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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정희연의 마음

  • 정희연은 차를 몰고 나윤도와 함께 회사로 갔다. 회사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나윤도가 말했다.
  • “옆에 세워줘, 난 먼저 내릴게. 사람들이 한낱 경호원이 네 차 타고 같이 출근하는 거 보면 뭐라고 하겠어.”
  • 일부러 그렇게 얘기하는 그였다.
  • 가끔 보면 이 남자도 속이 좁을 때가 있다. 분명 정희연이 지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꼭 이렇게 한마디를 해야 할까.
  • 정희연은 어쩔 줄 몰랐다. 자신이 지나치게 행동한 건 사실이라 이를 악물며 말했다.
  • “괜찮아.”
  • 나윤도가 웃으며 말했다.
  • “그래, 농담한 거야. 나 볼일 있어서, 차 세워줘.”
  • 이상함을 느낀 정희연이 물었다.
  • “네가 무슨 볼 일이 있어?”
  • 나윤도는 어쩐지 자신을 얕잡아 보는 것 같아 발끈했다.
  • “그게 무슨 말이지, 난 뭐 볼 일 있으면 안되는 건가?”
  • “정말이야?”
  • “당연히 진짜지.”
  • 정희연이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 나윤도가 차에서 내리자 그녀도 다시 출발했다.
  • 사실 볼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들어가기 싫었다. 체면을 무척 중요시 여기는 정희연이라, 자신은 괜찮았지만 그녀가 경호원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무척 난감할 게 뻔했다.
  • 더욱이 어제 대표님과 그런 일까지 있었으니 당연했다.
  • 나윤도는 가끔 막 나가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 한편, 회사에 도착한 정희연은 바로 송연아에게 불려갔다.
  • 송연아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 “전에 희연 씨가 추천할 경호팀장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설마 그게 나윤도인가요?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어제는 내가 제대로 묻지 않았는데, 이 사람의 품행에 문제가 있다면 우린 절대 쓸 수 없어요.”
  • 깜짝 놀란 정희연이 말했다.
  • “그 사람의 행실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작은 오해가 있었는데 이미 풀었습니다.”
  • 무언가 알아챈 송연아는 더 묻지 않았다.
  • “그래요, 그럼 일단 지켜보고 괜찮다 싶으면 경호팀장으로 고용하죠.”
  • 정희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네, 대표님. 말씀 끝나셨으면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 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나윤도는 재수가 없게도 지각을 했다. 그것도 한참 후에 알았다. 오늘 양문수와 그 일행들 때문에 지체된 데에다 차에서 내린 후 늘쩡늘쩡 아침까지 먹고 온 그였다.
  • 볼일을 다 끝내고 보니 30분이나 지각했다.
  • 한낱 직장인에게 30분 지각은 큰 일이었다.
  • 나윤도가 얼른 경호실로 가자 경호팀장도 있었다. 경호팀장인 하 씨는 조영호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나윤도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 “젊은 사람들은 잠이 많다니까. 다음부터는 늦지 말아요.”
  • 나윤도는 얼른 공손하게 말했다.
  • “고맙습니다 형님, 다음부터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 그때, 뒤에서 조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 “하 팀장님 정말 너그러우시네요. 30분이나 지각을 했는데 그 한마디가 끝인가요?”
  • 나윤도가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 딱 붙는 치마를 입은, 무척이나 섹시한 조수연이 있었다.
  • 하지만 조수연의 태도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 나윤도는 그런 조수연의 가슴을 힐끗 쳐다봤다. 분명 어제 일로 그녀에게 미움을 산 게 분명하다 생각하는 그였다.
  • 나윤도는 얼른 손을 비비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 “조 부장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 “당신은 잘릴 준비나 해.”
  • 조수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 하 씨가 얼른 입을 열었다.
  • “조 부장님, 이 사람이 젊어서 아직 뭘 몰라 그럽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죠. 지각은 월급을 깎으면 됩니다.”
  • 나윤도도 거들었다.
  • “그래요, 그래요.”
  • 조수연은 하 씨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 “하 팀장님,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 신인이 지각을 했는데 그냥 넘어가다니요, 이런 상사가 어디 있습니까? 팀장 직을 맡기 싫으신가요?”
  • 하 씨는 작게 직위를 맡고 있지만 그의 나이도 50대가 넘어가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조수연은 송연아가 눈여겨보는 인재였다. 하여 그들은 감히 그녀에게 밉보이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어쩔 줄 모르는 눈빛으로 나윤도를 볼 뿐이었다.
  • 나윤도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조 부장님, 홍보팀 부장께서 왜 저희의 출석을 체크하시는 겁니까. 이건 명백한 월권 아닙니까, 인사팀 일인데 말이죠.”
  • 조희연이 차갑게 대꾸했다.
  • “내가 지금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다는 거야?”
  • 나윤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그 말, 부장 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 조수연은 열 받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낱 경호원이 간이 배밖으로 나왔나.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조수연은 이를 갈며 말했다.
  • “당신 기다려, 내가 지금 인사팀에 갈 거니까.”
  • 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나갔다.
  • 방금 휴게실을 나서는데 뒤에서 나윤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 “기다려요!”
  • 조희연은 속으로 냉소하며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 “이제서야 두려운 가봐? 얼른 빌어. 그래도 봐주지 않을 거지만.”
  • 그녀는 고개를 돌려 수그리는 나윤도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 하지만 나윤도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 “조 부장님, 단추 열렸습니다.”
  • 조수연은 얼른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
  • 나윤도는 이 재밌는 상황을 두고두고 떠올릴 것 같았다.
  • 사납게 구는 조수연이지만 허점이 보였다. 대단한 여자였다. 이것도 여자로서 그녀의 능력이었다.
  • 조수연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얼른 몸을 돌려 단추를 잠갔다.
  • 그때 나윤도가 느긋하게 말했다.
  • “조 부장님, 절 해고하시면 앞으로 괴롭히지 못하실 텐데요? 전 다른데 일자리 알아보면 그만이지만, 여기 있으면 적어도 그쪽이 내 상사인데.”
  • 조수연은 바로 움찔했다.
  • “그래, 고정된 일자리도 아닌데. 안돼, 자르면 안돼. 천천히 괴롭혀야지.”
  • 그 생각을 한 조수연은 고개를 돌려 단호하게 말했다.
  •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야.”
  • 말을 마친 그녀는 복도 쪽으로 가버렸다.
  • 그러다 발을 삐끗한 그녀는 그대로 미끄러졌다.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 매끄러운 대리석으로 된 바닥은 자칫 넘어지면 큰일이었다.
  • 그때, 그녀는 눈 앞에 누군가 스쳐 지나온 걸 발견했다.
  • 그러면서 그의 몸 위로 쓰러졌다.
  • 당연히 나윤도였다. 그녀가 나윤도를 덮치는, 야릇한 자세가 되었다.
  • 원래 나윤도는 조수연을 바로 잡을 생각이었으나, 일을 좀 더 벌리기 위해 바로 누웠던 것이었다.
  • 조수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 나윤도는 당당하게 말했다.
  • “조수연 씨, 전 괜찮습니다. 안 아파요.”
  • 능글맞은 본색이 또 나왔다.
  • 조수연은 도와준 그를 탓하기도 뭐해 그저 매섭게 노려보다 일어났다.
  • 나윤도도 따라서 일어났다. 몸에는 조수연의 향기가 배어 그를 자극했다.
  • 조수연은 급히 자리를 떠났다. 부끄러운 게 분명했다.
  • 허허 웃은 나윤도가 고개를 돌리자 하 씨와 다른 이들이 이 장면을 훔쳐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 하씨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 “나윤도, 이 자식 빠른데? 보기도 전에 바닥으로 누워 버렸어요?”
  • 다른 한 경호원인 이씨가 장난스레 말했다.
  • “윤도형, 조수연 밑에 깔린 느낌이 어때? 부럽네!”
  • 나윤도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 “뒤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 이제 더 이상 아무 말이나 할 수 없다 생각하는 그였다.
  •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웃어 넘겼다.
  • 이 사건은 이대로 넘어갔다.
  • 나윤도는 경호원 유니폼을 바꿔 입고 전기 곤봉을 들어 마구 흔들었다. 도처를 찾아다니며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 LY회사엔 대부분 직원이 여성이었다.
  • 패션 사업을 하는 회사인 만큼 직원들의 옷차림도 무척 예뻤다. 하여 나윤도의 대부분 주의력은 미인들을 보는데 있었다. 어딜 보아도 예쁜 사람들이었다.
  • 걸어 다니는 내내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 두근거렸다.
  • 외국에 있는 동안엔 거친 나날들을 보내다 보니 매일 정신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 나윤도는 이곳으로 돌아온 뒤 보내는 평온한 하루들을 좋아했다. 자유롭고 아무런 속박이 없었다.
  • 오후, 나윤도는 휴게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 그때, 하 씨가 벌컥 문을 열며 모두에게 말했다.
  • “다들 대표실로 가죠.”
  • 나윤도는 움찔했다. 송연아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 전기 곤봉을 챙길 틈도 없이 빠르게 휴게실을 나와 사무실로 달려갔다.
  • 하 씨와 남은 사람들은 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 4층 대표 사무실, 밖에는 조수연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 “왜 그래요, 무슨 일입니까?”
  • 나윤도가 조수연에게 물었다.
  • 그를 본 조수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 그녀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 “경안 그룹의 제윤슬이 부하를 데리고 대표님과 독대하고 있어. 안에 무슨 일이라도 날까 무서워서 불렀어. 혹시나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들어가.”
  • 나윤도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말했다.
  • “대표님 혼자 만나는 겁니까?”
  • 조수연이 말했다.
  • “아니. 마케팅 팀 단예진 본부장과 함께 있어.”
  • 나윤도는 잠깐 생각하다 조수연에게 말했다.
  • “내가 들어가서 대표님 곁에 있을 게야.”
  •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문을 두드렸다.
  • 조수연은 할말을 잃었다. 이 남자는 왜 이리도 무모한 걸까,
  • 안에선 송연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 “누구세요?”
  • 나윤도가 바로 대답했다.
  • “대표님, 경호 팀 나윤도입니다. 조 부장님 분부로 왔습니다. 비즈니스를 논하는데 옆에 시킬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 상황을 지켜보던 조수연도 나섰다.
  • “네, 대표님.”
  • 사무실에 있던 송연아와 단예진은 내심 기뻤다. 제윤슬과 염이안은 너무 오만했다. 두 여자가 기세에 눌리던 찰나 마침 나윤도가 온 것이었다.
  • 송연아는 바로 말했다.
  • “네, 들어와요.”
  •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간 나윤도는 문을 다시 닫았다.
  • 사무실은 무척 넓고 환했고, 제윤슬과 마주보고 있는 송연아의 옆엔 단예진이 있었다. 염이안은 차가운 표정으로 제윤슬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 짙은 화장에 매혹적이게 생긴 제윤슬이 차갑게 말했다.
  • “송 대표님, 제 조건은 같습니다. LY회사와, 당신이 전에 책임졌던 디자인 시안과 저작권 모두 나에게 넘기세요. 100억 드리죠, 그 돈이면 평생 먹고 놀기 충분할 겁니다.”
  • 송연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흥분한 단예진이 먼저 화가 나 말했다.
  • “제 대표님, 저희 회사 연간 이익만 30억이예요. 회사 총 가치는 250억이 넘어가고요. 거기다 저흰 이미 세계적인 회사 아뜰리에와 계약을 한 상태입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시가 가치가 적어도 배로 뛸 텐데, 주식 상장도 가능하게 될 겁니다. 근데, 고작 100억에 사겠다니요, 너무한 것 아닙니까?”
  • 민머리인 염이안은 건장한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는 해빈시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가 차린 흑수 보안업체 회사에 소속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대단했고, 염이안은 그 가운데서도 제왕이라 불리는 사나이였다.
  • 염이안은 단예진을 보고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 “단예진 씨, 대표님들 대화에 그쪽이 끼어들지는 맙시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깝잖아요.”
  • 단예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누가 봐도 분명한 협박을 그녀가 모를리 없었다.
  • 염이안은 다시 송연아를 보며 말했다.
  • “송 대표님, 옛말에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빈해시엔 거물들이 득실거리고,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데, 거기다 여성분이시니 적당히 몸을 사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안 그러면 돈과 목숨 둘 다 잃을 테니까요. 물론, 협박하는 건 아닙니다. 충고를 드리는 겁니다.”
  • 분명한 협박이었다! 계속 침착함을 유지하던 송연아도 여자인지라 무서워졌다.
  • 하지만 빠르게 숨을 가다듬은 그녀가 말했다.
  • “미안하지만, LY회사는 내가 피땀으로 일군 회사입니다. 얼마를 준다고 해조 팔지 않습니다. 전 그래도 법으로 다스리는 한, 함부로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제윤슬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 “송 대표님 아직 소녀시네. 꿈에서 깨지 못했어.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지도 모르고 말이예요.”
  • “이만 가 주세요.”
  • 송연아는 인내심이 바닥이 난 듯 차갑게 말했다.
  • 그러자 제윤슬이 말했다.
  • “송연아 씨, 다시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텐데요?”
  • “그럴 필요 없습니다.”
  • 송연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 제윤슬이 또 뭐라고 하려는데 나윤도가 입을 열었다.
  • “당신들 단체로 귀먹었어? 송 대표님이 이만 가라는데, 왜 아직도 있는 거야.”
  • 그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 송연아와 단예진은 입까지 벌어졌다. 한낱 경호원이 제윤슬과 염이안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다니!
  • 당황한 건 제윤슬과 염이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 정신을 차린 둘은 화가 났다.
  • 제윤슬이나 염이안 둘 다 해빈시에서 알아주는 인물이거늘, 어찌 한낱 경호원에게 모욕을 당하고만 있을까.
  • 제윤슬은 서늘한 눈빛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윤도를 바라보며 염이안에게 말했다.
  • “이안 오빠, 보아하니 손 좀 봐줘야 할 것 같은데.”
  • 염이안도 서늘하게 나윤도를 응시하며 말했다.
  • “그래. 이렇게 면전에다 대놓고 모욕을 주는 사람은 또 오랜만이네.”
  • 나윤도는 코를 슥 만지며 멋쩍게 웃었다.
  •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요. 제가 아직 어려서 뭘 모릅니다.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때리세요!”
  • “이 새끼가!”
  • 염이안은 두 눈에 서늘한 살기를 뿜으며 발을 굴렀고, 그 힘에 매끄러운 대리석 타일에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