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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일월경(静心决)

  • 저녁, 나윤도는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웠다. 먹을 걸 가리지 않는 그는 음식에 대한 요구도 까다롭지 않았다.
  • 이어 그는 물로 대충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일월경(静心决)을 했다.
  • 기를 모아 호흡을 하니 몸 속에 뜨거운 정기가 돌았다.
  • 그 기운이 위 아래로 온 몸을 감싸며 몸 속 장기들을 정화시켰다.
  • 진정한 고수는 골수는 서리처럼, 피는 수은처럼 만드는 것이다!
  • 즉, 골수는 흰색의 서리같이 투명하게, 피는 수은처럼 진득하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 달빛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건 무슨 특별한 환상적인 공법이 아닌, 단순히 몸의 기를 정화시켜주는 수법이었다.
  • 몸의 기를 다스린 후 아침에 일어나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면 수련하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타오를 것이었다.
  • 점심 때, 뜨거운 태양을 따라 수련하는 이의 기도 뜨겁게 살아난다.
  • 저녁이 될 무렵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고, 깊은 밤 무엇보다 고요하게 변한다.
  • 해와 달의 궤도를 따라 마음도 움직이며 우주의 정기를 흡수한다.
  • 일월경(日月静心决)은 유명한 보양 내공이었다.
  • 삶은 기에 따라 움직인다. 기에 살고 기에 죽는다.
  •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은 그 기를 다스린다. 기가 강할수록 사람도 강해지는 것이었다.
  • 1주일의 수련 끝에 나윤도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정신이 무척 또렷하다는 걸 느꼈다.
  • 그리고 수련이 끝났을 때 그의 몸에선 시커먼 땀방울이 흘렀다.
  • 호흡을 통해 그간의 흡수했던 독소들을 모두 배출해내고 정신을 또렷하게 했다.
  • 나윤도와 같은 사람들은 평생 아플 일은 없을 것 같았다.
  • 수련이 끝난 나윤도는 바로 잠에 들었고, 그날 밤 그는 꿈에서 정희연을 만났다.
  • 꿈에서 정희연과 한바탕 뒹굴며 쾌락에 빠졌다.
  • 정희연의 성숙한 몸매는 나윤도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유혹적인 것이었다.
  • 그야말로 성숙한 어른 여자의 유혹이었다.
  • 새벽에 깨난 나윤도는 한숨을 쉬며 속옷을 갈아입었다.
  • 사실 그는 정희연에게 실망했었다. 조그만 여자가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게 싫었다. 어차피 그가 먼저 그녀를 찾아갈 일은 없었다. 이래 봬도 자존심이 꽤나 강한 나윤도였다.
  • 하지만, 이른 아침 정희연에게서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왔다.
  • 나윤도는 전화를 받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 “난 널 건드린 적이 없는데, 나같이 하찮은 사람에게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다 하셨대?”
  • 그 말만 들어도 그녀에 대한 나윤도의 원망을 알 수 있었다.
  • 그럴 만도 했다.
  • 정희연은 다급한 목소리로 작게 애원했다.
  • “나윤도, 우리 아파트로 좀 와.”
  • “싫어!”
  • 나윤도는 단번에 거절했다.
  • “제발 한번만 와. 미안해, 전엔 내가 잘못 했어. 근데 지금 네가 날 구하지 않으면 난 끝장이야.”
  • 정희연이 애원했다.
  • 그녀도 도저히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비굴하게 나윤도를 찾지 않을 것이었다. 전에 그에게 모진 말을 한 것도 후회가 되었다.
  • 나윤도도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닐뿐더러, 더욱이 상대는 정희연이라 그는 하는 수없이 한층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 “무슨 일이야?”
  • 정희연은 나윤도의 말에 그가 도와줄 것을 알고 얼른 말했다.
  • “방금 전남편이 전화 왔는데, 빚 때문에 2천만원을 빌려 달래. 내가 싫다고 하니까 내 몸값을 담보로 넘겨서 날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했어. 그 사람 치졸하고 비열해서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야. 이혼하고 양육비 한번 제대로 준 적 없어. 난 지금 대출도 물어야 하고 딸 유치원도 보내야 해서 돈이 없어. 있다고 해도 그 사람한테 그냥 줄 순 없잖아.”
  • “딸이 있었어?”
  • 나윤도는 문득 호기심에 물었다.
  • “우리 부모님이 봐 주고 계셔. 5살이야.”
  • 정희연이 말했다.
  • 나윤도가 말했다.
  • “알았어. 금방 갈게.”
  • 그도 더 묻지 않았다.
  • 나윤도는 씻고 빠르게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북호 아파트로 향했다.
  • 10분 뒤, 나윤도는 북호 아파트에 도착했다.
  • 주영은 나윤도를 보자 기쁜 듯이 말했다.
  • “윤도 형 출근하는 거야? 그거 모르지, 조영호 여기 그만뒀다?”
  • 나윤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 “사내는 돌아보지 않는 법이지. 좋은데 갔을 거야. 나중에 한잔 하자. 지금은 시간 없어.”
  • 주영이 말했다.
  • “좋아, 나중에 봐.”
  • 그리고 나서 나윤도는 정희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전화를 받은 정희연이 말했다.
  • “알겠어. 금방 내려가.”
  • 얼마 안 지나 정희연이 내려왔다. 검은색 정장 재킷에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유혹적이라 보는 이들이 딴 생각을 품게 했다.
  • 나윤도는 그녀의 상반신의 어느 한 부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정희연!”
  • 나윤도가 불렀다. 이젠 예의를 차리는 호칭도 쓰지 않았다.
  • 정희연은 나윤도를 보고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일단 차부터 가지고, 회사로 가자.”
  • 정희연이 말하자 나윤도가 대꾸했다.
  • “그래. 근데 난 먼저 내려야 겠어. 혹시나 대표님이 보시면 또 내가 너에게 들이댄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니까.”
  • “미안해.”
  • 정희연이 말했다.
  • “어젠 내가 지나쳤어.”
  • 나윤도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됐어. 그렇게 순순히 인정을 하니 이 오빠가 너그럽게 봐 주지. 유치한 너는 앞으로 날 오빠라고 불러, 난 널 ‘희연아’라고 부를 테니까.”
  • 말을 하는 나윤도 본인도 무척 웃겼다.
  • 정희연도 나윤도의 이런 성격에 두 손을 들었다.
  • 둘은 얼른 주차장으로 가 차를 몰고 나왔다.
  • 흰색의 현대 자동차가 북호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 하지만 아파트 대문을 나서기 바쁘게 승합차 한대가 빠르게 달려와 자동차 앞을 가로 막았다.
  • 곧 이어 차에선 검은색 셔츠를 입은 건장한 남자 3명과, 마른 몸을 가진 잘생긴 남자 한명이 내렸다. 안경을 쓴 그 남자는 무척 점잖아 보였는데, 그 남자가 바로 정희연의 전 남편, 양문수였다.
  • 그 모습을 본 정희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나윤도는 당장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정희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 “뭘 무서워해, 내가 있잖아? 오빠라고 부르면 내가 다 해결해 줄게.”
  • 정희연은 나윤도를 힐끗 보고는 긴장하며 말했다.
  • “장난할 때 아니야.”
  • “누가 장난이래. 안 그럼 나 그냥 문 열고 간다?”
  • 나윤도가 말했다.
  • “알았어, 윤도 오빠!”
  • 정희연이 바로 소리쳤다.
  • 나윤도는 히죽 웃었다.
  • 그가 차에서 내리자 정희연도 따라 내렸다. 3명의 건달을 데려온 양문수는 기세가 당당했다.
  • 그가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열려는 찰나, 나윤도가 선수를 쳤다.
  • “이 새끼들이 눈이 삐었나, 운전 똑바로 안 해? 감히 내 앞을 막다니, 죽고 싶어!”
  • 양문수와 그의 일행은 당황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지. 이 자식이 선수를 치다니!
  • 정희연과 나윤도를 번갈아 보던 양문수는 불쾌한 표정으로 차갑게 나윤도를 노려봤다.
  • “너 누구야?”
  • 나윤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넌 누군데 아침부터 내 길을 막아? 무슨 개가 주인도 못 알아보는 것처럼.”
  • 양문수는 화가 났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야. 난 내 와이프 찾으러 온 거야.”
  • “누가 네 와이프야?”
  • 나윤도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물었다.
  • 양문수가 정희연을 가리켰다.
  • “저 여자가 내 와이프야, 왜? 그쪽은 이만 꺼지지?”
  • “젠장!”
  • 나윤도가 말했다.
  • “이혼했잖아? 정희연은 이제 내 여자야. 감히 내 여자의 길을 막아, 정말 죽고 싶어?”
  • 열이 뻗친 양문수는 나윤도를 무시하고 바로 정희연을 향해 말했다.
  • “히야, 정희연 대단한데. 이렇게 빨리 남자를 찾아? 근데 눈이 좀 낮은가 봐? 이 자식, 밤 일도 제대로 못하게 생겼는데?”
  • 말하는 게 참 저속했다.
  • 화가 난 정희연은 씩씩거렸다.
  • “말 가려서 해.”
  • 양문수에게 경고를 날렸다.
  • 양문수는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 “웃기시네. 내 앞에서는 순진한 척하고 뒤에선 어떻게 행동할 지 누가 알아. 됐어, 시끄럽고, 돈이나 내놔.”
  • “뭘 내놔!”
  • 나윤도가 말했다.
  • “내 여자의 돈은 써도 내가 쓰지. 그걸 왜 당신에게 줘.”
  • 이 자식, 기회를 잡아 정희연에게서 돈을 뜯어낼 셈이었다!
  • 이것만 봐도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 나윤도 때문에 열이 받은 양문수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를 내며 말했다.
  • “너 정말 죽고 싶어!”
  •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던 세 사람 중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 “강호 형님, 이 새끼 손 좀 봐 주시죠.”
  • 그 강호 형님이란 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에 있는 남자 둘에게 말했다.
  • “가자!”
  • “네, 형님!”
  • 둘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중 한 명은 바로 손을 뻗어 나윤도의 옷깃을 잡아 옆으로 던지려 했다.
  • 나윤도는 되려 건달의 손목을 잡고 비틀어버렸다.
  • 남성은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또다른 한명은 바로 나윤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거센 바람이 일면서 달려드는 기세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 옆에 있던 정희연도 움찔했다.
  • 나윤도는 가볍게 웃으며 다리걸기 기술을 시전했다. 전갈 마냥 남자의 다리를 감자 중심을 잃은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그 모습을 본 강호라는 자는 다소 멈칫했지만 바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오호라, 보아하니 주먹 좀 쓰는 구나!”
  • 나윤도는 그를 힐끗 보고 말했다.
  • “쓰긴 뭘 써, 안 덤벼?”
  • 강호는 나윤도를 향해 주먹을 쥐고 읍하며 말했다.
  • “강호, 강파 팔극권을 이어받은 몸, 한 수 배우려고 하네.”
  • 말을 하며 그는 몸을 움직였다.
  • 동여뇌정(动如雷霆), 바람처럼 빨리 움직이는 그의 내공은 다른 두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 팔뚝의 핏줄이 뱀처럼 꿈틀대며 무섭게 위협했다.
  • “뭐야, 이 하찮은 건.”
  • 나윤도는 낮게 중얼거리며 강호가 팔극 창술로 자신의 목을 노리며 다가오는 걸 보고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뺨을 갈겼다.
  • 뺨을 때리는 그 동작은 번개처럼 빠르게, 무척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 짜악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힘에 강호는 그 자리에서 뒹굴었다.
  • 강호는 눈 앞에 별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맞은 곳이 얼얼해 정신을 못 차렸다. 한참 뒤 일어난 그의 눈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나윤도를 한번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승합차를 향해 달렸다.
  • 강호는 알았다. 눈 앞의 이 남자는 고수가 분명하다는 걸.
  • 자신 같은 사람들이 감히 덤빌 사람이 아니었다.
  • 강호는 나머지 둘과 함께 얼른 승합차에 올라탔다.
  • 그 모습을 본 양문수도 두려운 마음에 도망쳤다.
  • “거기 서!”
  • 나윤도가 소리쳤다. 장난기 어린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 양문수는 멈칫하면 귀신 보듯 나윤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 “뭐, 뭐하는 거야?”
  • 나윤도가 피식 웃으며 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 “허튼 수작 부리지 마!”
  • 양문수는 당황했다.
  • 나윤도는 양문수의 팔목을 잡고 두둑 꺾어버렸다.
  • “오늘은 이정도로 경고만 하지. 다음에 또 내 여자를 건드리면, 그땐 네 목이 날아갈 거야!”
  • 말을 멈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신고해도 돼. 근데, 신고하면 난 네 사지를 모두 분질러 버릴 거야. 내가 예전에 사람을 좀 죽였거든, 너 하나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 나윤도의 말에는 서늘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 그간의 살인을 저지른 경험으로 내뿜는 살기였다.
  • 순간 겁에 질린 양문수는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모양 빠지게 도망쳤다.
  •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빠른 사람들이었다.
  • 나윤도는 몸을 돌려 정희연에게 웃으며 말했다.
  • “어때, 희연아. 걱정한 건 다 해결됐어? 이게 뭔지 알아? 나쁜 놈은 그보다 더 나쁜 놈이 해결하는 거야.”
  • 정희연도 한결 걱정을 덜었다. 그의 호칭에 대해선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에게 고마웠다. 양문수를 동정하진 않았다.
  • 오늘 나윤도가 아니었으면 험한 꼴을 당했을 거란 걸 잘 알았다.
  • 강호 일행까지 데려온 걸 보면 양문수가 그냥 한 말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 “고마워!”
  • 정희연은 자신의 삶이 참 비굴하다고 생각했다. 양문수 같은 남자가 전 남편이라니. 어렸을 때부터 공주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토록 비참했다.
  • 인사를 건넨 그녀의 눈이 붉어졌다.
  • 그 모습을 본 나윤도는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나윤도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여자의 눈물이었다.
  • “저, 저기 희연아, 내가 좀 심했지?”
  • 나윤도가 말했다.
  • “울지 마. 다음엔 적당히 할게. 응?”
  • 정희연은 눈물을 훔치며 더 말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차에 탔다.
  • “회사로 가자.”
  • 나윤도는 당황스러웠다. 여자의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