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하군의 핍박에 못 이겨 우진에게 사과했던 일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출근하러왔지, 너를 미행할 생각은 전혀 없어.”
우진은 판명의 음산한 눈빛을 완전히 무시하고 어이없다는 듯 임예향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만뒀잖아.”
임예향은 우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우진이가 그녀를 믿지 않기에 미행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저번에는 그냥 휴가를 냈어.”
우진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그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임예향은 그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임예향이 막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고객이 미팅을 재촉하는 전화였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나를 미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말을 마치고 먼저 떠났다.
우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임예향을 미행할 여유가 없다.
“인마, 지금 회사는 다른 사람한테 인수되어 하 대표님은 더 이상 최대 주주가 아니야. 내가 새 주주의 신임을 얻고 나서 너를 어떻게 혼내줄 지 두고 봐.”
우진이가 가려는 것을 보자 판명은 괴상야릇하게 말했다.
그는 며칠 전에 이미 회사가 신비한 사람에게 인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업무 능력으로 새 주주는 무조건 그를 좋게 보고 심지어 그를 믿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중에 그가 새로운 주주 쪽의 사람이 되면 더는 하군을 꺼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우진을 혼내주는 것도 손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말을 듣고 우진은 고개를 돌려 괴상한 웃음을 띤 채 판명을 바라보았다.
“뭘 웃어?”
판명은 우진의 안하무인 모습이 가장 못마땅했다.
“네가 미련해서 웃는 거야.”
우진은 눈썹을 씰룩거렸다.
판명이 자기에게 아부해서 자기에게 맞설 생각을 하다니, 이건 미련한 것이 아닌가.
“흥, 인마, 너무 일찍 우쭐대지 마. 금요일 임원대회에서 새 주주가 나타날 거야. 좋은 날이 며칠 안 남았어. 그리고 네 마누라가 지금 만나러 가는 고객이 누군지 알아? 사실대로 말해줄게. 그 고객은 Y시티에서 유명한 색마인데 네 아내가 그와 자지 않으면 그는 절대로 이 프로젝트를 네 아내에게 주지 않을 거야. 넌 그저 오쟁이를 질 준비나 해.”
판명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가 실망하겠네. 나도 사실대로 말해 줄게. 그는 오늘 감히 내 아내를 건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 아내에게 빌면서 계약하자고 할 거야. 믿지 못하겠으면 기다려봐.”
우진은 엷게 미소 짓고 곧장 회사를 떠났다.
우준이가 부동산 회사의 매니저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씨 가문에 남을 필요가 없다.
임예향아 임예향, 너는 내가 재벌 2세라는 걸 믿지 않았잖아.
내가 실제 행동으로 보여 줄게. 나는 진정한 재벌 2세일뿐만 아니라 Y시티의 전체 비즈니스 업계에서 우러러보는 재벌 2세라는 걸.
너를 돕는 건 그저 전화 한 통이면 돼.
내가 뒤에서 도와줬다는 걸 언젠가 알게 된다면 너는 어떤 표정일까?
우진은 이 상황이 조금 웃겼다. 자신이 살짝 사이코패스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내인데 비록 요즘 그녀에게 자주 꾸지람을 듣지만 이렇게 아내를 뻘쭘하게 만드는 게 괜찮을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곧장 회사를 떠났다.
“임예향에게 빌면서 계약한다고? 꿈꾸고 있네.”
판명은 우진의 뒷모습 보며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그 고객이 얼마나 까다로운 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상대방을 모시고 여러 차례 마사지까지 받으러 갔는데도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이 색마는 임예향한테서 이득을 보지 않고서야 어찌 임예향과 계약을 체결하겠는가?
판명은 냉소를 터뜨리고는 고객을 만나러 갔다.
힐튼 고급 레스토랑. 이때 유해산은 이미 술을 많이 마셨고 손발도 점점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예향 씨, 음식만 먹고 술은 안 마시는 게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요?”
유해산은 임예향의 허벅지에 손을 걸치려 하자 임예향은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절묘하게 피했다.
“유 매니저님께서 오해하셨어요. 제가 요즘 몸이 아파서 술을 마실 수 없어요.”
임예향은 급히 웃음을 짜내며 말했지만 마음속엔 분노가 치밀었다.
마지못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정말로 유해산과 일하고 싶지 않았다.
“임예향 씨, 그렇다면 우린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는 것 같네요.”
유해산은 협박하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Y시티에서 비록 당신네 DG전자에서만 전자 도어 스코프를 생산하지만 질량은 기타 시티의 것과 비교할 수도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C시티의 DL전자에서도 우리와 협의를 하고 있는데 당신네 두 회사의 가격은 비슷해요. 그리고 DL전자의 제품은 당신네 것보다 질이 더 좋은데 아무런 이득이 없다면 내가 왜 당신들의 제품을 구매해야 하나요?”
그는 자신의 목적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그는 비록 여자들을 무수히 보았지만 임예향처럼 몸매와 얼굴이 전부 최상인 미인을 언제 보았겠는가. 임예향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마음이 몹시 근질거리며 반드시 그녀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
임예향은 눈살을 찌푸리고 밥상의 술잔을 바라보면서 망설였다.
유해산이 이토록 까다로울 줄은 몰랐다.
임예향이가 망설이는 것을 보자 유해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임예향을 훑어보았다.
이 여자는 곳곳에서 성숙한 여인의 정취를 풍긴다. 마치 잘 익은 복숭아처럼 탐스럽다.
마음이 근질거려 참기 힘들다!
“임예향 씨, 이 계약이 당신한테 매우 중요한걸 알아요.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사실 어렵진 않아요. 오늘 나와 함께 올라가서 방에서 잘 얘기하면 내가 나중에 사인해 줄게요.”
유해산은 쇠뿔도 단김에 빼려고 말했다.
말하면서 그는 또다시 임예향의 하얗고 탄력 있는 허벅지로 손을 뻗었다.
그가 보기에 때는 거의 무르익었다. 그는 임예향이 이번에는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짝!
임예향은 순간 반응하더니 손을 번쩍 들어 유해산의 얼굴을 때렸다.
“네 이 게걸스런 색마야,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손을 대? 이 계약을 누구한테 주든지 네 마음대로 해, 난 필요 없어!”
임예향은 비록 이 계약이 절실하지만 그녀는 원칙이 있는 여자다.
특히 지금 딸의 병도 다 나았으니 돈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녀가 이런 여자였다면 애당초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진 그 가난뱅이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쌍X, 네가 감히 나를 때려?”
유해산은 뺨을 한 대 맞더니 벌떡 일어나며 되갚아 주려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밥상 위에 두고 있던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회사 대표에게서 걸려온 것을 보고 그는 바로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전화를 받았다.
“안 대표님.”
유해산은 화를 가라앉히고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임예향이라는 여자와 산목단지의 전자 도어 스코프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
전화너머로 기분을 알 수 없는 안 대표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유해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의아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이 일을 물어보시다니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네가 일부러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었지?”
건너편에서 안 대표님이 또 물었다.
“네?”
유해산은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그 쌍X이 안 대표님과 아는 사이인가?
“네 이놈, 상대방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 방금 QY그룹의 회장님 우준이가 직접 내게 전화를 걸어서 해명을 해라고 했어. 유해산, 내가 경고하는데 당장 이 일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더 이상 Y시티에서 살 생각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