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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은 아찔하게

계약결혼은 아찔하게

시나라

Last update: 2022-08-27

제1화 혼인신고

  • K시티 구청.
  • 오늘은 채연이 혼인신고를 하는 날이었다.
  • 그녀는 사인을 마친 뒤, 배우자 란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 남자의 눈부신 외모에 구청 직원들마저 그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이런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 “죄송한데 이름을 깜빡해서요.”
  • 이때 채연의 한마디가 분위기를 깼다.
  • 차은우는 똥 씹은 표정으로 여자를 노려보았다.
  •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야?’
  • K시티에서 차은우를 모르는 여자가 있다니 그가 충격받을 만도 했다. 하늘이 내린 외모와 완벽한 몸매, 금융, 이커머스, 부동산, 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R&S 그룹의 오너인 그는 K시티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 그는 짜증스럽게 채연의 손에서 신고서를 빼앗은 뒤, 펜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썼다.
  • 그 뒤로 서로 지장을 찍고 혼인신고가 완료되었다.
  • 채연은 바로 가방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 차은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이혼은 언제 하죠?”
  • “의사 말로는 우리 할머니 이번 달을 넘기기 힘드시대.”
  • 그가 차갑게 대꾸했다.
  •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혼을 먼저 꺼내는 그녀의 태도가 그는 사뭇 거슬렸다. 이혼을 꺼내도 그가 먼저 꺼내야 할 상황에 왜 이 여자는 이렇게 당당하게 이혼을 얘기하는 걸까?
  • 채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그녀는 우연히 길에서 쓰러진 할머니 한 명을 구조했다. 폐부종으로 기도가 막혀서 호흡곤란을 일으킨 긴급한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현장에서 침착하게 인투베이션을 해주었다.
  • 이어서 때마침 구급차가 도착해서 할머니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그런데 폐암 말기 환자인 그 할머니는 자신의 손주와 결혼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 “왜 위조 문서를 만들지 않은 거죠?”
  • 채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차은우는 그런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
  • “할머니께서 사람을 시켜 진위 여부를 조사하실 거야.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우리 할머니는.”
  • “저 부탁이 있어요.”
  • 채연이 말했다.
  • “무슨 부탁?”
  • 차은우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 “비록 할머니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라지만 가짜 결혼은 언젠가는 끝내야 해요. 그러니까 추후에 차은우 씨 역량을 동원해서 우리가 결혼했었다는 흔적을 지워주셨으면 해요.”
  • 채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차은우는 자존심이 상했다.
  • ‘내가 잃을 것이 더 많은 사람인데 그 말은 내가 했어야 하는 말 아닌가?’
  • 차은우는 자신과 선을 확실히 그어버리는 여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건 문제없어.”
  • 차은우가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 “그럼 됐어요.”
  • 채연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안녕히 계세요. 약속하신 2억 꼭 입금하시고요. 이건 제 계좌번호예요.”
  • 그녀는 자신의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 한 장을 차은우에게 건넸다.
  • 차은우가 냉소를 지었다.
  • ‘이제야 돈 얘기가 나오네?’
  • 어려서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에게 할머니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할머니가 말년에 병마와 씨름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마지막 소원이라도 들어드리고 싶었다.
  • 그런데 할머니는 고작 이런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와의 결혼을 고집했다. 할머니를 달래기 위해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채연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당장에서 2억의 보수를 요구했다.
  •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우리 할머니를 구했던 거지?”
  • 차은우가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물었다.
  • 채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 “편한 대로 생각하세요.”
  • 말을 마친 그녀는 눈부신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 ‘웃기네. 난 차은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할머니를 어떻게 알겠어? 왕자병도 정도껏 해야지.’
  • 만약 돈을 목적으로 일부러 접근했다면 그녀는 바로 그 열 배의 가격을 불렀을 것이다.
  • 어차피 2억이라는 돈은 그에게 정장 한 세트 맞출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 차은우는 한참 넋을 놓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짜증이 나는 건 여자의 그 미소에 가슴이 뛰었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고개를 숙이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혼인신고 서류와 그녀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사진 속 그녀는 그와 멀리 떨어진 채 딱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정교한 이목구비와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눈, 단아한 눈썹과 섹시한 입술, 요염하면서도 단아하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신비스러운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 ‘보육원 출신의 된장녀라…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