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오랜 시간 동안 찾아다녔던 송연아를 드디어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임아정이 입을 열었다.
“비록 네가 말한 모든 것이 일리가 있고 믿을만하지만 어떻게 해야 네가 송연아를 죽이러 온 킬러가 아니란 걸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나윤도는 저도 모르게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첫째, 나는 킬러가 아니야. 킬러들이랑 우리는 아주 큰 구별이 있어. 둘째, 나는 절대 국내에서 활동하지 않아. 가장 중요한 셋째. 나 아주 비싼 몸이야. 송연아처럼 평범한 여자를 제거하는데 내가 나설 필요가 없어.”
“그럼 너의 손에 죽은 사람은 대체 몇 명인 거야?”
임아정의 질문에 나윤도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건 내가 송연아를 찾는 일이랑 아무 상관이 없지 않아?”
“만약에 대답을 안 하면 나도 그쪽이랑 해 줄 말이 없어.”
그녀도 호기심이 활활 타올랐다.
나윤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임아정의 이 비장의 카드는 언제나 효과적이었다.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나 진짜 기억이 잘 안 나.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하나하나 기록하겠냐?”
임아정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의 기분은 극도로 복잡해졌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너 밤에 악몽은 안 꾸냐?”
“그게 내 직업이야. 그 전장에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죽여. 네 뜻은 거기서 내가 그놈들이랑 시비를 따지고 말로 해결하라 이건가? 저번에 반란군이 정부군에 패배해서 물러 간 후에 말이야, 넌 못 봤겠지만 그 반란군 놈들 지나가다 마을만 보이면 들어가서 마을을 겁탈하고 사람들을 학살했어. 그때 그 마을, 반란군들이 수전을 지뢰밭으로 만들고 무고한 백성들을 그 안에서 지나다니게 했어. 한번 지나서 죽지 않으면 두 번을 걷게 하고. 이게 반란군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야. 그놈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서 마을 어구에 걸어놓고 시체는 멧돼지 먹이로 만들고 여자들은 강제로 군기로 잡아갔어. 그 참혹한 장면들은 전에 우리가 겪었던 대학살에 못지않게 잔인했어. 그리고 이 사건은 불과 3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야. 그때 당사국이랑 유엔에서 반란군들에 책임을 추궁한 적이 있었어.”
“그때 당시 내 기억에는 우리가 반란군의 두목을 죽여라는 정부군의 의뢰와 돈을 받았었었어. 그때 나는 조용히 제일 높은 곳에 잠복해서 병사 몇을 죽이고 번개 78호를 뺐았어. 그 총은 16000연발총이야. 그 한차례 전역에서 나는 60명 이상을 죽였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악몽을 꾸진 않냐고? 처음에는 수도 없이 꾸었는데 그 뒤로는 익숙해졌는지 안 꾸게 되더라고.”
임아정은 믿기 어렵다는 듯 나윤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지금 같은 현대화한 세상에 나윤도 같은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럼 너는 송연아를 만나서 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녀는 지금 잘 지내. 내 생각에는 네가 이런 과거를 가지고 그녀와 엮인다면 그녀에게 좋은 점이 없을 거 같아.”
“넌 절대 몰라. 나랑 성빈이는 원쑤가 많아. 그리고 나는 성빈이가 죽은 뒤로 누군가 송연아를 찾아와 괴롭힐 거 같아 걱정이 돼. 전에 나랑 성빈이가 있을 때는 누구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너도 걱정 하지마. 나 송연아랑 직접 만나지는 않을 거야. 그냥 안 보이는 곳에서 지켜줄 거야. 그녀가 안전하다고 확신이 들면 그때는 말 안 해도 떠나.”
임아정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나 지금 너한테 이 일을 알려주는 게 잘한 일 인지는 모르겠지만 음, 널 한 번만 믿어볼게.”
나윤도는 표정이 환해졌다.
“진짜 고마워.”
임아정은 바로 송연아에 관한 일부 자료를 나윤도에게 건네주었다. 나윤도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날라리 같은 성격으로 돌아왔다.
이를 본 임아정은 궁금증이 가시질 않았다.
“나윤도, 나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어.”
“말해봐.”
나윤도가 바로 답했다.
“너처럼 칼날 위의 피를 핥는 사람은 트라우마가 없다 해도 적어도 냉혈하고 인정머리가 없고 사람들이랑 말을 잘 섞지 않잖아. 그 TV에 나오는 냉혈한들처럼 말이야, 평소에는 얼음장같다가 관건적일 때 대폭발하는 거. 근데 너는 왜 이렇게 날라리 한량 같아?”
나윤도는 순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되었다.
“미안하다. 내가 드라마랑 달라서 널 실망시켰어.”
임아정은 아연실색했다.
“너 진짜 트라우마 아예 없어?”
나윤도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답했다.
“마음에 찔리는 구석이 없는데 왜 불안해해야 하는 거지?
그는 잔잔하게 말했다.
임아정은 바로 답했다.
“그래, 그만 가봐. 이번에 경찰 습격한 사건은 그냥 없던 거로 하자. 하지만 경고하는데 다음에는 이렇게 막 성질내고 막무가내로 사고 치지 마. 안 그럼 내가 너 잡으러 가야 돼.”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날 밤 나윤도와 정희연은 경찰서를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임아정 곁에 있던 남자 경찰이 물었다.
“임 팀장님, 그냥 이대로 풀어줘요?”
임아정이 말했다.
“저 사람 국내에서는 진짜 결백해. 우리가 잡을 이유가 없어. 비록 오늘 한 짓은 과분했지만 그의 성격이 그런 걸 어떡해.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자, 우리. 아니면 작은 일도 수습불가 지경이 될 수 있어. 나윤도 저 사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 무서운 사람이야. 제발 선 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기를 기도해야지.”
“아니면 윗선에 보고할까요?”
“뭘 보고하는데?”
임아정이 말했다.
“오늘 우리가 속임수에 넘어가서 쩔쩔맸는데, 이걸 말한다고? 수치스럽지 않아?”
남자 경찰도 임아정의 뜻을 이해하고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임아정의 마음은 나윤도에게로 기울어졌다.
나윤도의 과거랑 실력이 무섭고 그의 경력이 어마어마해서가 아니라 그의 눈부신 의리에서 그녀는 나윤도가 송성빈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뜨거운 감정이 있어서 이 남자가 거리가 멀던지를 막론하고 달려올 수가 있었다. 송연아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경호원이라도 할 사람이 나윤도였다.
임아정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진짜 사나이를 존경하고 있었다.
이때 나윤도와 정희연은 택시를 타고 북호 아파트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돌아가는 길 내내 정희연은 말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후 정희연은 나윤도를 향해 어색한 듯 말을 걸었다.
“윤도야, 그… 내가 보기엔 네 성격이 우리 회사랑 안 맞을 거 같아. 넌 너무 충동적이야. 오늘 내가 했던 말 있잖아, 너보고 팀장 해라 했던 말… 그냥 없었던 일로 해주면 안될까?”
정희연이 용기를 북돋아서 한 말이었다.
나윤도는 잠시 멈칫하고 정희연을 한눈 보았다. 이 순간 그의 눈에 스친 것은 분명 실망이었다. 다른 일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그냥 정희연에 대한 실망이었다.
이 여자도 결국에는 그냥 평범한 보통의 여자였다.
나윤도는 잠시 침묵하고 환히 웃었다.
“응, 알겠어. 괜찮아.”
정희연이 말했다.
“안녕, 잘 가.”
“잘 가.”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정희연은 멀어져 가는 나윤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거처럼, 무언가를 잃은 것처럼 말이다.
이 남자의 신임과 믿음을 잃은 거겠지?
정희연은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뭐 신경 쓰지 말자, 나윤도는 시한폭탄과 비슷한 존재라서 멀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