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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누나라고 불러

  • 나윤도는 씩 웃으며 말했다.
  • “재능을 썩힌다고 할 것까진 없어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잖아요. 저는 여기서 자유로워요.”
  • 아파트 단지의 경호원은 확실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서로 신경전을 벌이지도 않았고 매일 순서대로 당직을 서고 가끔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하면 됐으니까.
  • 유일한 단점은 당직을 설 때 모든 층을 점검해야 하는데 때로는 베터랑 경호원들이 신입 경호원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크게 비난할 수는 없었다. 신입이 아닌 노인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 정희연은 살짝 멈칫했다. 그녀는 나윤도가 정말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신조차도 그를 꿰뚫어볼 수 없었으니까.
  • 십오 분 정도 지나자 경찰이 도착했다.
  • 경찰은 두 괴한을 깨우고 바로 연행했다.
  • 연행되어 갈 때 그중의 한 명이 나윤도를 향해 으스스하게 말했다.
  • “새끼, 쓸데없는 일에 참견했겠다. 내가 똑똑히 기억했어.”
  • 그 말에 정희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나윤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 “지랄하지 마. 너 같은 새끼들이 감히 날 위협할 수 있겠어?”
  • 그 괴한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 나윤도는 정말 저런 사람들을 적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 두 괴한이 연행되는 한편, 나윤도와 정희연도 파출소에 가서 조사에 협조해야 했다.
  • 파출소에 간 두 사람은 두 시간 동안 증언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그들은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경찰은 앞으로 몇 번 더 귀찮아질 수 있을 거라고 귀띔했다.
  • 파출소를 나왔을 때는 새벽 한 시였다.
  • 마침 달이 두둥실 떠있었다.
  • 이곳은 해빈시다. 해빈시는 해안 도시로 겨울에도 무척 따뜻했는데 여름의 더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 그래서 새벽인데도 공기가 후텁지근했다. 이런 후텁지근함은 남자의 호르몬을 자극해 충동적은 행동을 끌어내기 쉬웠다.
  • 그 두 괴한이 바로 이런 경우다. 사실 그들은 정희연의 전 남편과 친한 사이였다. 늘 정희연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밤 그녀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이다. 성숙하고 섹시한 정희연을 떠올린 그들은 이 무더운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었으리라.
  • 충동은 악마였다!
  • 남자의 욕망은 악마 중의 악마였다.
  • 파출소는 아파트 단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정희연과 나윤도는 걸어서 집으로 갔다.
  • ‘정희연 같은 여자와 결혼한다면 언젠가 정력이 딸려 죽어버릴 거야. 그녀의 전 남편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네. 어떻게 이런 미인과 미련 없이 이혼한 거야.’
  • 그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던 그때, 정희연은 넋이 빠져있었다. 그녀는 두려웠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 나윤도는 바로 정희연이 두려워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했다.
  • “희연 누나, 무서워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지켜드릴게요.”
  • 정희연은 멈칫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차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여자 혼자서 싸우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자신을 지켜준다는 나윤도의 말에 그녀는 가슴이 뭉클했던 것이다.
  • “고마워요.”
  • 정희연이 대꾸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나윤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 나윤도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 “희연 누나처럼 예쁜 미인을 지키는 일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을걸요.”
  • 그는 노골적으로 아부했다!
  • 하지만 정희연은 무척 기쁘게 받아들였다. 칭찬을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까.
  • 남자들도 잘생겼다는 칭찬에 좋아하는데.
  • 하지만 정희연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겸손하게 말했다.
  • “제가 뭘 이뻐요. 다 늙었는데.”
  • 나윤도는 바로 반박했다.
  • “희연 누나가 다 늙은 사람이라면 연예인들은 한강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 나중에 제 와이프가 희연 누나 10분의 1만큼만 예뻐도 엄청 만족할 것 같아요.”
  • 그는 이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말했다.
  • “근데 저는 일개 경호원일 뿐이라 저한테 시집 오려는 여자가 없네요.”
  • 나윤도 덕분에 기분이 풀린 정희연은 그가 주눅이 들어 말하자 바로 위로했다.
  • “그럴 리가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니까 좋은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 나윤도가 대답했다.
  • “네, 희연 누나. 누나 말 들을게요.”
  • 그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자신이 왜 경호원이라는 이유로 열등감을 느끼겠는가. 그는 예전에 해외에서 용병단의 왕으로 군림했다. 그때 천하를 호령했던 대가로 스위스 금고에 1억 달라가 있었다!
  • 그런 그가 어떤 미녀를 보지 못했겠는가?
  • 하지만 지금, 나윤도는 정말 빈털터리였다. 용병단이 해체될 때, 그는 가진 돈을 모두 나눠 가졌던 것이다.
  •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은 금방 단지 앞에 도착했다.
  • 정희연은 이 길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막 이야기가 재밌어지려고 하는데 벌써 단지에 들어섰으니 말이다. 정희연은 나윤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 “번호 줄 수 있어요?”
  • “이제 내 누나인데 당연히 되지.”
  • 반말을 하며 어수룩하게 짓는 그의 미소에, 정희연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녹아내렸다.
  • “그래. 앞으로 넌 내 동생이야.”
  • 두 사람은 서로 번호를 교환하고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 나윤도가 멍하니 서있는데 주영이 바로 달려왔다.
  • “윤도 형, 너무 대단해! 형이 맨몸으로 괴한 두 명을 제압했다며. 와, 이거 완전 영웅서사잖아! 아까 그 여자분이 형을 보는 눈빛도 달라졌어. 애정이 어려있었다고!”
  • 나윤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 “너 눈이 삔 거야? 애정은 무슨, 얼어 죽을 애정.”
  • 주영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 “윤도 형, 그런 디테일한 부분은 신경 쓰지 마. 저 분도 이혼하고 혼자 산다고 들었는데 둘이 잘 되면 형도 이 아파트 주민이 되는 거네. 우리는 다 형을 위해 일하는 거고!”
  • “그런 찌질한 생각 좀 그만해.”
  • 나윤도는 웃으며 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