 머쓱하게 대답했다.
  • “저는 돈 빌리러 왔어요.”
  • “우진아, 우진. 여기가 어떤 곳인지도 몰라? 입구 바닥에 깔린 레드 카펫이 당신 목숨보다 더 비싸다고. 당신이 무슨 재주로 여기서 돈을 빌려?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 안설은 콧방귀를 뀌었다.
  • 안설은 XK 제약의 마케팅 실장으로 최근에 QY 그룹과 대규모 사업을 논의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이곳으로 향했다.
  • 하지만 QY 빌딩 입구에서 출입 거절을 당할 거로 생각지도 못한 그녀는 화가 잔뜩 나있었다.
  • 문전박대를 당한 그녀는 한창 기분이 언짢아 있었고, 그때 마침 우진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 “이 쓰레기야, 우리 언니는 출근도 해야 하고, 지언이도 돌봐야 하는데 당신은 돈을 빌린다는 핑계로 이곳에 놀러나 다니고, 당신 남자 맞아?”
  • 처제 임예연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우진을 바라보았다.
  • 그제야 우진은 안설의 뒤에 있던 임예연을 발견했고, 그녀의 곁에는 한 청년이 서 있었다.
  • 그 청년의 이름은 호군, 임예연의 대학 동창이었다.
  • “예연아, 이 사람이 바로 그 무능력한 네 형부였어? 네 언니는 사람 보는 눈이 없나봐. 이 자식은 거의 시골 사람이나 다름없어 보이잖아.”
  • 호군은 우진을 훑어보더니 가소롭다는 눈빛을 보냈다.
  • 그는 마침 한 술자리에서 QY 그룹 대표님이랑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었다.
  • 또한, 최근에 안설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는 자진해서 안설을 데리고, 그녀를 도와 이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도록 그룹 대표님을 만나러 왔었다.
  • 다만 대표님은 그의 체면을 전혀 세워주지 않았고 망신만 당하게 했다.
  • 이때, 임예연과 그녀의 어머니가 전부 우진에게 한소리씩 하는 것을 본 그는 자기도우진을 비난하면서 화를 풀려고 했다.
  • “그러게, 우리 언니가 왜 이런 무능한 남자와 결혼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몰라. 더 중요한 것은 이 바보 같은 사람은 책임감조차 전혀 없어.”
  • 임예연은 비꼬았다.
  • “남자는 잠시 돈이 없어도 되지만 책임감은 무조건 있어야 해.”
  • 호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 우진은 세 사람을 흘끗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QY 빌딩으로 향했다.
  • “당신이 거기 가서 뭐 할 건데? 얼른 지언이를 돌보러 가지 못해?”
  • 빌딩으로 향하는 우진을 본 안설은 눈썹을 찡그리며 호통을 쳤다.
  • “우준을 찾아가서 할 말이 있어요.”
  • 우진은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 “뭐라고? 우 갑부를 찾아간다고? 당신 헌신짝처럼 쫓겨나고 싶어?”
  • 안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버럭 내며, 손을 뻗어 우진을 붙잡았다.
  • 우진은 단지 경비원에 불과했고, 만약 다른 사람에게 쫓겨나면 쪽팔리게 되는 것은 장모님으로서의 그녀였다.
  • “어머님, 이 손 놓으세요. 진짜 우준이랑 볼일이 있어요.”
  • 안설한테 붙잡힌 우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웃기고 자빠졌네. 우진은 우리 Y 시티의 최고 갑부라고. 당신처럼 한낱 경비원이 무슨 자격으로 그를 만나?”
  • 임예연이 비웃었다.
  • “말은 바른대로 해야지. 아마 네 형부는 같은 우 씨라고 500년 전에 한 가족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보지.”
  • 호군은 비웃으며 말했다.
  • 우진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이들이 오늘 단체로 약을 잘못 먹었거나, 갱년기에 접어든 게 아닌지 의심했다.
  • 하지만 그는 안설을 향해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휴대폰을 꺼내 우준에게 자기를 만나러 내려오라고 전화를 걸려고 했다.
  • 이때, 유니폼 차림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섹시한 여자가 다가왔다.
  • 다가오는 미인을 발견한 안설은 우진을 놓아 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의심이 가득 찼다.
  • “우 대표님의 전임 비서에요.”
  • 임예연이 말했다.
  • “어쩌면 그들이 태도가 바뀌었을지도 몰라요. 우리를 다시 부르러 왔나 봐요. 안설 이모, 곧 이 프로젝트를 따내게 된 걸 미리 축하해요.”
  • 호군은 눈을 반짝이면서 알랑거렸다.
  • “진짜 우리를 다시 부르러 오는 거라고?”
  • 안설은 다소 믿을 수 없었지만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 “당연하죠. 이곳에 우리밖에 없는데요. 게다가, 저는 방금 그들과 대화를 했잖아요.우리를 찾으러 틀림없어요.”
  • 호군은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 “전에 왕 매니저님과 대화가 안 풀렸지만, 우 대표님의 전임 비서가 우리를 찾으러 온 것은 대표님이 직접 지시한 사항임이 분명해요. 엄마, 이번 프로젝트의 성사가 코앞까지 다가왔네요!”
  • 임예연 또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안설은 4천만 원가량의 보너스를 타게 된다.
  • 안설은 생각하면 할수록 우 대표님의 비서가 그들을 찾아온 거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설마 우진처럼 저런 무능한 놈을 찾아 갈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 결국, 안설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 “안녕하세요. 당신이 여기로 온...”
  • 안설의 질문이 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웃음을 유지한 채 얼굴이 굳어있었다.
  • 예쁘장한 비서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그녀를 지나쳐 우진 앞으로 다가왔다.
  • 그녀는 우진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 “우 도련님, 저를 따라서 오시죠.”
  •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임예연과 호군의 얼굴을 훑어보다가 비서를 따라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 안설을 포함한 세 사람은 제자리에 굳어 있은 채, 표정은 놀라움과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 ……
  • 우진은 우준과 잠시 대화를 나눴지만, 그는 여전히 가문의 자산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고, 타협할 의향도 전혀 없었다.
  • 그러나 그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우준은 절대로 돈을 빌려주지 않거나, 우진더러 우천형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
  • 우진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면서 사인을 했다. 그리고 우준더러 지언이와 일치하는 골수를 찾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우진한테서 먼저 6천만 원을 빌렸고, 우진은 그 돈을 받아 QY 빌딩을 떠났다.
  • 그가 떠난 이후 우진이 우천형에게 이 사실을 어떤 식으로 전달이 될지 그는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
  • 어차피 그가 우천형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 이상, 그가 아는 우천형은 절대로 먼저 자신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 비록 그는 돌아가서 가문의 자산을 물려받기로 했지만, 우천형을 이토록 빨리 용서할 계획은 없었습니다.
  • 우진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판명이 다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임예향과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아 이미 깨어나 있는 딸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다.
  • 판명은 임예향과 바짝 붙어 있었고, 두 사람은 가끔 무언가를 속삭였다.
  • 우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병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