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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불륜녀

  •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채연은 자신을 조근영의 간병인이라고 소개했고 차은우도 굳이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제야 두 모녀는 시름을 놓았다.
  • 두 사람은 차은우와 채연 사이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고 그 거래가 조근영 여사와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
  • 차은우가 자신의 결혼 소식을 공개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가능성이 있었다.
  • 그래서 그들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
  • “그러고 보니 우리 두 가문 사이에 혼약이 있었지….”
  • 심수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군인 가문과의 정략결혼은 사업가 집안의 큰 경사였다.
  • “혼약이요?”
  • 안세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아, 그거? 네가 태어났을 때 집안끼리 약속이 있었어. 집안의 장남과 장녀를 결혼시키기로.”
  • 진예은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 “세희야, 결혼은 네 선택이야. 엄마는 널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 진예은은 안세희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실종된지 20년, 천신만고를 거쳐 드디어 자신의 딸을 찾았다. 어려서 보육원에서 힘들게 자란 딸을 생각하면 그녀는 안세희에게 뭐든 해주고 싶었다.
  • 장남과 장녀의 결혼?
  • 안세희는 속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 ‘나와 차은우 씨 사이에 혼약이 있었어?’
  • 그녀는 당연히 기쁨을 금치 못했다.
  • 이때 차시연이 차은우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 “이것도 인연인가 봐요. 세희가 우리 오빠의 목숨도 구해줬잖아요.”
  • 차은우와 안세희를 이어주고 채연을 쫓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그것을 놓칠 차시연이 아니었다.
  • “그래?”
  • 심수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 “은우야, 너 언제 다쳤었어? 세희가 널 구한 거야?”
  • 안세희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 차은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그날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안세희 씨가 구해주셔서 내가 살 수 있었어요.”
  • ‘그래,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책임져야지.’
  • 그는 더 미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게다가 안세희가 자신과 혼약이 있는 하씨 가문의 딸이라는 것도 예상 밖이었다.
  • “이것도 인연인가 봐요.”
  • 진예은은 얼굴을 붉히는 안세희를 보자 바로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두둔하고 나섰다.
  • “은우야, 세희는 네 생명의 은인이니까 앞으로 잘해줘야 한다.”
  • 심수연은 두 가문의 결합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었다.
  • “오빠가 책임지겠다고 했다며.”
  • 차시연도 거들었다.
  • 채연은 그들과 멀지 않은 거리의 창가에 서서 조용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 ‘안세희가 차은우를 구했다고? 게다가 둘이 혼약이 있는 사이였다니….’
  • 참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녀는 어쩌다가 하게 된 위장 결혼 때문에 불륜녀가 된 상황이었다.
  • 더 듣고 싶지 않아진 채연은 조용히 발길을 돌려 베란다로 향했다.
  • 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그녀는 바로 발신자를 확인했다.
  • 하지만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전화를 받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 그녀는 길게 심호흡하며 생각했다.
  • ‘피곤해.’
  • “차은우의 여자?”
  •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넥타이, 준수하면서도 요염한 얼굴을 한 한 남자가 등장했다.
  • 그는 담배를 꺼내 물더니 불을 붙였다.
  • “왜? 반했어?”
  • 용현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이 나쁜 자식아.”
  • 채연은 한마디 쏘아준 뒤,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 용현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직설적인 말에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 ‘내가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그래도 첫 만남에 나쁜 자식은 좀 너무하지 않았나?’
  • 그는 차은우의 여자에게서 짙은 흥미를 느꼈다.
  • ‘어떡하지? 흥미가 생겨버렸는데….’
  • 그는 손가락으로 담뱃불을 비벼서 끈 뒤,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