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0화 술 취한 그녀

  • 차씨 가문 본가에 들어와서 산지도 어느새 이틀이 지났다. 채연은 어느 정도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 그날 밤, 채연은 할머니와 같이 식사를 마친 뒤,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 채연이 온 뒤로 할머니는 매일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채연도 가끔 할머니에게 마사지도 해주며 폐암 말기로 고생하는 할머니의 고통을 덜어주려 노력했다.
  • 차은우는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노인이 즐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다.
  • 할머니가 잠들자 채연은 방으로 돌아왔다.
  • 이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남자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너 어디야?”
  • “미안해. 요즘 좀 바빠서… 핑계 아니야… 약속할게. 며칠 있다가 너 보러 갈 거야. 나 믿어줘….”
  • 상대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 화가 많이 난 듯했다.
  •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바닥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가슴이 갑갑하고 찢어질 듯 아팠다.
  • 한참 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방 안을 서성이다가 술장을 열었다.
  • 안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진귀한 술이 가득 들어 있었다.
  • 그녀는 가장 작은 병을 꺼내 술잔을 따랐다.
  •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 없는 그녀였지만 오늘따라 마셔보고 싶었다.
  • 그렇게 그녀는 술 한잔을 한 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 알싸한 느낌이 온몸에 퍼지고 머리가 어지럽더니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 ‘이 느낌도 괜찮네.’
  •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땐 술이 최고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그렇게 한잔, 두잔 어느새 술병이 비워졌다.
  • 그녀는 점점 현기증과 함께 온몸이 불타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다리가 풀려 중심을 잃고 부드러운 바닥에 쓰러졌다.
  • ‘편하네. 이대로 잠들고 싶어.’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의 신발 한 쌍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 그녀는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 신발을 따라 올라가자 긴 다리가 보였고 더 올라가자 짙은 눈썹과 블랙홀같이 깊은 눈동자, 오뚝한 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입술이 보였다.
  • 잘생겼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절세 미모를 가진 남자였다.
  • 그런데 왜 낯이 익지?
  • “그쪽 정말 잘생겼네요.”
  • 그녀가 그를 보며 생긋 웃었다.
  • 차은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쏘아보았다.
  • 그런 포즈로 고개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넋이 나갈 것 같았다.
  • 차은우는 불편함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탁자 위에 놓인 빈 술병을 발견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 그가 소장하던 스페이드A를 전부 마셔버린 것이다.
  • “저기, 정신 차려!”
  • 그는 그녀를 발로 차며 소리쳤다.
  • “잘생긴 오빠, 저 좀 일으켜 주세요. 저랑 한 잔만 더 마셔요. 돈은 섭섭지 않게 드릴게요.”
  • 채연은 가슴을 간지럽힐 만큼 찬란한 미소를 지으며 호주머니를 뒤졌다.
  • ‘이 여자 지금 나를 선수 취급하는 거야?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셔서!’
  • “야, 일어나!”
  • 차은우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술 취한 여자의 힘은 상당했다.
  • 다리가 풀려버린 채연이 중심을 잃으며 차은우의 팔을 잡아당겼다.
  •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은 같이 바닥에 쓰러졌다.
  • 채연이 먼저 쓰러지고 차은우가 그 위에 올라탄 격이 되었다.
  • 순간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
  • 차은우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에 달콤한 위스키의 향까지 더해져 취해버릴 것 같았다.
  • “잘생긴 오빠, 나빴어!”
  • 채연은 손을 내밀어 그의 목을 감싸며 매혹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이 순간 자체가 너무 아름다웠다.
  • 차은우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너무 향기롭고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온몸에 전율이 퍼졌다.
  • 채연은 몽롱한 기분으로 그의 뜨거운 키스를 받아들였다.
  • 너무 익숙한 느낌이었다.
  • 마치 약에 취했던 그날 밤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 차은우는 그렇게 점차 이성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