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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약속

  • 차은우가 자신의 마이바흐에 시동을 걸자 채연은 안전벨트를 매고 피곤한 듯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 그렇게 외제차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등을 제치고 도로를 질주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채연은 차은우에게 세 가지 약속을 부탁했다.
  • “일단 나는 차은우 씨 방에서 자야 하니까 차은우 씨는 다른 방으로 가서 자요. 그래야 할머니도 의심을 안 하죠.”
  • 차은우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을 차창에 올려놓은 채 여유롭게 운전하고 있었다.
  • 그가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 “당신 뭐가 걱정이야? 당신 몸매? 정말 내가 당신한테 관심을 가질 거라 생각해?”
  • 그 말을 들은 채연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가슴에 눈길이 갔다.
  • ‘내 몸매가 어때서? 대한민국 평균 사이즈 이상이라고!’
  • 그는 그녀의 눈길을 따라 무심한 듯 힐끗 보았다.
  • 따뜻한 네온등이 그녀를 비추며 요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그녀는 나른한 표정으로 좌석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자세 때문에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의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게다가 한 손에 들어올 것 같이 가는 허리까지 욕구를 자극하는 완벽한 몸매라고 말할 수 있었다.
  • 차은우는 저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며 헛기침을 했다.
  • “흠흠.”
  • 채연은 그의 비아냥거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 계속해서 말했다.
  • “두 번째, 내 자유를 간섭하지 마세요. 매일 최대한 일찍 댁으로 갈게요. 시간이 나면 할머니랑 같이 얘기도 나눌게요. 하지만 가끔 안 돌아올 수도 있어요. 전 학생이잖아요.”
  • 그녀에게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을 그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래.”
  •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세 번째, 당신에게 받았던 2억은 제가 빚진 거니까 어떻게든 갚을 거예요. 이건 차용증이고요.”
  • 말을 마친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차용증명을 그에게 건넸다.
  • “뭐로 갚을 건데?”
  • 차은우가 가소롭다는 듯이 물었다.
  •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죠. 어쨌든 아직 졸업도 못 한 학생이니까요.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갚을게요.”
  • 채연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 “아시다시피 저 진 교수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만약 제 디자인이 입상하면 아마 적지 않은 상금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거고요.”
  • 차은우는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 그녀는 그와 복잡하게 얽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빚지는 것도 싫었다.
  • 차은우는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 돈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건넨 차용증을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 하지만 그녀의 이런 태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잘 보이려고 지금 밀당하는 걸까?
  • ‘그래! 처음부터 영악한 여자였어. 그러니까 할머니도 이 여자한테 정신을 못 차리지.’
  • “당신 경고하는데 허튼짓하지 마. 우리 관계는 언제든 끝날 수 있어.”
  • 그가 차갑게 말했다.
  •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나가고 싶을 뿐이에요.”
  • 채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 하지만 차은우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그가 차갑게 말했다.
  • “원하는 게 그게 다야? 나도 원하는 게 있어.”
  • “말씀하세요.”
  • 채연이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 “첫 번째, 할머니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드려야 해. 할머니와 연관된 일이라면 무조건 내가 원할 때 와야 하고.”
  • “좋아요.”
  • 그녀가 대답했다.
  • 차은우가 계속해서 말했다.
  • “두 번째, 나랑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에는 다른 남자를 만나서는 안 돼. 여자한테 배신당하는 건 죽기보다 싫으니까.”
  •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채연은 답이 없었다.
  • “당신, 듣고 있어?”
  • 차은우가 불쾌한 기색으로 재촉했지만 채연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조용한 차 안에 여자의 고른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고개를 돌린 그는 이미 달콤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이 순간이 아름답고 미묘하게 느껴졌다.
  • ‘많이 피곤했나 보네.’
  • 그는 저도 모르게 속도를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