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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남자는 울지 않는다

  • 임아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그 경찰을 따라 자료실로 들어갔다.
  • 자료실의 컴퓨터 모니터가 송성빈의 신상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송성빈은 1986년생으로 송연아라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두 남매의 부모는 이십 년 전에 교통사고로 모두 숨졌다. 그해, 송성빈은 아홉 살이었고 송연아는 다섯 살이었다.
  • 게다가 사고 당시 승용차 운전자 역시 현장에서 숨져서 그들은 배상금조차 많이 받지 못했다. 나중에 송성빈의 이모부가 두 사람을 키웠는데 그의 이모부는 해빈시의 정치인으로 무척 촉망받는 사람이었다.
  • 이모부 집에서 지내던 그들 남매는 얌전하고 말을 잘 들었다. 그러던 십 년 전, 송성빈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그들 남매와 이모, 그러니까 이모부의 아내가 함께 집에 있었다.
  • 이모의 이름은 황연홍이었고 당시 서른여섯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 황연홍에게는 황준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황준은 극악무도한 놈이었다. 그날 밤, 황준은 황연홍에게 돈을 요구하러 왔다. 그전에 여러 번 돈을 주면서 타일러도 고쳐지지 않자 황연홍은 자신의 동생에게 무척이나 실망했고 돈을 주지 않았다.
  • 하지만 황준은 쌍놈이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머리가 깨지도록 싹싹 빌고 울며불며 애원했다.
  • 하지만 황연홍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결국 화가 난 황준은 황연홍의 목을 조르며 돈을 달라고 협박했다.
  • 황준 그 쌍놈은 칼까지 들고 왔는데 진작부터 계획된 행동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 황연홍은 그대로 멍해졌다. 송성빈은 열여덟 살 청년이었지만 황준을 말리다가 오히려 그의 칼에 손을 다쳤다.
  • 깜짝 놀란 송연아가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 황준은 송연아가 신고하는 것을 보고 그 아이를 죽이려고 했다.
  • 다급해진 송성빈은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식칼을 뽑아들었다. 그는 이내 황준의 목 동맥을 찔렀고 황준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 황준은 죽었지만 이번 사고는 정당방위로 마무리되어야 했다.
  • 하지만 황연홍의 부모가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황연홍은 부모님의 자존심 때문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 당시 황연홍의 부모는 살인범 송성빈을 엄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 황연홍과 그녀의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송성빈을 해외에 보냈다.
  • 그리고 경찰에서는 곧 수배령을 내렸다.
  • 하지만 임아정이 보고 있는 자료에는 그렇게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자료에는 사건 발생 날짜와 황연홍과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황준이 황연홍을 찾아와 돈을 달라고 했고 나중에 송성빈이 황준을 죽이고 해외로 도주했다는 정도로만 적혀있었다.
  • 사건에 대한 더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 임아정은 당연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부 집에서 지내는 송성빈이 황준을 죽일만한 동기가 없었으니까!
  • 그래서 임아정은 다시 나윤도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당시의 상황을 낱낱이 설명했다.
  • 그 말을 들은 임아정은 저도 모르게 흥분했다.
  • “그럼 황연홍도 인간이 아니네!”
  • 나윤도는 덤덤하게 말했다.
  • “어쨌든 황준은 그 사람 동생이잖아. 핏줄은 영원히 버릴 수 없는 거야. 더군다나 황준이 성빈이의 동생을 죽이려고 했잖아. 성빈이는 자기 여동생을 지키려다 살인을 한 거니까, 황연홍도 그 아이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 그는 잠깐 멈췄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
  • “나중에 성빈이가 도망칠 때, 자신의 여동생을 잘 키워주겠다는 이모부의 약속을 받아냈어. 솔직히 말해서 성빈이는 늘 이모부에게 고마워했어. 그 아이의 이모부는 정말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었어. 그저 청렴한 관리라 하더라도 집안일을 잘 처리하기는 어려웠을 뿐이지.”
  • 나윤도가 진지하게 말하자 임아정은 그가 차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임아정은 이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 “그럼 바로 송성빈의 이모부를 찾으면 되잖아. 그럼 송연아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거 아니야?”
  • 나윤도가 말했다.
  • “성빈이 이모부의 성함을 몰라. 성빈이가 늘 이모부라고 불렀고 그 사람의 이름에 굳이 관심 갖지 않았어. 나중에 성빈이가 그 자리에서 죽어버려서 물어볼 기회조차 없었고. 내가 유일하게 아는 정보는 송연아가 나중에 다시 고풍로에 돌아갔다는 거야. 원래 살던 곳으로.”
  • 임아정이 말했다.
  • “그거야 이해가 가. 송성빈이 황연홍의 동생을 죽였는데 송성빈의 동생인 송연아가 계속 같이 살기는 좀 그렇지.”
  • 나윤도가 말했다.
  • “그래서 내가 지금 송연아를 찾는 일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야.”
  • 임아정이 말했다.
  • “너 대신 찾아줄 수는 있어.”
  • 나윤도가 말했다.
  • “그럼 정말 고맙지.”
  • 임아정이 대꾸했다.
  • “너한테 알려준다는 약속은 한 적 없어.”
  •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아직 나한테 대답해야 할 질문이 몇 개 남았어.”
  • 나윤도는 정색하며 말했다.
  • “송연아의 행방에 대해 알려준다면 몇 개가 아니라 백 개라도 대답해 줄게.”
  • 그는 이 일에서만큼은 진지했다!
  • 임아정이 말했다.
  • “송성빈의 이모부는 그 사람을 해외에 보내고 잘 지내게 해준 거 아니었어? 왜 너희들이랑 어울려 다니게 된 거야? 게다가 살인을 하면서? 그럼 네가 송성빈을 해친 거 아니야? 송연아가 그걸 알게 된다면 널 죽도록 증오하지 않을까?”
  • “날 증오한다고?”
  • 나윤도가 말했다.
  • “내가 송연아한테 미안한 이유는 송성빈이 나를 구하다 죽어서야. 성빈이가 나를 따라온 건 예기치 못한 일이었어. 그때 성빈이가 남미의 한 작은 나라에서 누군가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진작에 죽어버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성빈이는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길거리를 떠돌다가 날 만난 거야. 성빈이는 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날 떠나지 않았고. 나도 별 수 없었지. 그래서 나랑 다니면 아무 때나 살인을 할지도 모른다고, 그럴 수 있냐고 물었는데 하겠다고 했어.”
  • 임아정이 말했다.
  • “그럼 송성빈의 이모부도 믿음직하지 못한데.”
  • 나윤도 말했다.
  • “그러게 말이야. 나중에 송성빈은 나를 따라서 기술을 배웠고 지금까지 우리는 늘 함께였어.”
  • 그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 “그때 사고만 아니었으면 성빈이는 살아있었을 텐데. 성빈이는 늘 돌아와서 여동생을 보고 싶어 했어.”
  • 그는 그렇게 말하며 사진 몇 장을 꺼냈다.
  • 임아정은 흥미로운 듯 건네받았다.
  • 사진에는 위장복을 입은 나윤도와 다른 한 청년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 사진이 찍힌 곳은 수풀이었다.
  • 나머지 사진에는 훌륭한 차와 미녀들이 있었다. 그들은 럭셔리한 페라리 스포츠카를 타고 있었다.
  • 임아정은 그 사진들에서 밥을 먹을 때나 여자와 놀 때나 싸움을 할 때나, 나윤도와 송성빈은 꼭 붙어 다녔다는 것을 보아냈다. 정말 죽마고우였다!
  • 송성빈은 어른이 되었지만 수배령에서 보았던 사진과 비교하면 닮은 구석이 많았다.
  • 임아정은 말없이 사진을 돌려주었다. 나윤도는 고개를 돌렸다. 불같은 성격의 그 자식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피로 맹세한 그 우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 다른 사람의 총알을 서슴없이 막는 건, 그건 어떤 감정으로 한 일일까.
  • 나윤도는 곧바로 눈물을 훔치고 사진을 넣었다. 그는 조금 민망한듯했다.
  • 그러자 임아정이 말했다.
  • “송연아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어. 하지만 아직 하나 더 대답해야 할 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난 신중할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