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다트
- 크라운 호텔.
- 떠들썩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에 위치한 이 회원제 호텔은 부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 차은우는 왜 채연을 데리고 이런 럭셔리한 곳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그는 채연을 데리고 맨 위층에 있는 VIP룸으로 향했다.
- 소진혁, 이지훈은 차은우의 절친이었다.
- 한 명은 부동산 기업의 도련님이었고 다른 한 명은 신흥 온라인마켓의 대표였다.
- 두 사람은 한창 룸에서 술을 마시며 다트를 즐기고 있었다.
- “은우야, 네가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 이지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 ‘평소 여자라면 질색하던 녀석이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 그들이 친한 친구였느니 망정이지 항간에는 그의 성적 취향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차은우는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았다. 창밖은 깎아내린 듯한 절벽이었는데 밤이면 마치 심연의 늪 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 “내 와이프야.”
- 소진혁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 “은우야, 방금 뭐라고 했어?”
- “이 여자, 내 와이프라고.”
- 차은우는 뽀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대꾸했다. 그의 무심한 동작 하나하나도 치명적인 매력을 풍겼다.
- 그러던 그는 채연을 의식한 건지 재빨리 담뱃불을 비벼서 껐다.
- “세상에! 너 결혼했어?!”
- 이지훈이 경악한 표정으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 “어떻게 우리한테 한마디도 없이 결혼을 해? 나 축의금도 준비 못했잖아!”
- “기간제 와이프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 채연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 차은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 순간 룸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 눈치 빠른 소진혁이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 “자자, 제수씨도 왔는데 한잔해야지.”
- “저 술을 못해요.”
- 채연이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 “제수씨, 그럼 우리 게임해요. 다트 게임인데 과녁의 중심을 맞히지 못하면 벌칙으로 한잔 마셔야 해요. 만약 과녁을 벗어나면 세 잔이고요. 만약 제수씨가 더블 구역을 맞히면 우리가 벌칙으로 세 잔 마실게요. 기회는 세 번이에요.”
- 말을 마친 소진혁은 이지훈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 그러자 이지훈이 가장 도수가 높은 양주를 가져오더니 잔을 채웠다.
- 고급 양주의 진한 향기가 룸 전체에 퍼졌다.
- “저한테 제수씨라고 부를 필요 없어요. 채연이라고 불러주세요.”
- “그럴 수는 없죠. 은우 와이프면 우리한테 제수씨 맞아요. 그럼 제수씨, 이제 게임 시작할까요?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줄게요.”
- 말을 마친 이지훈이 표창을 던졌다.
- 아쉽게도 표창은 중심을 조금 벗어난 곳에 박혔다.
- “괜찮네!”
- 이지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소진혁이 표창 세 개를 채연에게 건네며 말했다.
- “자, 이제 제수씨 차례예요. 일단 연습 게임 먼저 해보실래요?”
- 소진혁과 이지훈 두 사람은 죽이 척척 맞았다.
- 옆에서 지켜보던 차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 ‘장난이 조금 지나치네.’
- 이건 처음부터 너무 불공평한 룰이었다.
- 루이13세는 양주 중에서 꽤 독한 편에 속했다. 그걸 채연이 세잔이나 마신다면 바로 쓰러질 게 분명했다.
- 소진혁과 이지훈이 노리는 게 바로 이 점이었다. 채연을 술 취하게 한 뒤, 차은우와 둘이 밤을 보내게 할 의도였다.
- 차은우는 제지하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런데 이때!
- 슈슈슉 하는 소리가 룸 안에 울렸다.
- 채연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표창 세 개를 들고 한 바퀴 돌리더니 팔을 슬쩍 들었다.
- 소진혁과 이지훈은 멍한 표정으로 더블 구역에 안착한 표창 세 개를 바라보다가 다시 채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 채연은 한창 티슈로 손을 닦고 있었다.
-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들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
- “전… 전문가네요….”
- 이지훈이 말까지 더듬으며 감탄했다.
- “세 개 전부 맞혔으니까 두 분이 각자 아홉 잔씩 마시면 되겠네요.”
- 채연이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소진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 아홉 잔이면 주량이 괜찮다고 하는 그들도 쓰러질 양이었다.
- 꼼수를 부리다가 되레 당한 격이었다.
- 하지만 룰은 룰이었기에 두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서로 노려보며 양주 아홉 잔을 원샷했다.
- 소진혁은 바로 소파에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 “이지훈, 이 멍청한 놈이 왜 하필 루이13세를 가져와서는… 이게 다 너 때문이야….”
- 이지훈도 비틀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 “이게 다 네가 게임 룰을 이상하게 정해서 그런 거잖아….”
- 차은우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채연을 바라보았다.
- 참으로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여자였다.
- 표창 던지는 실력은 단기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 “이제 돌아갈까요? 좀 자고 싶은데.”
- 채연이 피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 소진혁과 이지훈은 다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제수씨 저렇게 담대한 사람이었어?’
- 물론 채연은 자신의 말이 얼마나 야릇하게 들릴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피곤하고 졸릴 뿐이었다.
- “가자.”
- 차은우가 외투를 챙기며 말했다.
- 그렇게 두 사람은 홀연히 룸에서 나갔다.
- 소진혁과 이지훈은 미련 없이 룸을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 ‘은우 많이 변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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