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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예쁜 이혼녀

  • 나윤도는 그 아름다운 젊은 부인을 보았다. 그녀의 이름이 정희연이라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 정희연은 보라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손발을 꽁꽁 묶인 상태였는데 입까지 테이프로 막혀있었다.
  • 나윤도가 온 것을 본 정희연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스쳤다. 그녀는 나윤도를 알고 있었다. 그가 오기 전, 그녀는 완전히 체념해 있었다. 그녀가 마침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서 티비를 보는데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그들 괴한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돈과 그녀를 달라고 했다. 재물을 갈취하고 성추행을 하려던 거였다.
  • 단순한 강도라면 정희연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파렴치한 자식들에게 유린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 꽁꽁 묶인 정희연을 침대 위에 올린 그들은 함께 그녀를 희롱하려고 했다. 정희연은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절망하고 있던 바로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 정희연은 이제 나윤도를 똑똑히 보았다. 안면이 있는 나윤도를 본 순간, 정희연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전장에서 아군을 봤을 때보다 더 흥분되었다.
  • 정희연은 평소부터 나윤도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나윤도는 일개 경호원일 뿐이었지만 그의 분위기는 다른 경호원들과 사뭇 달랐다. 그에게는 시크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이 있었는데 집시처럼 그를 얽맬 수 있는 속세의 물건이 없을 것 같았다.
  • 지금 이 순간, 나윤도의 등장은 정희연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 “괜찮으시죠?”
  • 나윤도는 등을 돌린 채 물었다.
  • 정희연은 그제서야 자신의 행색을 떠올렸고 이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전 괜찮아요.”
  • 나윤도는 말을 이었다.
  • “괜찮으면 됐어요. 그럼 신고하러 갈게요.”
  • 정희연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 “잠깐만요!”
  • 나윤도가 멈춰 섰다.
  • “왜요?”
  • 정희연은 나윤도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나윤도가 계속 등을 돌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호감이 급증했다. 나윤도가 성실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바로 이렇게 말했다.
  • “우선 밧줄부터 풀어줄래요?”
  • 경찰이 와서 초라한 그녀의 꼴을 본다면 사람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럼 차라리 혀 깨물고 죽어버리자, 정희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 “아, 네!”
  • 나윤도가 말했다.
  • “눈 좀 감고 해줄래요?”
  • 정희연은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 나윤도는 이 상황이 우스웠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내 정희연의 옆으로 다가왔다.
  • “아, 거기가 아니에요.”
  • 얼굴에 피가 날 정도로 새빨개진 정희연이 서둘러 주의를 주었다.
  • 나윤도는 남몰래 쾌재를 불렀다. 그는 사실 건들건들한 성격으로 미인 앞에서는 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만 그는 정희연에게 조금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짐짓 진지한 척했다.
  • 그런데 정희연이 그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으니 어떻게 사양할 수 있겠는가.
  • 물론 나윤도는 분수가 있었다. 딱 정희연이 의심하지 않을 만큼만 즐겼다.
  • 정희연은 무척 후회하고 있었다. 이럴 거면 나윤도한테 눈을 뜨고 밧줄을 풀어달라고 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어차피 그가 이미 다 보았는데.
  • 드디어 나윤도가 정희연을 묶고 있던 모든 밧줄을 풀었다.
  • “전 나갈 테니까 옷 갈아입으세요!”
  • 나윤도가 말을 이었다.
  • 정희연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방 밖으로 나간 나윤도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 정희연도 오 분 뒤에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는 허리 라인을 강조하는 블랙 원피스를 입었다.
  • 정희연은 참으로 요망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옷차림도 품위 있었다.
  • 순간 멍해진 나윤도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 “너무 아름다워요.”
  • 정희연은 기분이 좋았다. 여자들은 다들 이런 칭찬을 제법 좋아하니까. 그녀는 이내 바닥에 쓰러진 두 괴한을 보았다. 그 순간, 정희연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나윤도를 보며 말했다.
  • “당신이 이 사람들을 쓰러뜨린 거예요?”
  • 나윤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퍽 자랑스럽게 말했다.
  • “당연히 저죠. 알아서 기절하진 않았을 거잖아요.”
  • 정희연이 바로 물었다.
  • “직업 군인이셨어요?”
  • 나윤도는 조금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정희연의 가슴 쪽을 힐끔거렸다. 그녀가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 시선을 느낀 정희연은 조금 화가 난 듯 얼굴을 붉혔다.
  • 나윤도가 말했다.
  • “네, 군인이었어요. 저 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열 명이 더 와도 식은 죽 먹기예요.”
  • 정희연은 저도 모르게 피식했다. 그저 저 자식이 허풍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윤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겸손하게 얘기한 것이다. 이런 레벨의 사람들은 백 명이 같이 달려들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 “전 정희연이라고 해요.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이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거예요.”
  • 정희연은 정식으로 뽀얀 손을 내밀며 나윤도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 나윤도 역시 서둘러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전 나윤도라고 해요. 저희 아파트 단지의 경호원이죠.”
  • 그는 가볍게 악수를 하고는 바로 손을 놓았다.
  • 미인의 살결을 만지는 일은 봄비처럼 소리 없이 느껴야 했다. 너무 노골적이면 미움을 산다는 점은 나윤도도 잘 알고 있었다.
  • 방금 전 일 때문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정희연은 이렇게 말했다.
  • “저희 단지에 당신처럼 몸놀림이 빠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재능을 썩히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