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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칼자루의 피를 핥다

  • 나윤도가 말했다.
  • “네가 물어봐!”
  •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오랜 시간 동안 찾아다녔던 송연아를 드디어 찾을 수 있게 되었다.
  • 임아정이 입을 열었다.
  • “비록 네가 말한 모든 것이 일리가 있고 믿을만하지만 어떻게 해야 네가 송연아를 죽이러 온 킬러가 아니란 걸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 나윤도는 저도 모르게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 “첫째, 나는 킬러가 아니야. 킬러들이랑 우리는 아주 큰 구별이 있어. 둘째, 나는 절대 국내에서 활동하지 않아. 가장 중요한 셋째. 나 아주 비싼 몸이야. 송연아처럼 평범한 여자를 제거하는데 내가 나설 필요가 없어.”
  • “그럼 너의 손에 죽은 사람은 대체 몇 명인 거야?”
  • 임아정의 질문에 나윤도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 “그건 내가 송연아를 찾는 일이랑 아무 상관이 없지 않아?”
  • “만약에 대답을 안 하면 나도 그쪽이랑 해 줄 말이 없어.”
  • 그녀도 호기심이 활활 타올랐다.
  • 나윤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임아정의 이 비장의 카드는 언제나 효과적이었다.
  •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나 진짜 기억이 잘 안 나.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하나하나 기록하겠냐?”
  • 임아정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의 기분은 극도로 복잡해졌다.
  •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너 밤에 악몽은 안 꾸냐?”
  • “그게 내 직업이야. 그 전장에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죽여. 네 뜻은 거기서 내가 그놈들이랑 시비를 따지고 말로 해결하라 이건가? 저번에 반란군이 정부군에 패배해서 물러 간 후에 말이야, 넌 못 봤겠지만 그 반란군 놈들 지나가다 마을만 보이면 들어가서 마을을 겁탈하고 사람들을 학살했어. 그때 그 마을, 반란군들이 수전을 지뢰밭으로 만들고 무고한 백성들을 그 안에서 지나다니게 했어. 한번 지나서 죽지 않으면 두 번을 걷게 하고. 이게 반란군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야. 그놈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서 마을 어구에 걸어놓고 시체는 멧돼지 먹이로 만들고 여자들은 강제로 군기로 잡아갔어. 그 참혹한 장면들은 전에 우리가 겪었던 대학살에 못지않게 잔인했어. 그리고 이 사건은 불과 3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야. 그때 당사국이랑 유엔에서 반란군들에 책임을 추궁한 적이 있었어.”
  • “그때 당시 내 기억에는 우리가 반란군의 두목을 죽여라는 정부군의 의뢰와 돈을 받았었었어. 그때 나는 조용히 제일 높은 곳에 잠복해서 병사 몇을 죽이고 번개 78호를 뺐았어. 그 총은 16000연발총이야. 그 한차례 전역에서 나는 60명 이상을 죽였어.”
  •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악몽을 꾸진 않냐고? 처음에는 수도 없이 꾸었는데 그 뒤로는 익숙해졌는지 안 꾸게 되더라고.”
  • 임아정은 믿기 어렵다는 듯 나윤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지금 같은 현대화한 세상에 나윤도 같은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 “그럼 너는 송연아를 만나서 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녀는 지금 잘 지내. 내 생각에는 네가 이런 과거를 가지고 그녀와 엮인다면 그녀에게 좋은 점이 없을 거 같아.”
  • “넌 절대 몰라. 나랑 성빈이는 원쑤가 많아. 그리고 나는 성빈이가 죽은 뒤로 누군가 송연아를 찾아와 괴롭힐 거 같아 걱정이 돼. 전에 나랑 성빈이가 있을 때는 누구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너도 걱정 하지마. 나 송연아랑 직접 만나지는 않을 거야. 그냥 안 보이는 곳에서 지켜줄 거야. 그녀가 안전하다고 확신이 들면 그때는 말 안 해도 떠나.”
  • 임아정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 “나 지금 너한테 이 일을 알려주는 게 잘한 일 인지는 모르겠지만 음, 널 한 번만 믿어볼게.”
  • 나윤도는 표정이 환해졌다.
  • “진짜 고마워.”
  • 임아정은 바로 송연아에 관한 일부 자료를 나윤도에게 건네주었다. 나윤도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날라리 같은 성격으로 돌아왔다.
  • 이를 본 임아정은 궁금증이 가시질 않았다.
  • “나윤도, 나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어.”
  • “말해봐.”
  • 나윤도가 바로 답했다.
  • “너처럼 칼날 위의 피를 핥는 사람은 트라우마가 없다 해도 적어도 냉혈하고 인정머리가 없고 사람들이랑 말을 잘 섞지 않잖아. 그 TV에 나오는 냉혈한들처럼 말이야, 평소에는 얼음장같다가 관건적일 때 대폭발하는 거. 근데 너는 왜 이렇게 날라리 한량 같아?”
  • 나윤도는 순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되었다.
  • “미안하다. 내가 드라마랑 달라서 널 실망시켰어.”
  • 임아정은 아연실색했다.
  • “너 진짜 트라우마 아예 없어?”
  • 나윤도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답했다.
  • “마음에 찔리는 구석이 없는데 왜 불안해해야 하는 거지?
  • 그는 잔잔하게 말했다.
  • 임아정은 바로 답했다.
  • “그래, 그만 가봐. 이번에 경찰 습격한 사건은 그냥 없던 거로 하자. 하지만 경고하는데 다음에는 이렇게 막 성질내고 막무가내로 사고 치지 마. 안 그럼 내가 너 잡으러 가야 돼.”
  •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마.”
  • 그날 밤 나윤도와 정희연은 경찰서를 떠났다.
  • 두 사람이 떠난 후 임아정 곁에 있던 남자 경찰이 물었다.
  • “임 팀장님, 그냥 이대로 풀어줘요?”
  • 임아정이 말했다.
  • “저 사람 국내에서는 진짜 결백해. 우리가 잡을 이유가 없어. 비록 오늘 한 짓은 과분했지만 그의 성격이 그런 걸 어떡해.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자, 우리. 아니면 작은 일도 수습불가 지경이 될 수 있어. 나윤도 저 사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 무서운 사람이야. 제발 선 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기를 기도해야지.”
  • “아니면 윗선에 보고할까요?”
  • “뭘 보고하는데?”
  • 임아정이 말했다.
  • “오늘 우리가 속임수에 넘어가서 쩔쩔맸는데, 이걸 말한다고? 수치스럽지 않아?”
  • 남자 경찰도 임아정의 뜻을 이해하고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 사실상, 임아정의 마음은 나윤도에게로 기울어졌다.
  • 나윤도의 과거랑 실력이 무섭고 그의 경력이 어마어마해서가 아니라 그의 눈부신 의리에서 그녀는 나윤도가 송성빈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 그 뜨거운 감정이 있어서 이 남자가 거리가 멀던지를 막론하고 달려올 수가 있었다. 송연아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경호원이라도 할 사람이 나윤도였다.
  • 임아정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진짜 사나이를 존경하고 있었다.
  • 이때 나윤도와 정희연은 택시를 타고 북호 아파트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 돌아가는 길 내내 정희연은 말이 없었다.
  •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후 정희연은 나윤도를 향해 어색한 듯 말을 걸었다.
  • “윤도야, 그… 내가 보기엔 네 성격이 우리 회사랑 안 맞을 거 같아. 넌 너무 충동적이야. 오늘 내가 했던 말 있잖아, 너보고 팀장 해라 했던 말… 그냥 없었던 일로 해주면 안될까?”
  • 정희연이 용기를 북돋아서 한 말이었다.
  • 나윤도는 잠시 멈칫하고 정희연을 한눈 보았다. 이 순간 그의 눈에 스친 것은 분명 실망이었다. 다른 일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그냥 정희연에 대한 실망이었다.
  • 이 여자도 결국에는 그냥 평범한 보통의 여자였다.
  • 나윤도는 잠시 침묵하고 환히 웃었다.
  • “응, 알겠어. 괜찮아.”
  • 정희연이 말했다.
  • “안녕, 잘 가.”
  • “잘 가.”
  •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 정희연은 멀어져 가는 나윤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거처럼, 무언가를 잃은 것처럼 말이다.
  • 이 남자의 신임과 믿음을 잃은 거겠지?
  • 정희연은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뭐 신경 쓰지 말자, 나윤도는 시한폭탄과 비슷한 존재라서 멀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