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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당장 우진에게 사과해

  • 판명이가?
  • 우진은 어제 병원에서 판명이가 했던 위협적인 말을 떠올리며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 하지만 그는 원래 사직하러 온 것이다. 그를 해고하나 마나 마찬가지다.
  • 우진은 경비대장 오현의 사무실로 들어가 사직하겠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오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우진아, 네가 하루가 멀다 하고 휴가를 신청하는 것이 이미 우리 경비팀의 업무계획을 심각하게 방해 했어. 내가 하 대표님께 여쭤보았는데 하 대표님은 너를 해고하라는 뜻 이었어.”
  • “아, 그럼 월급만 결산해 주면 돼.”
  • 우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 “너는 해고를 당한 것인데 어떻게 월급이 있겠니? 보증금도 돌려줄 수 없어.”
  • 오현은 가볍게 웃었다. 그는 우진이가 한바탕 소란을 피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쭈글한 모습을 보더니 경멸하는 눈빛을 띄었다.
  • 자식,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판 본부장님의 미움을 사다니. 판 본부장님은 회사의 실세로서 너 같은 작은 경비원 하나를 해고하는 것은 아무 절차도 밟을 필요가 없어.
  • 우진은 웃는 듯 마는 듯하며 오현을 바라보았다.
  • “그래, 그럼 나는 하 대표님을 찾아가서 물어볼게.”
  • 그는 코웃음을 치고 경비실을 나왔다.
  • 그는 지금 비록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아서 이만한 돈 따위는 눈에 들지 않지만 그가 가져야 할 몫은 누구도 감히 떼먹어서는 안 된다.
  • 우진의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에 오현은 눈썹을 찡그리더니 판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 “판 본부장님, 우진 그 놈이 하 대표님을 찾으러 갔습니다. 저희가 보증금조차 돌려주지 않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요?”
  • 오현은 조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 “걱정 마, 하 대표님한테는 내가 이미 말했어. 고작 경호원일 뿐인데 하 대표님이 그를 마음에 두겠니?”
  • 판명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거두며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 우진아 우진, 너 같은 쓸모없는 놈이 무슨 수로 나와 여자를 뺏어?
  • 너를 해고하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야. 네가 어디에서 사채를 빌렸는지 알아내면 너는 더 비참하게 죽을 거야.
  • 10분 뒤, 하 대표님 사무실.
  • 하군은 갑자기 자신의 사무실에 들이닥친 우진을 쳐다보며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 “누구야? 뭐 하는 사람이야?”
  • “하 대표님, 이 사람은 경비팀의 경비원 우진입니다. 이 사람이 꼭 대표님을 만나겠다며 막무가내로 들어와서 제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 비서가 급히 우진을 따라 들어오며 설명했다.
  • 그녀는 분노 가득한 얼굴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품위 없는 남자는 처음 본다.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곧바로 그녀를 밀어냈다.
  • “경비팀의 우진이라...”
  • 하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침에 판명이가 그에게 우진을 해고하겠다고 말했던 일이 기억났다.
  • “네, 바로 저예요.”
  • 우진은 하군의 책상 맞은편 의자에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저를 해고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왜 월급을 결산해 주지 않나요? 심지어 보증금조차 돌려주지 않다니? 하 대표님,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 하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너를 해고한다는 얘기는 들었어. 네가 자주 무단결근을 하니 회사에서 당연히 너를 계속 남길 순 없지. 너에게 월급을 결산해 주지 말라는 것은 나의 뜻이기도 하고 회사의 규정이기도 해.”
  • 판명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한 이상 그도 판명의 체면을 좀 세워 주어야 한다.
  • 어쨌든 판명은 회사의 사업 본부장으로서 개인 실력도 매우 강하여 매년 회사를 위해 적지 않은 업무를 따오고 있다.
  • 하지만 우진은 고작 경비원일 뿐이니 둘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우진을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다.
  • “회사의 규정? 그런데 저는 왜 여태 들어 본 적이 없죠. 회사의 규정은 직원을 규정 하는 것이 아닌가요?”
  • 우진은 살짝 화가 났다. 그는 지금 가산을 상속받아서 이정도 월급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건 원칙의 문제다.
  • 회사는 분명히 이런 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는 무단결근한 것이 아니라 매번 휴가를 낼 때마다 허락을 받았었다.
  • 하군은 판명을 도와 그를 괴롭히려 하는 것이다. 정말 그를 보잘것없는 경비원으로 여기는 것인가?
  • “내가 이 회사의 대표다. 내가 그런 규정이 있다면 그런 규정이 있어. 네가 사장이 될 능력이 있으면 너도 마음대로 규정을 정할 수 있어.”
  • 하군은 조롱하듯 우진을 쳐다보았다. 이왕 판명을 돕기로 한 이상 우진과 같은 단역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 이런 단역은 날뛰라고 해도 날뛰지 못할 것이다.
  • “고작 이만한 돈을 따먹기로 작정하신 건가요?”
  • 우진은 어이가 없는 듯 웃었다
  • 오늘 전까지만 해도 이런 괴롭힘을 당했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만약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경찰에 신고해도 돼. 됐어, 넌 이젠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니 이만 가봐.”
  • 하군은 어깨를 으쓱하며 우진을 이겼다는 표정이었다.
  • “역시 하 대표님이시네요, 위세가 대단하네요.”
  • 우진은 웃으며 하군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
  • 그렇다, 그가 보기에 하군은 그를 모욕하고 있다.
  • 보살도 화가 좀 있는데 이런 모욕을 당했으니 우진은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 감히 그를 모욕하고 그의 돈을 뜯어먹을 수는 없다.
  • 그는 하군을 쳐다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준 아저씨, DG전자회사의 시가총액이 300억 정도인데 그를 파산시키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 우진이가 물었다.
  • “반나절이면 됩니다, 도련님.”
  • 우준은 웃으며 말했다.
  • “좋아요, 그럼 오늘 중으로 그 회사를 파산시키세요.”
  • 우진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 그는 하군을 향해 담담하게 웃었다.
  • “이 세상에서 아무도 이유 없이 내 돈을 뜯어먹지는 못해요. 내가 싫다면 내 돈을 한 푼만 뜯어먹어도 그더러 위까지 뱉어내게 할 거예요.”
  • 그는 말하면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 나갔다.
  • 하군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는 우진의 이런 무료한 위협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우진이가 만약 그의 회사를 파산시킬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어찌 그의 회사에서 경비원을 하겠는가?
  • ...
  • 우진은 분노를 억누르고 하군의 사무실을 떠나 병원으로 가려고 했다.
  • 오늘 임예향은 업무미팅을 하러 가기 때문에 그가 딸을 돌봐 주어야 한다.
  • 우진이가 회사 1층 프런트에 도착하자마자 판명 등이 프런트에서 일부러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 그렇다, 판명은 일부러 우진을 기다리며 치욕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 어제 우진이는 그에게 손찌검을 한 것도 모자라 그의 뺨을 때렸다. 그는 작은 원한이라도 꼭 갚는 사람이니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 “이거 우진 이잖아. 하 대표님한테 따지러 갔다던데 하 대표님은 아마도 네 요구를 만족시켰겠지.”
  • 판명은 비웃는 표정으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 오현과 몇몇 경비원들도 놀리며 웃었다.
  • 그들은 모두 제대한 군인이다. 제대한 군인으로서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자 그들도 마음속으로 우진에게 약간 불만스러웠다.
  • 우진이가 해고당했을 뿐만 아니라 월급 보증금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몇몇 경비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우진은 판명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담배 한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고 나서야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 “공연을 계속 하시죠.”
  • 판명이가 이렇게 신나서 춤을 춘다면 마음껏 춤추게 하자.
  • 다만, 오후에 DG전자가 파산을 선포하고 나서 그가 계속 뛸 수 있을지 두고 볼 것이다!
  • 우진의 풍자를 듣자 판명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가장 짜증나는 것은 우진은 분명 막다른 길에 몰렸으면서 자기 앞에서 잘난 척 하는 것이다.
  • “우진아, 고작 쓸모없는 놈 주제에 내 앞에서 잘난 척은?”
  • 판명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 “그러게, 우진아, 넌 고작 경비원일 뿐이야. 판 본부장님은 돈이면 돈, 권세면 권세가 있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본부장님을 건드려. 우진아, 내 말을 듣고 얼른 판 본부장님께 사과해. 안 그러면 넌 Y시티에서 일자리도 찾지 못할 거야.”
  • 오현은 우진을 타이르고 있었지만 말속에는 협박의 뜻이 담겨 있었다.
  • 우진은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며 말했다.
  • “고작 판매 본부장 주제에 나를 막는다고? 오현, 지금 날 웃기는 거야?”
  • 오현은 우진이가 이렇게 건방질 줄 몰라 얼굴빛이 살짝 변하더니 콧방귀를 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판명은 방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 “흥, 내가 비록 작은 판매 본부장일 뿐이지만 말 한 마디로 너를 회사에서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월급도 못 받고 보증금도 환불받을 수 없게 했지. 우진아, 사실대로 말해줄게. 너를 해고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뜻이야. 네가 무슨 수로 나와 싸우는지 정말 이해가 안 돼. 네가 그렇게 대단하면 월급과 보증금을 받고 가지 그래? 아니면 하 대표님더러 너를 해고하는 명을 거두라고 하지 그래?”
  • “판명, 너 참 기세등등하구나.”
  • 바로 이때,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뭇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하 대표님이 당당하게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하 대표님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자 판명 등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하 대표님, 나가시는 거예요?”
  • 판명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 “흥!”
  • 하군은 화가 난 얼굴로 판명을 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말해봐, 우진이가 회사에서 줄곧 일을 잘해왔는데 너는 왜 그를 해고하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너는 영업팅인데 무슨 자격으로 경비팀의 직원을 해고해? 누가 너에게 권리를 줬어? 직권을 남용하여 우수한 직원을 무단으로 해고하다니, 판명, 네가 지금 당장 우진에게 사과하고 그의 용서를 받지 않은 이상 난 즉시 너를 해고할거야!”
  • 하군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호통 쳤다.
  • “네?”
  • 판명은 가슴이 떨리며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 격분한 하 대표님의 표정을 바라보자 그는 두 다리가 약간 떨려왔다.
  • 오현 등 몇몇 경호원들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하 대표님이 우진을 해고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 이건 또 무슨 뜻이지?
  • 우진은 판명에게 짜증을 내는 하군을 보더니 이내 입가에 한 가닥 냉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