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나윤도는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웠다. 먹을 걸 가리지 않는 그는 음식에 대한 요구도 까다롭지 않았다.
이어 그는 물로 대충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일월경(静心决)을 했다.
기를 모아 호흡을 하니 몸 속에 뜨거운 정기가 돌았다.
그 기운이 위 아래로 온 몸을 감싸며 몸 속 장기들을 정화시켰다.
진정한 고수는 골수는 서리처럼, 피는 수은처럼 만드는 것이다!
즉, 골수는 흰색의 서리같이 투명하게, 피는 수은처럼 진득하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달빛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건 무슨 특별한 환상적인 공법이 아닌, 단순히 몸의 기를 정화시켜주는 수법이었다.
몸의 기를 다스린 후 아침에 일어나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면 수련하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타오를 것이었다.
점심 때, 뜨거운 태양을 따라 수련하는 이의 기도 뜨겁게 살아난다.
저녁이 될 무렵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고, 깊은 밤 무엇보다 고요하게 변한다.
해와 달의 궤도를 따라 마음도 움직이며 우주의 정기를 흡수한다.
일월경(日月静心决)은 유명한 보양 내공이었다.
삶은 기에 따라 움직인다. 기에 살고 기에 죽는다.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은 그 기를 다스린다. 기가 강할수록 사람도 강해지는 것이었다.
1주일의 수련 끝에 나윤도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정신이 무척 또렷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수련이 끝났을 때 그의 몸에선 시커먼 땀방울이 흘렀다.
호흡을 통해 그간의 흡수했던 독소들을 모두 배출해내고 정신을 또렷하게 했다.
나윤도와 같은 사람들은 평생 아플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수련이 끝난 나윤도는 바로 잠에 들었고, 그날 밤 그는 꿈에서 정희연을 만났다.
꿈에서 정희연과 한바탕 뒹굴며 쾌락에 빠졌다.
정희연의 성숙한 몸매는 나윤도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유혹적인 것이었다.
그야말로 성숙한 어른 여자의 유혹이었다.
새벽에 깨난 나윤도는 한숨을 쉬며 속옷을 갈아입었다.
사실 그는 정희연에게 실망했었다. 조그만 여자가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게 싫었다. 어차피 그가 먼저 그녀를 찾아갈 일은 없었다. 이래 봬도 자존심이 꽤나 강한 나윤도였다.
하지만, 이른 아침 정희연에게서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왔다.
나윤도는 전화를 받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널 건드린 적이 없는데, 나같이 하찮은 사람에게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다 하셨대?”
그 말만 들어도 그녀에 대한 나윤도의 원망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정희연은 다급한 목소리로 작게 애원했다.
“나윤도, 우리 아파트로 좀 와.”
“싫어!”
나윤도는 단번에 거절했다.
“제발 한번만 와. 미안해, 전엔 내가 잘못 했어. 근데 지금 네가 날 구하지 않으면 난 끝장이야.”
정희연이 애원했다.
그녀도 도저히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비굴하게 나윤도를 찾지 않을 것이었다. 전에 그에게 모진 말을 한 것도 후회가 되었다.
나윤도도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닐뿐더러, 더욱이 상대는 정희연이라 그는 하는 수없이 한층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정희연은 나윤도의 말에 그가 도와줄 것을 알고 얼른 말했다.
“방금 전남편이 전화 왔는데, 빚 때문에 2천만원을 빌려 달래. 내가 싫다고 하니까 내 몸값을 담보로 넘겨서 날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했어. 그 사람 치졸하고 비열해서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야. 이혼하고 양육비 한번 제대로 준 적 없어. 난 지금 대출도 물어야 하고 딸 유치원도 보내야 해서 돈이 없어. 있다고 해도 그 사람한테 그냥 줄 순 없잖아.”
“딸이 있었어?”
나윤도는 문득 호기심에 물었다.
“우리 부모님이 봐 주고 계셔. 5살이야.”
정희연이 말했다.
나윤도가 말했다.
“알았어. 금방 갈게.”
그도 더 묻지 않았다.
나윤도는 씻고 빠르게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북호 아파트로 향했다.
10분 뒤, 나윤도는 북호 아파트에 도착했다.
주영은 나윤도를 보자 기쁜 듯이 말했다.
“윤도 형 출근하는 거야? 그거 모르지, 조영호 여기 그만뒀다?”
나윤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내는 돌아보지 않는 법이지. 좋은데 갔을 거야. 나중에 한잔 하자. 지금은 시간 없어.”
주영이 말했다.
“좋아, 나중에 봐.”
그리고 나서 나윤도는 정희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전화를 받은 정희연이 말했다.
“알겠어. 금방 내려가.”
얼마 안 지나 정희연이 내려왔다. 검은색 정장 재킷에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유혹적이라 보는 이들이 딴 생각을 품게 했다.
나윤도는 그녀의 상반신의 어느 한 부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희연!”
나윤도가 불렀다. 이젠 예의를 차리는 호칭도 쓰지 않았다.
정희연은 나윤도를 보고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단 차부터 가지고, 회사로 가자.”
정희연이 말하자 나윤도가 대꾸했다.
“그래. 근데 난 먼저 내려야 겠어. 혹시나 대표님이 보시면 또 내가 너에게 들이댄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니까.”
“미안해.”
정희연이 말했다.
“어젠 내가 지나쳤어.”
나윤도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어. 그렇게 순순히 인정을 하니 이 오빠가 너그럽게 봐 주지. 유치한 너는 앞으로 날 오빠라고 불러, 난 널 ‘희연아’라고 부를 테니까.”
말을 하는 나윤도 본인도 무척 웃겼다.
정희연도 나윤도의 이런 성격에 두 손을 들었다.
둘은 얼른 주차장으로 가 차를 몰고 나왔다.
흰색의 현대 자동차가 북호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아파트 대문을 나서기 바쁘게 승합차 한대가 빠르게 달려와 자동차 앞을 가로 막았다.
곧 이어 차에선 검은색 셔츠를 입은 건장한 남자 3명과, 마른 몸을 가진 잘생긴 남자 한명이 내렸다. 안경을 쓴 그 남자는 무척 점잖아 보였는데, 그 남자가 바로 정희연의 전 남편, 양문수였다.
그 모습을 본 정희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윤도는 당장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정희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뭘 무서워해, 내가 있잖아? 오빠라고 부르면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정희연은 나윤도를 힐끗 보고는 긴장하며 말했다.
“장난할 때 아니야.”
“누가 장난이래. 안 그럼 나 그냥 문 열고 간다?”
나윤도가 말했다.
“알았어, 윤도 오빠!”
정희연이 바로 소리쳤다.
나윤도는 히죽 웃었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정희연도 따라 내렸다. 3명의 건달을 데려온 양문수는 기세가 당당했다.
그가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열려는 찰나, 나윤도가 선수를 쳤다.
“이 새끼들이 눈이 삐었나, 운전 똑바로 안 해? 감히 내 앞을 막다니, 죽고 싶어!”
양문수와 그의 일행은 당황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지. 이 자식이 선수를 치다니!
정희연과 나윤도를 번갈아 보던 양문수는 불쾌한 표정으로 차갑게 나윤도를 노려봤다.
“너 누구야?”
나윤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넌 누군데 아침부터 내 길을 막아? 무슨 개가 주인도 못 알아보는 것처럼.”
양문수는 화가 났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야. 난 내 와이프 찾으러 온 거야.”
“누가 네 와이프야?”
나윤도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물었다.
양문수가 정희연을 가리켰다.
“저 여자가 내 와이프야, 왜? 그쪽은 이만 꺼지지?”
“젠장!”
나윤도가 말했다.
“이혼했잖아? 정희연은 이제 내 여자야. 감히 내 여자의 길을 막아, 정말 죽고 싶어?”
열이 뻗친 양문수는 나윤도를 무시하고 바로 정희연을 향해 말했다.
“히야, 정희연 대단한데. 이렇게 빨리 남자를 찾아? 근데 눈이 좀 낮은가 봐? 이 자식, 밤 일도 제대로 못하게 생겼는데?”
말하는 게 참 저속했다.
화가 난 정희연은 씩씩거렸다.
“말 가려서 해.”
양문수에게 경고를 날렸다.
양문수는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웃기시네. 내 앞에서는 순진한 척하고 뒤에선 어떻게 행동할 지 누가 알아. 됐어, 시끄럽고, 돈이나 내놔.”
“뭘 내놔!”
나윤도가 말했다.
“내 여자의 돈은 써도 내가 쓰지. 그걸 왜 당신에게 줘.”
이 자식, 기회를 잡아 정희연에게서 돈을 뜯어낼 셈이었다!
이것만 봐도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나윤도 때문에 열이 받은 양문수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를 내며 말했다.
“너 정말 죽고 싶어!”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던 세 사람 중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강호 형님, 이 새끼 손 좀 봐 주시죠.”
그 강호 형님이란 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에 있는 남자 둘에게 말했다.
“가자!”
“네, 형님!”
둘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중 한 명은 바로 손을 뻗어 나윤도의 옷깃을 잡아 옆으로 던지려 했다.
나윤도는 되려 건달의 손목을 잡고 비틀어버렸다.
남성은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또다른 한명은 바로 나윤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거센 바람이 일면서 달려드는 기세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옆에 있던 정희연도 움찔했다.
나윤도는 가볍게 웃으며 다리걸기 기술을 시전했다. 전갈 마냥 남자의 다리를 감자 중심을 잃은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강호라는 자는 다소 멈칫했지만 바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오호라, 보아하니 주먹 좀 쓰는 구나!”
나윤도는 그를 힐끗 보고 말했다.
“쓰긴 뭘 써, 안 덤벼?”
강호는 나윤도를 향해 주먹을 쥐고 읍하며 말했다.
“강호, 강파 팔극권을 이어받은 몸, 한 수 배우려고 하네.”
말을 하며 그는 몸을 움직였다.
동여뇌정(动如雷霆), 바람처럼 빨리 움직이는 그의 내공은 다른 두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팔뚝의 핏줄이 뱀처럼 꿈틀대며 무섭게 위협했다.
“뭐야, 이 하찮은 건.”
나윤도는 낮게 중얼거리며 강호가 팔극 창술로 자신의 목을 노리며 다가오는 걸 보고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뺨을 갈겼다.
뺨을 때리는 그 동작은 번개처럼 빠르게, 무척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짜악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힘에 강호는 그 자리에서 뒹굴었다.
강호는 눈 앞에 별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맞은 곳이 얼얼해 정신을 못 차렸다. 한참 뒤 일어난 그의 눈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나윤도를 한번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승합차를 향해 달렸다.
강호는 알았다. 눈 앞의 이 남자는 고수가 분명하다는 걸.
자신 같은 사람들이 감히 덤빌 사람이 아니었다.
강호는 나머지 둘과 함께 얼른 승합차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본 양문수도 두려운 마음에 도망쳤다.
“거기 서!”
나윤도가 소리쳤다. 장난기 어린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양문수는 멈칫하면 귀신 보듯 나윤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뭐하는 거야?”
나윤도가 피식 웃으며 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
양문수는 당황했다.
나윤도는 양문수의 팔목을 잡고 두둑 꺾어버렸다.
“오늘은 이정도로 경고만 하지. 다음에 또 내 여자를 건드리면, 그땐 네 목이 날아갈 거야!”
말을 멈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고해도 돼. 근데, 신고하면 난 네 사지를 모두 분질러 버릴 거야. 내가 예전에 사람을 좀 죽였거든, 너 하나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윤도의 말에는 서늘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간의 살인을 저지른 경험으로 내뿜는 살기였다.
순간 겁에 질린 양문수는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모양 빠지게 도망쳤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빠른 사람들이었다.
나윤도는 몸을 돌려 정희연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희연아. 걱정한 건 다 해결됐어? 이게 뭔지 알아? 나쁜 놈은 그보다 더 나쁜 놈이 해결하는 거야.”
정희연도 한결 걱정을 덜었다. 그의 호칭에 대해선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에게 고마웠다. 양문수를 동정하진 않았다.
오늘 나윤도가 아니었으면 험한 꼴을 당했을 거란 걸 잘 알았다.
강호 일행까지 데려온 걸 보면 양문수가 그냥 한 말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고마워!”
정희연은 자신의 삶이 참 비굴하다고 생각했다. 양문수 같은 남자가 전 남편이라니. 어렸을 때부터 공주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토록 비참했다.
인사를 건넨 그녀의 눈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나윤도는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나윤도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여자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