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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속상한 일

  • “왜 군인이 하기 싫은데?”
  • 정희연이 대뜸 물었다.
  • 나윤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일이 많고 성과급도 없어. 남이 휴가에 놀 때 나는 야근했고. 그런데 직업 군인이 뭐가 좋아?”
  • 정희연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을 이었다.
  • “그럼 경호원도 나을 게 없잖아?”
  • 나윤도는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 “최소한 생명의 위협은 없잖아.”
  • 정희연은 나윤도가 과거 일을 꺼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렇게나 둘러대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이 뻔히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 “참, 윤도야. 우리 회사에 경호팀장 자리가 비는데 몸놀림 좋은 네가 우리 회사에 오는 건 어때. 우리 아파트보다 낫잖아.”
  • 나윤도는 바로 흥미가 생겼다. 오늘 조영호를 때렸으니 그 아파트 단지에서 편하게 지내긴 글렀다. 그래서 그는 단번에 미끼를 물었다.
  • “월급은 어때요?”
  • “당연히 거기 있는 것보다 낫지!”
  • 정희연이 말했다.
  • 나윤도 역시 월급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냥 놀고 있기 그래서 일을 찾는 것이었으니까.
  • “그럼 좋아요.”
  • 기분이 좋아진 정희연이 바로 말했다.
  • “그럼 그렇게 결정하는 거다. 언제 출근할 수 있어?”
  • “내일요.”
  • 나윤도가 말했다.
  • 정희연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 “그래. 여기서 월급 다 못 받아도 그냥 내버려둬. 우리 쪽에서 채워줄게.”
  • 나윤도는 그녀의 말에 정희연의 신분에 흥미가 생겼다. 그가 물었다.
  • “희연 누나, 거기는 뭐 하는 회사예요? 누나 명의로 된 회사예요?”
  • 정희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내가 어떻게 회사를 세워. 일개 회사원일 뿐이지. 근데 내가 회사 대표랑 친구야. 그래서 내 말이 제법 통하거든.”
  • 나윤도가 말했다.
  • “아. 근데 전 아직도 뭐 하는 회사인지 모르는데요.”
  • 정희연이 말했다.
  • “패션 디자인!”
  • 나윤도는 문득 깨달았다.
  • 그들은 무척 유쾌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했다. 나윤도는 모든 사람과의 대화를 잘 이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따금씩 정희연이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었다.
  • 집으로 돌아갈 때는 이미 밤 열 시였다.
  • 꽤 오래 식사를 한 편이었다.
  • 두 사람 모두 술을 마셔서 운전할 수가 없었다. 정희연은 아예 길가의 주차장에 차를 버려두었다.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에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 맥주를 두 병 마신 정희연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게다가 술을 마신 그녀는 더욱 진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 한참 걷던 그녀는 묶은 머리가 거추장스러운지 머리핀을 뺐다. 순간, 새까만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 그 찰나의 아름다움과 광채에 나윤도는 멍해졌다.
  • 전설 속의 요정이 지상에 강림한 것 같았다.
  • 정희연은 멍해진 나윤도를 보고 이상한 듯 물었다.
  • “왜 그래?”
  • 나윤도는 진심으로 말했다.
  • “희연 누나, 누난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울 수가 있어. 누나 같은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이혼하지 않을 거야!”
  • 저도 모르게 그 말을 꺼낸 나윤도는 가슴이 철렁했다.
  • 그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희연이 이혼한 일은 남들에게 들은 것인데 왜 말했을까?
  • 역시나 정희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별다른 말없이 간단하게 대꾸했다.
  • “가자. 얼른. 시간도 늦었어.”
  • 말을 마친 정희연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 사과하려고 했던 나윤도는 그녀의 행동에 그걸 잊어버렸다. 그도 정말 소갈머리 없는 녀석이다.
  • 나윤도는 이내 빠른 걸음으로 정희연을 따라잡았다.
  • “희연 누나, 미안해.”
  • 나윤도는 서둘러 말했다.
  • 정희연도 덤덤히 대꾸했다.
  • “괜찮아.”
  • 두 사람은 이런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
  • 나윤도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의 이름은 북호 아파트다.
  • 정희연은 나윤도 때문에 속상한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는 길 내내 나윤도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윤도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 금방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검은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 정희연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무심코 나윤도를 안았다. 어제 금방 괴한이 쳐들어오는 일을 겪어서 지금 무척 예민했다.
  • 나윤도 역시 그 검은 실루엣을 보았다.
  • 그 검은 실루엣은 다름 아닌 나윤도의 룸메이트 주영이었다.
  • 주영은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서로를 안고 있는 나윤도와 정희연을 보았다.
  • “콜록!”
  • 나윤도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 “희연 누나, 저 사람은 내 동료야. 이름은 주영.”
  • 그 말을 들은 정희연은 너무나도 창피했다. 야들야들한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다.
  •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나윤도의 품을 떠나더니 고개를 돌려 주영을 마주했다.
  • “안녕하세요!”
  • 그렇게 인사를 건네는 정희연은 대범하고 예의 있어 보였다. 방금 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으니까.
  • 주영은 여신 같은 정희연을 마주하자 오히려 긴장해서 얼굴까지 빨개졌다.
  • 나윤도는 주영이 입구 컷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이렇게 물었다.
  • “왜 그래, 주영아?”
  • 주영은 바로 그 일을 떠올리고 나윤도의 옆에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
  • “윤도 형, 빨리 가는 게 좋겠어. 조영호가 오늘 밤에 형을 괴롭히려고 준비한대.”
  • 나윤도는 곧바로 대꾸했다.
  • “난 또 무슨 일이라고. 깜짝 놀랐네.”
  • 그는 주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걱정 마. 조영호 그 망나니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니까.”
  • “윤도 형, 그래도…”
  • 주영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더 설득하려고 했지만 나윤도가 이미 정희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 “희연 누나, 가자. 바래다줄게.”
  • 정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나윤도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정희연은 이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 “무슨 일이야. 조영호는 너희 경호팀장이잖아? 왜 널 괴롭힌다는 거야?”
  • 정희연은 조영호를 본 적이 있었다. 날티가 나는 그는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
  • 나윤도는 웃으며 말했다.
  • “아무 일도 아니야. 점심에 내가 좀 혼내줬거든. 누나도 그 망나니 봤지. 어린 게 콧대만 높아서 범 무서운 줄 모르잖아. 그래서 걔네 부모님 대신해서 손 좀 봐줬어.”
  • 정희연은 나윤도의 말에 동의했다. 그 조영호는 얻어맞기 딱 좋은 상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나윤도에게 물었다.
  • “왜 때렸는데?”
  • 그녀는 남자가 늘 다른 사람이랑 싸우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
  • 사실 정희연은 성숙하고 일에 대한 성취욕이 강한 남자를 좋아했다. 그녀는 나윤도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었고 꽤 재밌는 사람 같아서 누나 동생 하자고 한 것이었다. 나윤도 같은 경호원은 그녀의 배우자 선택 범위에 없었다. 이혼은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도도했으니까.
  • 나윤도가 대답했다.
  • “오늘 저녁 당직이었는데, 희연 누나랑 밥 먹기로 했잖아? 그래서 휴가를 내려고 찾아갔어. 근데 그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이 허락할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허락하든 말든 난 통보했다고 말했더니 그 자식이 날 때리려고 하길래 살짝 반격했지. 결국 그 자식이 날 손 봐줄 능력이 없어서 내가 손 봐준 꼴이 되어버렸지만.”
  • 나윤도는 경과를 간단하게 얘기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뒤에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 “거기 서!”
  • 바로 조영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